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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럭 화 내고, 문책 운운... '남의 편' 같은 정치인의 입

[정치인을 위한 대중소통전략 ⑧] 위기소통 못 하는 정치인은 그 자체로 위기

등록 2023.07.25 17:34수정 2023.07.25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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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사건사고 등 '위기'는 언제든 발생한다. 예방은 어느 정도 가능하겠지만 모든 위기를 막을 순 없다. 일단 위기가 발생하면, 그 다음 단계는 당연히 위기 관리다. 어떻게든 위기가 초래할 수 있는 후폭풍을 최소화하는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위기관리의 다양한 영역 중 하나가 '위기소통(Risk Communication)'이다. 사건사고에 대해 관리의 주체들이 사회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향해 소통하는 순서다.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물론, 피의자 혹은 사안에 연관된 관계자와 대중에게 위기에 대해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수행하는 것.

위기소통의 적절함에 따라 대중은 사건사고를 빠르게 받아들이며 수습 주체를 응원할 수도 있다. 반면, 말도 안되는 변명과 망언을 한다면 대중은 분노한다. 이번 수해 참사에서도 일부 정치인과 공직자들은 어김없이 미숙하고 부적절한 위기소통을 보여줬다. 사건사고에 대한 정치인 등 주요 관계자가 유념해야 할 소통 원칙을 짚는다.

'교묘한 유체이탈'은 대중을 진저리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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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첫 번째, 안 그래도 힘들어 하는 대중에게 '사고는 터졌는데 내 잘못은 아님' 식의 화법은 실망을 넘어 피로함만 가중할 뿐이다. 사건사고가 발생해 언론이 자신을 취재하거나 발언을 요구할 경우, 십중팔구 당신이 당사자 혹은 관여자라는 사실을 제발 좀 알아야 한다. 슬쩍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해 책임에서 벗어나려 해도, 대중의 인식 속에서 당신은 바로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란 말이다.

대통령부터 국회의원 등 정치인들은 물론, 장관들과 지자체장을 포함한 공무원까지 참사 발생 후 카메라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결코 '남탓'을 해선 안 된다. 당신들은 세금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니까.

사고는 안타깝지만 엄밀히 말해 내 잘못, 내 책임은 아니라고 강조하고 싶은 사람들에겐 아주 전형적인 특징이 있다. 하나는 벌컥 '화'를 낸다는 점이다. 스스로를 향한 화라면 뭉클할 수 있겠지만, 빠르게 다른 타깃을 잡아 맹렬한 분노와 함께 '이 사람이 책임자'라고 대중에 내어주는 행동이다.

지난해 이태원 참사에 이어 이번 참사에서도 윤석열 대통령은 '아래'를 향해 격노했다. 18일 비공개 국무회의에선 "물 관리 제대로 하지 못할 것 같으면 국토부로 넘겨라!"라고 환경부장관에게 분노했으며(중앙일보 보도), 17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선 "집중호우가 올 때 사무실에 앉아만 있지 말고 현장에 나가 미리미리 대처하라"고 현장 공무원들을 다그쳤다. 국정 책임자라면 으레 오류가 있는 부처나 담당자를 나무라긴 해야겠다. 하지만 '내 잘못' '우리의 잘못'이란 뉘앙스는 이번에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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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새벽 3시 30분경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충북 청주 오송 지하차도 참사 현장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 복건우

 
유체이탈자들의 또다른 특징은 바로 '문책'을 언급한다는 점이다. 참 기이한 것은 대중이 보기엔 문책을 운운하는 당사자가 바로 '책임자'라는 사실이다. 17일 오송 현장을 방문한 원희룡 국토부장관은 "책임에 대한 대통령의 문책도 있을 것" "해당 기관에서 철저한 과정을 거쳐 권한을 가진 사람이 책임져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이 발언에 과연 본인은 있었을까? 이태원 참사에서 그랬듯, 어떤 고위 담당자도 불가역적인 처벌과 문책을 당하지 않는 현실과 맞닿아 보이는 이유다. '누군가'는 문책을 받아야 하겠지만, 정작 높은 자리에 있는 본인은 아니라는 뉘앙스가 무척 강하게 전해질 뿐이다.

정부여당의 대응 실패라며 날만 세우는 야당 의원들의 행태와 무조건적 비난 또한 대중을 어이없게 만들기는 마찬가지다. 유권자가 사상 최대의 의석을 몰아준 것은 상대 당이 챙기지 못하는 민생까지 꼼꼼하게 찾아내 시민을 지켜달라는 의사표시였다. 구경만 하고 비난만 하라고 뽑아준 건 아니다. 

대중은 '어떻게 말하는가'를 유심히 본다

두 번째, 대중이 정치인의 위기소통에서 기대하는 것은 구체적 수습방안 등 콘텐츠가 아니라, 사고를 대하는 자세와 태도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무엇을 말하는가(What to say)'보다, '어떻게 말하는가(How to say)'에 집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사고에 대한 이유와 수습책을 듣고 싶긴 하다. 하지만 요즘 같은 실시간 미디어 시대에 대중은 어쩌면 정치인들보다 더 빠르게 이유를 파악하고 대안을 모색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끔찍한 사건사고가 방금 터졌는데, 어떻게 금새 이유도 찾아내고 예전으로 돌아갈 구체적 방안까지 내놓을 수 있겠는가. 대중은 정치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무척 상식적·합리적이다. 때로 기다려줄 준비도 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대중의 인내심을 폭발시키는 것은, 정치인들이 사고에 대해 보여주는 명시적 혹은 암시적 태도다. 대통령실은 수해 기간에 이뤄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에 대한 언론의 질문에 "대통령이 서울로 뛰어간다고 해도 (집중호우) 상황을 크게 바꿀 수 없는 입장"이란 메시지를 내놨다(16일 대통령실 고위관계자). 어느 국민이 그 사실을 모를까? 위기를 대하는 최고 책임자의 자세를 묻는 말에 쌀쌀한 팩트로 받아쳐 버린, 소통의 1도 모르는 담당자의 무능만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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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지난 20일 오전 충북도청에 마련된 청주 오송 지하차도 참사 합동분향소에 방문해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오송을 책임지는 김영환 충북지사는 대중의 복장을 터지게 했다. 사고 발생 보고를 받고도 즉시 현장을 찾지 않은 이유에 대해 "사고현장에 일찍 갔다고 해서 상황이 바뀔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는 말을 남겼다(20일). 게다가 전력도 있었다. 그는 4월 2일 옥천 산불 현장에도 즉각 나타나지 않았었다. 당시에도 "현장에 도지사가 가면 여러 가지로 혼선이 있을 수 있기에"라고 말했다.

