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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름 1미터 넘는 왕버들도 무참히 잘려... 이게 정말 맞습니까?

다시 찾은 내성천 싹쓸이 벌목 현장... 수달 등 터전 사라져, 생태계에도 악영향

등록 2023.04.27 10:37수정 2023.04.27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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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경 1미터가 되는 왕버들도 속절없이 잘려나간 내성천. 그러나 이들 왕버들은 국보급 하천 내성천의 아름다운 경관을 완성해주는 존재들이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기사 수정 : 27일 오후 2시 9분]

최근 예천군 측은 보문면의 미호교와 오신교 사이 3㎞에 이르는 버드나무 군락지에서 이른바 '싹쓸이 벌목'을 진행했다(관련 기사 : 내성천 수백 그루 나무 싹쓸이 벌목, 왜?). 26일, 내성천 벌목 현장을 다시 찾았다. 한 언론사의 동행 취재 요청도 있었고, 현장조사를 조금 더 세밀하게 해보고 싶어서였다. 예상대로 싹쓸이 벌목은 야생 생태계에도 큰 변화를 불러온 듯했다. 

미호교에서부터 강 안으로 들어가 강 안에서 벌목 현장을 살펴봤다. 지난 현장조사는 제방도로에 서서 강을 내려다보며 조사했다면, 이번에는 내성천으로 들어가 강 안에서 제방을 올려다보면서 조사를 했다.

나무의 벌목이 야생 생태계에는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궁금했기에 강 안에서 그 흔적을 찾아보고 싶었다.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인 수달의 흔적이 곳곳에서 목격되었고, 멸종위기종 삵의 흔적도 찾아낼 수 있었다. 고라니의 흔적은 너무 많았고.

낮에 활동하기 어려워진 수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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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달과 삵의 배설물이 동시에 발견된 바윗돌. 이 주변의 왕버들도 모조리 잘려나가면서 이 일대 집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는 곳도 사라졌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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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기념물 수달의 배설물.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기 위해서 이렇게 배설물을 남긴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그 흔적은 주로 나무의 그늘에 해당하는 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나무그늘 아래 바위틈에 이들의 배설물이 곳곳에서 목격된 것이다. 나뭇가지가 드리운 곳 아래서 수달과 삵이 사냥하면서 생활해 왔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나뭇가지가 은폐를 해주었기 이들은 낮에도 출몰해서 사냥을 즐긴 듯하다. 

내성천은 시골로 이곳 수달은 이른바 '시골 수달'에 해당한다. 지리산 '수달의친구들' 최상두 대표에 의하면 "'도시 수달'과 달리 '시골 수달'은 낮에서도 출몰해 사냥을 즐긴다"고 한다.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다.

이곳 내성천도 문제의 현장엔 사람들이 거의 없다. 이 길은 작곡리 주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길로, 몇 안 되는 작곡리 주민들도 왕래가 거의 없고 자연제방에 자라난 나뭇가지들이 자신들을 은폐해 주었기 때문에 맘껏 활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나무가 모두 제거됐기 때문에 수달의 행동은 완전히 노출될 수밖에 없고, 이들이 낮에 출몰한다는 건 이제는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더군다나 나뭇가지 아래 바윗틈이나 큰 나뭇등걸 사이 후미진 곳에서 집을 짓고 생활하는 게 수달이다. 이번 벌목으로 수달의 집 또한 철저히 파괴됐다는 걸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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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버들이 살아있었으면 정말 아름다운 풍경을 이루었을 현장이 사라졌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이번 왕버들 나무 싹쓸이 벌목은 이처럼 멸종위기종 야생생물들에게까지 생태적 악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보존해야 하는 왕버들도 무참히 잘려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잘린 나무를 하나하나 살폈다. 위에서 볼 때보다 확실하게 잘린 나무들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수령이 오래된 나무들도 많았다. 한 나무는 지름이 1미터나 됐다(기자와 소통한 한 전문가는, 이 정도 지름일 경우 추정 수령이 약 100살 정도 된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오래된 아름드리 나무도 무참히 잘라버린 것이다. 이 나무는 비교적 제방의 위쪽에 자리 잡고 있어서 물 흐름에 영향을 주지도 않는데도 불구하고 잘라버린 것이다.

