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자폭탄에 피폭되어 망가진 우라카미 천주당의 성상들. 가톨릭 성지, 원폭 피폭지로서의 나가사키의 정체성이 읽힌다.
박광홍
일본 규슈 서쪽에 있는 나가사키는 예로부터 해외문물이 일본으로 유입되는 창구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15세기엔 포르투갈, 에스파냐, 영국, 네덜란드 등 서구열강들의 함선들까지 나가사키에 닿았다. 규슈 서부 해안에 나타난 서양인들로부터 일본인들은 화약무기를 비롯한 선진문물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가령 포르투갈제 철포가 일본에서 양산돼 도요토미 정권의 조선 침공에 활용됐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그러나 이 시기 일본에 유입된 것은 물건만이 아니었다. 프란체스코 하비에르 신부를 시작으로, 유럽의 가톨릭 교회는 일본으로의 선교에 팔을 걷어붙였다. 인류와 온 세상을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은 고달픈 삶을 살아가던 규슈 서부 지역 민중에게 큰 호소력을 발휘했다.
도요토미 정권은 지역 다이묘가 서양 세력을 끌어들여 중앙에 대항할지 모른다는 우려에 선교사 추방령을 내리고 나가사키의 가톨릭 신자들을 처형했다. 도요토미 정권은 머지 않아 몰락했지만, 그 뒤를 이어 도쿠가와 막부가 들어서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했다. 특히 오늘날의 나가사키현 시마바라 반도에서 농민 수탈과 가톨릭 탄압에 반기를 든 대규모 봉기(시마바라의 난)가 일어났다가 1638년에 진압되면서 막부의 가톨릭 탄압은 절정에 이르렀다.
나가사키의 가톨릭 교회는 그렇게 온갖 박해를 받으며 250여 년을 견뎠다. 개항 이후 교회는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됐지만, 기쁨은 잠시였다. 중국 침략 이후 제국 일본의 총력전을 지탱하는 주요 도시로 기능하게 된 나가사키는 미군에 의해 원폭 투하 후보지로 오르게 됐다.
그리고 결국,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 2분 나가사키 상공에 원자폭탄이 투하됐다. 찰나의 순간,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수많은 시민들이 비명에 죽어갔고 도시는 초토화됐다.

▲ 나가사키 원폭 투하 직후의 버섯구름. 나가사키 인구 24만 중 7만 4천 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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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에서 다시 일어선 나가사키에서 '평화'는 제일의 가치가 됐다. 처절한 박해와 국가폭력 그리고 원자폭탄의 참상을 겪으며, 지역사회 전체가 인간의 존엄성과 반전의 사명에 대해 자각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갈등과 반목이 거듭되는 동아시아 정세 위에서 나가사키의 평화가 시사하는 것은 무엇일까.
'26인 성인 기념관'은 도요토미 정권과 도쿠가와 막부에 의해 고문당하고 살해된 무고한 교인들의 비극을 묵묵히 증언하면서도 "나는 쇼군을 증오하지 않으며 오직 그가 회심하기만을 바란다"는 말을 남기고 처형된 성인의 어느 유언을 소개한다.
나가사키 평화자료관의 한결같은 입장

