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다리 안아파?" 하며 찍어준 찐빵이 된 우리 모습.
정수지
하지만 나도 쉽사리 자리를 내주기가 힘들었던 것이 아들이 다리 아프다고 징징거려 두 아이 모두를 내 무릎에 앉히고 있던 상황. 내가 자리를 양보하면 저 엄마처럼 서서 가야 하는데 과연 괜찮을까?
사람들에게 자리 비켜달라고 말할 용기도 없고 누군가 자리 비켜주길 바라는 것도 무리이고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내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었다. 굳이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지만 또 한다면 할 수 있는 일, 선택은 내가 하기 나름이었다.
"여기 앉으실래요?"
아기 엄마는 흠칫 놀란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갑자기 들려온 스웨덴어에 자리까지 비켜주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는데 그게 나라서 놀랄 법도 할 테다.
"감사해요. 그런데 괜찮아요. 곧 잘 거 같아요."
스웨덴어로 대화를 나눴지만 사람들은 느낌적으로 내가 자리를 내주려는 걸 알았을 것이다. 사실 그러고 싶었다기보다 사람들이 제발 이 상황을 주목해주길 바랐다. 혹시 이러는 와중에 누군가 한 명은 우리를 도와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다.
나는 정말 괜찮냐고 한 번 더 물었고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지그시 감고 아이를 재우려 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는 더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했다. 울음소리를 들으니 더 이상은 안될 것 같다는 생각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냥 여기 앉아요. 지금 아기가 먹어야 할 거 같은데요."
나는 남편에게 5살 아들을 넘기고 딸을 꼭 껴안고서 자리에서 나오려 했다. 그런데 내가 한 걸음 떼려는 순간 뒷사람이 내 어깨를 톡톡 치며 말했다.
"저기요, 여기 앉으세요."
뒤를 돌아보니 서 계셨던 나이가 지긋한 여성 한 분. 내 마음이 누군가에게 전해지긴 했는데 그게 왜 하필 당신인가요? 한국에 계신 엄마와 비슷한 연배라 마음이 좀 뜨끈해지기도 또 죄송스럽기도 했다.
근데 이왕 서기로 한 거 감사히 자리를 건네받고 남편과 딸을 앉혔다. 그리고 나는 아들과 그 스웨덴 엄마가 서 있던 자리로 갔다. 내 자리에 앉게 된 스웨덴 엄마는 모유수유를 하기 시작했고 이내 버스에서 더 이상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절반 정도 여정이 남은 상태, 버스는 30분을 더 달려야 했다. 남편이 자리를 바꾸겠냐고 물었지만 나는 서기로 마음먹었다. 그 노년 여성도 내 근처에 서게 되며 눈을 두어 번 마주쳤는데 그때마다 서로 미소를 띄어 보였다.
이상하게 공간은 콩나물시루처럼 좁고 답답하긴 했지만 서 있는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아마도 앉아 있는 것 보다 지금이 더 낫다고 생각들어서인지도 모르겠다.
버스가 종착역에 도착하고 짐칸에서 유모차를 찾고 있는데 스웨덴 부부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아까 버스에서 도와줘서 정말 고마웠어요. 그쪽 아니었음 정말 힘들었을 거예요."
수심이 가득했던 버스 안에서와 달리 아기의 부모들은 환히 웃어 보였다. 우리는 서로를 향해 좋은 하루보내시라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이제 본격적으로 여행을 시작해 볼까? 그런데 버스 터미널을 나선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아들이 짜증을 부리기 시작했다.
"엄마 나 너무 힘들어. 다리 아파서 걷기 싫어."
버스에서 앉고 서기를 반복했던 아들이 여행 시작도 전에 지쳐버렸는데 이를 어찌하면 좋을까? 또 기로에 섰다 선택의 시간이다. 나도 남편도 지친 탓에 쉽게 가기로 마음먹고 달콤한 제안을 했더니 갑자기 기적(?)처럼 다리를 잘 움직이는 아들내미.
결국 팔마 대성당, 시내, 해변 유명 관광지는 다 제쳐두고 첫 번째 방문지로 장난감 가게를 찾아 돌아다니느라 몇 시간을 허비하고 말았다. 이 또한 내 선택에 대한 책임으로 기꺼이 받아들이는 수밖에.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오늘을 설레며 살고 싶은 자유기고가.
현재는 스웨덴에서 살면서 느끼는 것들을 이야기합니다.
공유하기
스페인 만원버스에서 우는 아기를 위해 할 수 있는 일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