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위한 맛있는 상상, 모두를 위한 정의로운 한 끼

[최원형의 오늘하루 지구생각] 누가 내 밥상을 떠받치고 있을까

등록 2023.09.27 11:06수정 2023.09.27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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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 최원형


토마토와 양파는 인도 음식에 기본이 되는 식재료다. 올해 인도는 우기에 쏟아진 폭우로 농사를 망치면서 토마토 공급에 차질이 생겼고, 토마토 가격은 한때 5배나 폭등했다. 가격이 오르는 걸로 그친 게 아니라 나마 수확한 토마토마저 품질이 너무 떨어져 식재료로 사용할 수 없었다는 소식도 들렸다.

인도만 문제였을까? 한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이 공급이 자주 중단되어 오이소박이를 딱 한 번 담그고 나니 여름이 지나갔다. 생협 매장엔 여름 동안 채소와 과일이 귀했다. 올봄 이상고온으로 과수나무에 꽃이 일찍 그리고 많이 피었지만, 갑자기 기온이 곤두박질치더니 3월 말까지 쌀쌀한 날씨가 이어졌다.

꽃은 그대로 얼어버렸고 그나마 견딘 꽃들은 4월부터 6월까지 서리와 우박에 시달렸다. 간신히 수정된 열매는 저온 피해로 모양이 찌그러져 상품성이 떨어지거나 아예 익지도 못하고 그대로 떨어져 버렸다. 피해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7월에 집중적으로 쏟아진 폭우로 여의도 면적의 119배에 이르는 농경지가 침수 피해를 보았다. 집중호우가 끝나자 이번에는 무더위가 이어지면서 전염병이 퍼졌다. 재난이 종합세트로 벌어지는데 일 년 농사를 망치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해마다 계절 변화의 진폭이 점점 커지다 보니 생산량 예측이 갈수록 어려워진다. 급기야 농촌진흥청은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반영해 주요 과일의 재배지 변동 지도를 발표했다. 그러나 지도가 우리에게 먹을거리를 가져다줄 수는 없다.

왜 호모사피엔스는 수십만 년을 떠돌아다니며 살았을까? 왜 지금으로부터 7천 년 전에야 비로소 농사를 시작할 수 있었을까? 열쇠는 기후다. 빙하기의 혹독한 환경이 점차 간빙기로 이행하고 그로 인해 상승하던 해수면이 안정되기 시작한 때가 바로 7천 년 전이었다. 예측할 수 있는 기후 패턴은 우리가 다음 농사를 준비하고 갈무리할 여유 시간을 보장할 뿐만 아니라 작물이 때맞춰 자라나게 해 준다.

아직 과학과 기술이 발전하지 못했던 그 시대에 날씨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은 권력이 되었다. 한 해 날씨를 내다본다는 것은 사람들의 안정된 삶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먹고살기 힘들어질 때마다 민란이 벌어졌던 역사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먹지 않고 버텨낼 생명은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과학과 기술이 인류 역사상 정점에 이른 21세기에도 먹고사는 일에서 기후의 영향력은 결정적인 변수로 작동한다.

우리의 식탁은 정치적이다


먹을거리에 영향을 끼치는 변수는 기후 말고도 더 있다. 우리의 식탁은 겉보기에 더없이 풍요롭지만, 자본주의 푸드 시스템을 알면 알수록 빈곤하기 이를 데 없는 식탁과 마주하게 된다. 오늘날 음식은 먹는 즐거움이자 문화의 근간을 이루지만, 그것 말고도 온갖 문제를 배태하고 있다. 날마다 먹는 음식이 어디서 어떻게 길러지고 어떤 유통 과정을 거쳐서 내 식탁에 오르는지 알수록 이 문제는 정치적이다.

식품을 자급자족하고 잉여생산물을 수출하던 멕시코가 값싼 미국 수입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된 배경, 옥수수의 가치가 폭락해 멕시코 소농들이 땅을 버리고 도시 빈민이 될 수밖에 없는 배경에는 북미 자유무역협정인 나프타(NAFTA) 1)가 있었다. 멕시코 어린이의 10%는 영양실조로 고통받고 성인의 70%는 과체중이거나 비만이 될 수밖에 없는 까닭, 토마토·피망·아보카도 같은 건강한 식품을 수출하면서도 정작 멕시코에서는 이런 식품들이 너무 비싸 국민 대다수가 사 먹을 수 없는 까닭이 바로 세계 푸드 시스템 때문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식용유 가격이 출렁이던 기억이 아직 남아있다. 식량 수급의 변수는 곳곳에 널려 있다. 2022년 12월 1일을 기준으로 통계청이 발표한 우리나라 농가 인구는 216만 6천 명으로 전체 인구의 4.3%며, 이 가운데 62%가 60세 이상이다. 2021년 기준 식량자급률은 44.4%, 곡물자급률은 20.9%다. 쌀을 제외한 밀·콩·옥수수 등 주요 곡물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데다 최근 5년 동안 자급률은 지속해서 하향 그래프를 그리는 중이다.

기후위기 시대에 이토록 식량안보 상황이 나쁘다 보니 대외 충격에도 취약할 수밖에 없다. 올해 4월 농림축산식품부는 '2023-2027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발전계획'을 발표하며 5년 동안 중점적으로 추진할 5대 전략을 설정했는데 그 첫 번째가 '굳건한 식량안보 확보'다. 그러나 농지는 연평균 1.2%씩 감소하고 있다. 또한 지방자치 확대에 따라 새로 개발되는 땅 가운데 많게는 30~40%가 농지를 갈아엎어 만들어지는 상황이다. 이를 보면 '굳건한' 식량안보라는 말에 선뜻 신뢰가 가질 않는다.

소설가 어슐러 K. 르귄(Ursula Kroeber Le Guin)은 상상력이야말로 인류의 가장 유용한 도구라고 했다. 음식을 먹을 때마다 내 밥상을 차리는 보이지 않는 손을 상상해보자. 국가와 연관된 식품 환경, 푸드 시스템의 세계적 추세, 식품 산업을 지배하는 자본주의 시스템, 식량안보 그리고 기후위기까지. 내 밥상을 떠받치고 있는 무수한 것들을 상상하다 보면 어떤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결국 정치가 제대로 작동할 때 오늘 내 한 끼가 무사할 수 있다는 것을. 그러니 '굳건한 식량안보'를 뒷받침할 내년 총선 공약을 지금부터 상상해야 하지 않을까?

1) 지금은 2020년 7월 1일 발효된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이 북미 자유무역협정(NAFTA)을 대체했다.
덧붙이는 글 글 최원형 환경생태작가. 이 글은 참여연대 소식지 <월간참여사회> 2023년 10월호에 실립니다. 참여연대 회원가입 02-723-4251
#기후위기 #식량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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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가 1995년부터 발행한 시민사회 정론지입니다. 올바른 시민사회 여론 형성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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