김 지사가 오송 참사에 대해 내놓은 또 다른 발언은 놀라움 그 자체다. "오전 10시 10분께 1명의 심정지와 1명의 실종이 예상된다는 얘기를 들었다. 한두 명 사상자가 발생했구나 정도로만 생각했지, 엄청난 사고가 일어났다고 생각하지 못했다"라고. 사고사는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가족에겐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이라는 걸 모르나. 

사망자 조문을 통해 비극을 대하는 자세를 암시적이지만 명확하게 보여준 정치인들도 있었다. 언론 보도 영상을 보면,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와 이철규 사무총장 일행은 사망한 시신이 안치된 장례식장에서 여러 빈소를 방황했다. 누군지도, 어딘지도 모르던 그들은 결국 "청주시 관계자 어디 있어요?" "아니, 좀 미리 와서 (안내)해야지" 등 의전에 대한 아쉬움을 표했다.

청양 수해 지역을 찾은 김기현 대표와 정진석 의원의 행동도 목불인견이긴 마찬가지였다. 황망한 주민들 앞에서 무려 5선 정진석 의원은 특별재난지역 관련 언급에 "박수 한번 쳐주세요"라고 했다. 정당과 구성원들이 국민의 위기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갖는지 보여주는 메시지였다.

정치인이여, 사건사고 앞에선 '정치적'이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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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수색 시작한 해양경찰 미호천 제방 유실로 침수된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에서 지난 17일 새벽 해양경찰 대원들이 도보수색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세 번째, 정치인의 위기소통은 절대로 '정치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정치인은 직업적으로 24시간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위기에 정치를 살짝이라도 섞을 경우 강성 지지층을 제외한 절대다수의 대중은 결코 당신을 응원하지 않음을 명심해야 한다.

윤 대통령의 사례를 보자. 어찌됐든 외교 순방을 마치고 돌아와 수해현장으로 달려갔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18일 국무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이권 카르텔, 부패 카르텔에 대한 보조금을 전부 폐지하고 그 재원으로 수해복구와 피해보전에 재정을 투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참사에 정치를 섞어 국면을 전환하려는 메시지임을 대중은 쉽게 간파할 수 있다.

대통령이 직접 이 발언문을 작성하지 않았다면, 원고를 작성한 참모는 위기소통에 있어서 국민이 아니라 대통령만을 바라보는 사람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뜬금없이 '이권카르텔'을 어떻게든 끼워넣어 '그 분'의 의중을 기가 막히게 연결시켰다고 만족했을지 몰라도 중도층 등 다수의 마음을 얻는 소통은 아니었다고 평가한다. 수해가 터지자마자 이때다 싶어 전임 정권의 4대강 보 철거와 물관리 일원화를 직접적 이유로 지목한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참사에 정치를 엮으려는 안 좋은 소통방식은 정부여당뿐만 아니었다.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윤 대통령의 행동과 말은 우리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궁평 지하차도로 밀어넣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수사를 대중에게 내놨다. 부족하고, 부적절한 이 메시지는 상당수 대중의 분노를 자극했다. 결국 그는 18일 "제 불찰"이라며 사과했다. 어떻게든 듣는 이의 주목을 받으려 했던 졸작이었다.

"비가 오지 않아도, 너무 많이 내려도 내 책임 같았다"는 말

대중은 정치인에게 의외로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특히나 사건사고 등 예측하기 어려운 위기가 닥쳤을 때, 대중은 '무조건 당신 때문'이라거나 '순식간에 피해를 복구하라'는 억지를 부리지 않는다. 대중은 정치인에게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국민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같은 편이라는 느낌이 들게 행동하라는 소박한 욕심을 갖고 있을 뿐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비가 오지 않아도, 비가 너무 많이 내려도 다 내 책임인 것 같았다. 대통령은 그런 자리였다"라고 썼다. '위기 소통'이라는 거창한 용어를 대입하지 않아도, 정치인이 위기를 대하는 자세와 국민을 향한 마음이 잘 드러난다.

2023년의 정치인들이여. 교묘한 유체이탈, 아래를 향한 역정, 참사를 엮는 정치적 수사는 결코 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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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전역에 호우주의보가 발효 중인 23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이 우산을 쓴 채 걸어가고 있다. ⓒ 연합뉴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유현재씨는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입니다.
#수해 #윤석열 #위기소통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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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수용자 중심 저널리즘과 미디어 활용에 대해 강의 중. 정치인들을 포함, 공적 영역에 있는 사람들이 과연 대중과의 소통을 얼마나 원활하게 하고 있는지 ‘소통감수성 ’이란 개념을 통해 설명 및 비판하고 있음. 세바시에 출연, “소통 감수성이란 무엇인가?”“미디어 시대, 우리가 건강하지 못한 이유”등을 주제로 강의.

이 기사는 연재 폭우참사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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