싹쓸이 벌목만 안 했더라면 충분히 살아남을 가치가 있는 나무였다. 너무 아까운 나무가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이런 나무는 더 있었다. 흉고(가슴 높이서 잰 나무 지름) 50센티미터가 넘는 왕버들들도 속절없이 잘려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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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드리 왕버들 나무가 무참히 잘려나갔다. 분노가 치밀어오르는 현장이 아닐 수 없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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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쓸이 벌목이 진행된 내성천의 안타가운 모습. 이들은 야생동물들의 서식처로서 기능도 하는데, 그런 기능들이 무참히 사라졌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이들 왕버들은 내성천의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는 핵심요소 중 하나로 내성천 경관미의 백미 중 하나다. 이에 대해 <식물생태보감>의 저자이자 저명한 식물사회학자인 김종원 전 계명대 교수는 다음과 같이 이들 왕버들의 가치에 대해 설명했다.

"강하천 제방 자연성(naturalness)을 진단하는 최고의 식물사회로 이번에 벌채된 내성천의 왕버들군락은 내성천 하도(물길)와 하식애가 만나는 경계 입지에 발달한 자연식생이다. 즉 한국의 강하천 제방권에서 보는 최고의 숲 식물사회이고, 자랑스런 한국 강하천의 자연갤러리(전통 산수화를 통해서도 확인 가능함)다. 실제로 이번에 벌채된 그 정도의 우수한 왕버들군락은 희귀하고, 규모면으로 보면 국내에서 매우 드물게 잔존하는 '왕버들 자연식생'이다."

그러면서 그는 이번에 "벌채된 왕버들군락에 대하여 식생보존등급을 평가한다면 절대보존 또는 준절대보존의 수준에 해당하는 거의 최고 수준의 보호 대상 식물사회로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중요한 경관적 생태적 가치가 있는 왕버들을 지키고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는 지자체인 예천군이 싹쓸이 벌목을 진행한 이유를 잘 이해할 수 없다. 

지자체 책임자들부터 내성천의 가치를 인식해야 

지난 21일 기자와 통화를 진행한 보문면장은 "나무가 유수의 흐름에 지장을 준다. 시야를 가린다. 쓰레기 투기가 발행한다. 가시박이 많이 자라 있"어 벌목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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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왕버들 군락의 아름다운 모습. 2022년 4월 회룡포 인근 내성천의 모습이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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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왕버들군락의 아름다운 모습. 2022년 4월 회룡포 인근의 자연 제방에서 담은 모습이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만약 그가 내성천 강으로 한 번만이라도 들어와봤더라면, 강 안에서 제방에 드리운 왕버들군락이 펼치는 그림같은 광경을 한번이라도 목격했더라면, 이런 일은 아마도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내성천처럼 아름다운 강을 끼고 있는 시군의 책임자들이 그 가치를 몰라주는데 주민들이야 오죽할까. 내성천을 끼고 있는 지자체인 봉화군, 영주시, 예천군의 책임자들부터 내성천을 바로 알아가는 학습의 과정이 꼭 필요하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이번에 싹쓸이 벌목당한 왕버들 군락은 이처럼 다양한 야생동물들의 서식처이자 삶의 터전으로서 이들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공간이다. 왕버들군락은 그 자체로 생태적 경관적 가치가 있고, 절대보존해야 할 식생이란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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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참히 잘려나간 내성천 경관의 핵심요소인 왕버들 군락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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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제방의 자연스레 자라난 나무들을 마구잡이로 벌채하면서 오히려 제방의 안전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위태로운 제방이 돼버린 현장이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이들이 유수의 흐름에 지장은 주는 지장목이어서 제거를 해야한다는 주장에 대해, 부산대 조경학과 홍석환 교수는 다음과 같이 유럽의 사례를 들어 반박했다.

"이들 나무들은 유수에 지장을 줘 제거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유수의 흐름을 조절해 줘 살려둬야 할 존재들이다. 유럽에서는 강의 나무를 제거하는 일은 절대로 없다. 왜냐하면 홍수시 이들이 강한 물의 힘을 완화시켜 하류지역의 홍수 피해를 막아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럽은 이런 식생들이 자라는 범람원습지를 더 만들어주고 있는 실정이다."

식물사회학자도 절대보존해야 하는 존재라 평가하고, 선진국인 유럽에서도 보호하고 장려하는 하천변의 나무를 싹쓸이 벌목했다. 생태적 무지의 행정이 도를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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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목 현장에서 만난 개구리. 그런데 색깔이 좀 낯설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덧붙이는 글 기자는 대구환경운동연합 활동가로 지난 십수년 동안 내성천을 오가면서 내성천의 변화 과정을 지켜봤다.
#내성천 #왕버들 군락 #예천군 #김종원 교수 #홍석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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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깎이지 않아야 하고, 강은 흘러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공존의 모색합니다. 생태주의 인문교양 잡지 녹색평론을 거쳐 '앞산꼭지'와 '낙동강을 생각하는 대구 사람들'을 거쳐 현재는 대구환경운동연합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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