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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아빠와 큐레이터 딸이 빈집 고쳐 만든 '작은 미술관'

충남 홍성군 홍동면 '공간들' 이하영·이민형씨

등록 2023.07.11 09:30수정 2023.07.11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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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충남 홍성군 홍동면의 하얀집, 이 집은 최근 '공간들'이란 이름의 미술관으로 탈바꿈했다.

충남 홍성군 홍동면의 하얀집, 이 집은 최근 '공간들'이란 이름의 미술관으로 탈바꿈했다. ⓒ 이재환


시골 마을 빈집을 틈틈이 고쳐가며 작은 미술관으로 꾸미고 있는 부녀가 있다. 충남 홍성군 홍동면에 살고 있는 이민형(55) 교사와 그의 첫째 딸 이하영(27) 큐레이터의 이야기이다.

유기농업으로 잘 알려진 홍동에는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 하얀집으로 불리는 작은 집이 하나 있다. 하얀집은 아담한 안마당과 장독대, 마루가 있는 전형적인 시골집이다. 이민형 교사는 3년 전쯤 이 집의 토지를 제외한 지상권(건물)을 매입해 미술관으로 꾸몄다. 이 교사는 예산의 한 학교에서 현직 교사로 일하고 있다.


영상촬영을 통해 홍동 마을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에 관심이 많은 이 교사는 하얀집을 마을 기록관으로 꾸미고 싶었지만, 큐레이터인 딸 하영씨가 미술관으로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단다.

이민형 교사는 "마을 기록에 관심이 많다. 처음에는 마을 기록관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딸 하영이는 하얀집을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고 말했다.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 하얀집으로 통하던 시골집은 그렇게 '공간 들'이란 이름의 미술관으로 재탄생했다. 공간 들이란 이름은 사람들에서의 '들'과 들판의 '들'에서 따왔다.

시골집을 미술관으로 만든 이하영 큐레이터는 지난 2018년 광주비엔날레 도슨트와 5.18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 오월미술제에서 보조큐레이터를 맡으며 이름을 알렸다. 그는 최근에는 고향인 홍동과 전남 광주를 오가며 미술 전시기획과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이하영 큐레이터는 마을과 공동체 그리고 홍동의 유기농업과 생태 농업에 대한 관심이 많다. 이민형 교사는 "공간들에 대해서라면 나보다는 딸(하영씨)의 이야기를 들어 보라"며 인터뷰를 딸에게 양보했다.

지난 9일 공간들에서 이하영 큐레이터를 만났다. 이하영 큐레이터는 이날 자전거를 타고 출근했다. 공간들에서는 '마음먹기: 평화를 짓는 마음'이란 주제로 지난 8일부터 오는 8월 13일까지 기획전시가 열리고 있다. 물론 '공간들'은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다. 앞으로 어떤 공간으로 꾸며질지 더욱 관심이 가는 이유이다.


아래는 이하영 큐레이터와 나눈 이야기를 정리한 내용이다.

"큐레이터의 길, 아버지 영향이 컸다"
  
a  이하영 큐레이터와 그의 아버지 이민형 교사.

이하영 큐레이터와 그의 아버지 이민형 교사. ⓒ 이재환


- 요즘 전남 광주와 홍동을 자주 오가는 것으로 아는데, 주로 어떤 일을 하고 있나.


"일주일 중에 3일은 전남 광주에 4일은 홍동에 머물고 있다. 지난해부터 홍동에서 조금씩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홍동과 홍동 밖의 예술가들을 이어주는 일이다. 생태 예술과 공동체 예술을 하는 작가들이 홍동에 관심이 많다. 홍동의 자료를 정리해서 소개 주는 프로젝트이다. 물론 최근에는 공간들에서 기획전시도 하고 있다."

- 미술관 이름인 '공간 들'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다.

"함께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강수지 작가와 함께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지은 이름이다. 시골 마을에 있다 보니 어르신들이 부르기에 낯설지 않고, 부르기도 쉽고 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들'은 들판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모두들', '우리들' 이란 의미도 있다. 중의적인 의미이다. 비단 전시 목적만이 아니라 함께 요리도 하고, 공연도 하고, 만남의 공간이 되기도 하는 다양한 의미의 공간으로 쓰이길 바라는 마음도 담았다."

 - 청소년기부터 큐레이터를 꿈꾸었다고 들었는데, 계기가 있었나.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아버지는 미술에 관심이 많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서 광주 비엔날레를 비롯해 제주 '문화공간 양' 등 다양한 곳을 찾아 다녔다.

