▲2022년 월성핵발전소 앞에서 경주, 울산 인근 지역주민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해바라기
"원자력진흥법이 있어요. 원자력진흥위원회(아래 진흥위) 위원장이 국무총리예요. 문재인 정부 말기인 2021년 12월 진흥위에서 '제2차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아래 고준위 계획)이라는 것을 수립해요. 법률은 아니고 실행력 있는 행정계획인데 핵심은 '원전 부지마다 임시로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을 건설하겠다'라는 계획이에요. 고준위 계획에 근거하여 당장 고리원전 부지에 임시 건식 저장시설을 짓겠다고 한수원이 최근에 이사회에서 의결했어요.
국내에서 가장 높은 건물 13개 중에서 8개가 해운대에 있어요. 피서철이면 100만 인파가 몰린다는 해운대에서 21km 떨어진 곳에 핵폐기장이 생기는 거예요. 탈핵 운동단체들이 당장이라도 '부산에 핵폐기장이 들어온다'라는 현수막을 걸었으면 좋겠어요."
윤석열 정부가 원전 부흥을 위해 고준위특별법을 밀어붙이는 상황에서 국민의힘 대표가 된 김기현 의원은 지난 1월 27일 <부산일보>와 진행한 기자간담회에서 '고준위특별법'에 대한 질문을 받자 "원전 부지 내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이 영구화될 수도 있는데 이를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며 "당 대표가 되면 원전 부지 내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을 막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어느 당이 됐건 간에 원전 소재 지역구 국회의원이 '부지 내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한 점은 의미가 큽니다. 원전 진흥을 앞세우는 당에서 원전의 계속 운영을 가능하게 하는 부지 내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을 반대하는 것은 그만큼 지역 여론이 나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한편 여론을 주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탈핵 운동 진영은 '고준위특별법'이 제정되면 '임시'라는 단서를 달고 부산, 울산, 경주, 울진, 영광 등 원전 시설이 있는 5개 지역에 '고준위 핵폐기장'이 들어서는 셈이라고 설명한다.
고준위 핵폐기물 처분장 건설은 1980년대부터 울진, 영덕, 태안 등 해안을 낀 수많은 지역에서 시도됐지만, 주민들의 격렬한 반대로 모두 무산됐다. 현실적으로 영구처분장을 수용할 지역을 찾기가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에서 '임시'가 '영구'처분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
김영희 변호사는 2021년 말 '제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 무효확인소송(아래 고준위 무효소송)'을 제기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잖아요. 소송을 하려면 90일 안에 소장을 내야 하는데, 제 입장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고준위 계획'의 합법화를 인정하는 꼴이 되니까 대응을 안 할 수 없었어요.
짧은 시간 동안 1000명 넘게 원고를 모았어요. 경주 양남면에서 800여 명이 참여해 주셔서 큰 힘이 되었죠. 울진원전으로부터 방사선비상계획구역 30km 안에 속하는 삼척시가 지자체로서 원고로 참여하였고, 삼척 주민들도 100여 명 이상이 참여했어요. 영광 주민들도 100여명 참여해주셨고요."
소송단 모집할 때 내는 1만 원 참가비가 소송비용인데 원고로 참여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할 상황이라 원고 중 200명이 낸 참가비 200여 만 원이 소송비용으로 받은 전부다. 원전 소송에서 정부나 한수원 측 변호사들은 엄청난 물적, 인적 지원과 거액의 보수를 받는 데 비해 김영희 변호사는 보수는커녕 교통비, 번역비 등 소송비용도 부족한 상황에서 고군분투해야 했다.
탈핵경주시민공동행동 등 단체와 시민 833명이 참여해 2020년 4월부터 2023년 1월까지 진행한 '월성1~4호기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운영허가처분 무효확인소송'은 패소했고 '고준위 무효소송'은 진행 중이다.
'고준위 기본계획'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부지 적합성을 심사할 권한이 없는 산자부가 중간저장시설과 비슷한 수준의 시설 부지를 일방적으로 결정해버리는가 하면,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 주민의견수렴 등의 절차도 제대로 거치지 않은 '고준위 기본계획'은 법이 상식이라면 무효가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원전 관련 판결에 상식과 정의의 잣대가 공정할 수 있기를 바란다. 영희 변호사가 '지면서도 이기는 소송'을 하는 이유다.
현장이 주는 '감동'
김영희 변호사는 공익 소송 외에도 교육부 자문변호사 및 대학 이사를 지내는 등 교육계 관련 소송도 많이 하고, 환경부 자문변호사도 했다. 최근에는 고형쓰레기를 연료로 하는 SFR소송도 진행했다.
알고 보니 이혼소송도 전문분야다. 섬세하고 공감능력이 뛰어난 장점 때문인지 이혼소송에서 승소한 의뢰인이 또 다른 의뢰인을 소개하는 경우가 많다. 생계형 변론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고 있으니 다행이다.
재벌개혁과 주주대표소송 전문가였던 김영희 변호사가 후쿠시마 이후 탈핵소송 전문가로 고생길을 마다하지 않고 늘 원전 피해 주민편에 서는 이유는 현장이 주는 '감동' 때문이다.
원전유치 반대를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됐던 김양호 삼척시장 이전에 김대수 삼척시장은 삼척에 원전을 유치하려고 했다. 해바라기 법률가들과 영희 변호사는 김대수 전 시장 주민소환 운동 때부터 삼척과 인연을 맺는다.
"김양호 시장이 당선되고 삼척이 '원전 유치 찬반 주민투표'를 실시하면서 법률 자문을 위해 30번도 넘게 삼척을 다녔어요. 열차가 마땅치 않았던 시절이라 운전해서 삼척까지 다니면서 힘들었지만, 주민투표가 승리해서 보람이 컸어요."
2014년 10월 9일 전체 유권자 4만 2488명 가운데 2만 8867명이 투표해 67.9%의 투표율을 보인 삼척원전 주민찬반투표는 유치 반대 여론이 84.9%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삼척시 선거관리위원회가 '원전 유치 신청 철회는 국가사무여서 주민투표 대상이 아니다'라는 정부의 유권해석에 따라 주민투표 업무 위탁을 거부해 민간기구 주도로 실시해 법적 효력은 없었지만, 삼척시민들의 민심을 거스를 수 없었다.
2012년 9월 삼척과 함께 '원전 예정구역'으로 지정 고시된 신규원전 후보지였던 영덕은 삼척 주민투표 운동에 힘입어 '영덕원자력발전소 유치찬반 주민투표관리위원회'를 결성하고 주민투표를 실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