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도 아니고, 시인을 꿈꾸지도 않으면서, 시인의 문장을 흉내내고 싶었다.
최은경
일일이 나열하긴 어렵지만 한때 유명 시를 패러디해서 짓는 제목들도 꽤 있었다. 최영미 시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가 대표적. 얼마 전 물리학자 김상욱씨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이라는 책도 냈더라. 보자마자 윤동주 시인의 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제목이 연상되는 게 나뿐만은 아닐 터.
잘 알려진 시이거나 화제가 된 시 등이 그 대상이 되곤 했는데, 요즘은 그런 경향을 찾아보기 힘든 것 같다. 책도, 시도 읽지 않는 시대라서 그런가. 시집 몇 권 읽는다고 시인처럼 쓸 수는 없었지만 시적인 제목을 뽑는 재미는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그간 어떤 시를 제목에 써먹었을까. 찾아보니 이런 것들이 눈에 띄었다.
<빈집>,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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꽉 찬 냉장고... 통장 잔고를 잃고 살을 얻었네 https://omn.kr/1muq2
<풀꽃>, 나태주, 오래 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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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떨어져 보아야 안다, 아이도 그렇다 https://omn.kr/1jaty
<가난한 사랑 노래>, 신경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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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이라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https://omn.kr/frzc
지금 10~20대들은 잘 모르겠지만 40대 이상은 알 만한 시들이다. 유명 시의 문장을 약간 비슷한 문장으로 바꿔 단 경우다. 혼자만 몇 번 '근사하다'고 생각했던 시인의 문장 따라하기는 오래 가지 않았다.
뉴스 제목으로 시적인 표현은 독자의 시선을 끄는 문장이 아니라는 걸 자주 확인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생각보다 조회수가 안 나왔다. 독자들은 상징이나 은유보다 대놓고 드러내놓고 말해주는 제목을 더 선호했다. 떠먹여 주는 걸 좋아했다.
'실망스러운 놀면 뭐하니, 나영석에게 배워라', '삼척 사는 중학생인데요, 등굣길이 이모양입니다', '몇 학번이냐고요? 대학 나온 사람만 보십시오' 등의 사례에서 보듯 직관적인 제목들은 조회수 올라가는 속도부터 달랐다. 새로고침을 하기 무섭게 숫자가 확확 늘었다.
시와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