▲ 나가사키 평화자료관은 일본군의 전쟁 범죄 및 강제동원 관련 자료들을 전시하며 아시아 피해국들에 대한 사죄를 촉구하고 있다.
박광홍
'원폭의 아픔을 겪은 나가사키 지역이기에 제국 일본의 침략에 신음했던 아시아 각국 이웃들의 아픔에 더더욱 귀를 기울이고 진심으로 사죄해야한다'는 취지로 설립된 '오카 마사하루 기념 나가사키 평화자료관'(아래 평화자료관)이 26인 성인 기념관의 맞은 편에 위치한 건 매우 의미심장하다. 필자는 지난 16일부터 18일까지 나가사키에서 평화자료관 등을 방문했다.
'한국/조선인 피폭자' '전후 보상'과 더불어 '강제연행' 코너는 한국인에겐 가장 눈길이 가는 곳이다. 평화자료관은 "일본이 아시아에 대한 침략전쟁을 위하여" "조선인, 중국인"을 "강제연행"하여 "극도로 열악한 의식주 아래 차별과 학대 속에서" "가혹한 생활과 노동"을 "강요"했다고 설명한다. 나가사키 행정구역 내에 있는 '군함도'는 그 대표적인 예다.
최근 일본 초등학교 교과서 검정 문제로 '동원' '강제동원' '강제연행' 등의 용어사용에 대한 논란이 더욱 뜨거워진 상황에서, 평화자료관 측이 1995년 설립 이래 "강제연행"이라는 표기를 꿋꿋하게 고집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 "'동원'이라는 개념 역시, 대상자의 의지와 무관하게 국가공권력에 의해 강제로 집행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아시아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본토의 국민들 또한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전쟁에 동원된 것이고요. 그런데 조선인 동원에 대해서 유독 '강제연행'이라고 표기하는 것은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관계자: "예. 물론 동원의 사전적 의미는 말씀하신 바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일본인들이 제국의 국민으로서, 일본의 법령에 의해 동원된 것이라면 조선인들은 일본과 별개의 나라였다가 침략에 의해 강제로 합병돼 전쟁에 끌려간 것이잖아요. 그 차이를 강조하고 싶다는 취지로 '강제연행' 표기를 쓰는 것으로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지면 한계상, 용어 사용의 타당성에 대한 여러 견해를 모두 다룰 순 없을 것이다. 다만, 평화자료관 측의 답변에서 필자는 상대의 아픔을 생각하고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자 하는 의지와 배려만큼은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이름없는 일본 사람들이 세운 조선인 추도비

▲ 나가사키 원폭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 조선인 희생자들에 대한 사죄의 마음을 담아 일본 시민들이 건립하였다.
박광홍
일본인 피폭자의 고통을 넘어 전쟁·식민통치 피해국의 입장에서 기억을 더듬고자 하는 시도는 나가사키 곳곳에서 마주할 수 있다.
원폭 폭심지를 중심으로 조성된 평화공원에는 '나가사키 원폭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설명문에 따르면 이 추도비는 "이름없는 일본 사람들이 얼마간의 돈을 모아" "지난 시기 일본이 조선을 무력으로 위협하여 식민지로 만들고 그 민족을 강제로 끌고 와 학대혹사하며, 강제노도 끝에 비참하게도 원폭에 맞아 죽게 한 전쟁책임을 그들에게 사죄함과 동시에 이 세상에서 핵무기의 완전철폐와 조선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염원"하며 세운 것이라고 한다.
조선인 추도비 앞에는 나가사키 원폭자료관이 있다. 원폭자료관은 단순히 원자폭탄 피해를 전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중국 침략을 시작으로 제국 일본이 무모하게 도발했던 침략전쟁의 전개를 분명히 하며 비핵화 항구평화의 희망을 전한다.
원폭자료관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있는 '국립 나가사키 원폭 사망자 추도 평화 기념관"에는 원폭 희생자들의 위패와 함께 오바마 당시 대통령이 접은 종이학이 전시돼 있다.
오바마 정권에 대한 평가나 미국-일본 간 정치군사적 종속 관계에 대한 검토와는 별개로 원폭투하 주체인 미국 대통령의 종이학이 원폭희생자들의 위패와 한 공간에 놓여있다는 사실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큰 전율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일본인이 미국인을 "귀신과 짐승"(鬼畜米英)으로 부르고 미국인이 일본인을 "노란 원숭이"(Yellow Monkey)로 부르며 서로 적의를 불태우다가 결국은 핵무기 사용에 이르렀던 증오의 역사가 자그마한 종이학 하나에 사르르 녹아버린 것만 같은 인상이다.

▲ 원폭 사망자 추도 기념관에 전시된 오바마 대통령의 종이학.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 최초로 원자폭탄 피해에 대한 애도를 표명했다.
박광홍
나가사키가 결코 화해에 관한 '완벽한' 모범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박해와 피폭의 역사를 넘어 지역사회에 뿌리내린 평화의 가치는 충분히 음미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일시민 사회의 사이에서도, 이와 같은 시도들이 더욱 동력을 얻기를 바란다. 상대를 향한 이해와 공감의 뿌리가 견고해지면, 비극적인 과거사를 초월한 화해와 상생도 언젠가는 현실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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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논리에 함몰된 사측에 실망하여 오마이뉴스 공간에서는 절필합니다. 그동안 부족한 글 사랑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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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나가사키가 한국·조선인 피해자를 기리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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