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월 18일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및 피해자 권리보장을 위한 특별법’(이태원참사 특별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 건의가 의결된 가운데, 서울 용산 대통령실앞에 급히 모인 이태원참사 유가족들이 국민의힘 규탄 및 윤석열 대통령의 특별법 즉각 공포를 촉구하며 단체 삭발을 했다. 삭발을 마친 고 이남훈씨 어머니 박영수(57)씨를 다른 유가족이 부둥켜 안고 오열하고 있다.
권우성
1258명, 304명, 159명
1258명. 김태종씨 말대로 정부가 인정한 가습기 살균제 참사 사망자수다.
304명. 2014년 세월호 참사 사망자수다.
159명. 2022년 이태원 참사 사망자수다.
언뜻 출생률과는 무관해 보일지 모르는 세 참사다. 하지만 이 숫자들을 천천히 다시 쳐다본다. 1258명. 304명. 159명.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평범한 '동료 시민'들이 아무 잘못 없이 한꺼번에 죽었을 때, 국가가 그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우리 인간은 본다. 그리고 학습한다. 적응한다.
윤 대통령은 30일 결국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유가족들이 언 땅에 오체투지를 해가며 요구한 진상조사기구를 거부한 이유, 그리고 대신 내놓은 '피해자 지원책'의 부실함은 차치하고서라도, 이번에 정부에게 무엇보다 뼈아픈 대목은 유가족에게 사전 설명도 없이 이같은 내용을 언론에 일방적으로 발표했다가 반발을 산 점이다.
정부·여당은 한발 더 나아가 특별법에 대해 "정쟁의 수단이 될 수 없다"(한덕수 국무총리), "재난의 정쟁화"(정희용 국민의힘 원내대변인)라고까지 언급했다. 이전 참사 때와 기시감이 든다. 정부 발표를 접한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우리를 무시하고 모욕했다"고 울었다.
1258명. 304명. 159명. 13년 사이 세 차례 대형 참사를 겪고도 유가족들과 충분히 만나 설명하고, 궁금증을 풀고, 대화하고, 신뢰를 형성해가는 상식적인 국가를 만들지 못한 것은 바닥을 기는 우리의 출생률과 관계가 없을까?
마치 후배 부모들에게 당부하듯 "아이 낳지 마십시오!"라고 외쳤던 이태원 유가족 박영수씨는 30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도 똑같이 소리치고 있었다. 박씨는 대통령 거부권 행사 소식을 듣고 광화문 길가에 쓰러졌다. 119 구급대에 실려갔다. 한국이란 나라에 사는, 유달리 적응 능력이 특출나다고 정평이 난 인간들은 이 광경을 또 숨죽여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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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낳지 마십시오!"... 저출생, 가습기 그리고 이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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