대안학교인 간디학교(필리핀)를 다니다가 2학년 때 그만 두었다. 다양한 세계를 경험하고 싶어서 유럽으로 3개월 동안 배낭여행을 갔다. 유럽의 미술관은 만 18세 미만은 무료이다. 춥고 돈도 없을 때 미술관에 들어가곤 했다. 그 때 본 미술작품도 인상이 깊었지만 미술을 대하는 유럽인들의 태도가 눈에 들어왔다. 한국에서는 미술관에 가려면 마음을 먹어야 한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미술을 즐긴다. 부러웠다. 유럽 여행을 다녀와서 검정고시를 치르고, 수능을 준비해 2015년도에 조선대 미대에 진학했다."

- 어떤 기사를 보니까 이하영 큐레이터에 대해 독립큐레이터라는 소개가 있었다. 독립큐레이터는 어떤 의미이고 어떤 일을 하는지 설명해 달라.

"일단 큐레이터는 전시를 기획하고 전시에 관련한 전반적인 일을 한다. 개인적으로 큐레이터는 작품을 잘 골라서 잘 보여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독립큐레이터는 갤러리나 미술관에 소속되지 않고 프리랜서 형태로 일하는 것이다. 자기가 원하는 주제로 기획을 한다고 보면 된다."

- 5.18 광주민주화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

"광주에서 5.18 관련 전시 작업을 많이 했다. 물론 5.18 자체에 대한 관심도 있지만 5.18 당시의 광주시민들의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더 컸다. 사실은 어릴 때 5.18 국립묘지에 갔다가 본 사진들 때문에 크게 놀란 기억이 있다. 그 이후, 중학교 때까지 방에 불을 켜고 잘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두려움이 어느 정도 해소가 된 것도 5.18을 겪은 시민들과의 만남 때문이었다. 그 당시 광주시민들은 서로를 돌보고 지켰다. 그 사실을 알고 나서 5.18을 새롭게 보게 됐다. 극한의 상황이었지만 5.18은 광주시민 모두가 함께한 항쟁이다. 어떤 이는 시민군이 피신할 수 있도록 도왔고, 또 다른 누군가는 다친 시민들이 피 묻은 옷을 갈아입을 수 있도록 배려하기도 했다.

그 자체가 하나의 공동체였다는 생각이 든다. 민주주의나 평등 정신 같은 거창한 말이 아니더라도 서로를 위하는 그 마음과 연민이 인상적이었다. 공동체 문화가 잘 이루어진 홍동에서 자라서 그런지 그런 점이 눈에 더 들어왔다."  

- 시골 마을에서 전시회장을 꾸밀 생각을 한 것 자체가 모험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홍동은 생각보다 가지고 있는 것이 많다. 독일에는 카셀도큐멘타(1955년 독일 카셀에서 처음 열린 국제 미술전람회)라는 행사가 있다. 미술문화예술 쪽에서는 큰 행사이다. 그곳에 가면 향후 5년간의 미술의 흐름을 볼 수 있다고 말할 정도다. 얼마 전 다녀왔는데, 의자들이 놓여 있고 마치 홍동마을의 작은 모임처럼 특별한 미술 장치가 없었다. 사람들이 편하게 의자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했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것, 그 자체가 모두 작품이었다."

- 앞으로 홍동에서 하고 싶은 일이 있나.

"'공간 들'을 조금씩 고치면서 홍동에서의 활동도 지속할 생각이다. 홍동에는 생태와 공동체 문화에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다. 모두 미술로 표현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이번 전시 주제도 '마음먹기' 이다. 내가 홍동에서 이어가고 싶은 작업들도 일단 마음을 먹어야 가능한 일이다. 홍동 밖에도 생태와 공동체에 관심이 많은 동료 작가들이 있다. 그들의 작품도 전시하고 싶다. 우리 마을과 작가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
 
a  공간들의 한 방에는 충남 홍동면의 오리농법을 소개하는 작품이 전시돼 있다.

공간들의 한 방에는 충남 홍동면의 오리농법을 소개하는 작품이 전시돼 있다. ⓒ 이재환

 
a  이민형 교사와 그의 딸 이하영 큐레이터.

이민형 교사와 그의 딸 이하영 큐레이터. ⓒ 이재환

  
a  이하영 큐레이터.

이하영 큐레이터. ⓒ 이재환

#이하영 큐레이터 #공간들 #홍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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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자. 개인주의자. 이성애자. 윤회론자. 사색가. 타고난 반골. 충남 예산, 홍성, 당진, 아산, 보령 등을 주로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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