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차 농부 김승천 사장호텔경영 배운 것이 파프리카 농사에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고 하는 서른 둘의 김승천이다. 그래도 활동적인 아내를 위해 지역사회에 나눔을 할 수 있는 또다른 일을 찾아보는 중이라고 한다.
김은아
"저는 호텔경영을 전공했어요. 유학 가서도 호텔관광을 공부했는데 그때만 해도 즐거웠어요. 10년 전 현실의 벽에 부딪히기 전까지는요. 한국에 돌아와 유명 기업에 취업했는데 기본급 80만 원에 나머지는 제가 영업하고 뛰는 만큼 인센티브를 받는데 최고 많아 봐야 100만 원인 거예요.
그러면 제가 죽도록 일을 해도 한 달에 180만 원 이상은 못 받는 거잖아요. 생각이 깊어졌어요. 극심한 스트레스와 때로는 불합리한 업계의 관행에 대해서요. 저에게 개복치 성향이 조금 있는 것은 알았지만 그때 깨달았죠. 진정한 개복치라는 것을요."
스트레스가 최고치에 달할 무렵인 2015년, 김승천은 그가 태어나고 자란 봉화 춘양으로 내려왔다. 부모님 곁에서 잠시 쉬어가려고 말이다.
"그냥 아버지 옆에서 묵묵히 일했어요. 진로에 대해 고민도 많았구요. 아버지는 저희 일에 구체적으로 개입하지 않으시는 분인데 그 날따라 물으시더라고요. '너 한 달에 얼마 받지?' 하고요. '죽도록 하면 180만 원 정도요.' '너 한 달 죽도록 일해서 버는 것 아버지는 하루면 벌어. 와서 일해라' 하시는 거예요. 두 달 동안 일을 하고 서울로 돌아가려니 아버지가 500만 원을 챙겨주시는데 그때 마음이 묘하더라고요, 그래서 아버지 옆으로 와서 농사일을 배우기로 했어요."
- 그럼 춘양에 내려온 이유 중에 경제적 이유가 가장 컸던 거네요?
"처음에는요. 그런데 제가 스트레스에 완전히 취약한 개복치 과라는 것을 알고 나서 춘양은 저의 고향이기도 하지만 운명과도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파프리카와 일종의 사랑에 빠진 거죠. 제가 무슨 말을 해도 묵묵히 들어주고, 밖으로 소문도 내지 않아요. 그리고 제가 사랑을 쏟은 만큼 이 아이는 제 마음과 정성을 알아줘요. 정말 정직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