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활과 화살, 그리고 궁대(화살띠). 의열단의 도시 밀양에서 열리는 대회이기에 특별히 '조선의용대' 대원들이 착용했던 뱃지를 달고 출전했다.
김경준
"관중이오!"
첫 발부터 화살이 시원하게 과녁의 정중앙을 때렸다. 그러나 '첫 끗발이 개 끗발'이라던가. 그다음부터는 엉망이었다. 정면을 향해 곧게 날아가던 화살이 과녁에 도달하기 직전에 자꾸만 오른쪽으로 빠졌다. 풍기(활터에서 바람의 방향을 알려주기 위해 세워둔 깃발)를 보니, 오른쪽을 향해 부는 바람이 만만찮았다.
이후 과녁의 왼쪽 방향으로 일부러 '오조준'을 해가며 나름대로 바람을 계산해보려 했으나, 화살은 어김없이 과녁보다 오른쪽에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바람은 계산하는 게 아니라 극복하는 거라고 했던가. 하지만 이날 나는 계산에도 실패, 극복에도 실패했다.
최종 성적은, 15시 3중(15번 중 3번 과녁에 꽂힘). 지역 대회에서도 이렇게까지 처참한 성적을 받아본 적이 없었는데, 전국대회 신고식치고는 참 쓰라린 결과였다.
애꿎은 바람을 원망해보기도 했지만, 이내 결과를 담담히 수용하기로 했다. 거센 바람에도 불구하고 3순을 잇달아 관중시켜 15시 15중을 달성한 고수들도 있었다. 그들에게도 바람은 공평하게 불었을 것이다. 결국은 내 실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 아니겠나.

▲ 첫 전국 대회에 출전하여 활을 쏘는 기자의 모습 (2024.7.29 / 밀양 영남정)
김경준
역시 세상은 넓고 고수는 많다. 악조건을 극복하고 쏘는 족족 맞히는 이들을 보며 '저런 경지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노력했을까', '평소에 나는 얼마나 열심히 연습했던가' 반성하게 됐다.
무엇보다 이번 대회를 통해 내가 배울 수 있었던 가장 큰 가르침은 '인내'였다. 이 무더운 날씨에, 수백 명의 사람들로 바글바글한 활터에서, 언제 불려나갈지 모르는 긴장 모드로 기다리는 것은 그 자체로 고역이었다.
당연히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지칠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활을 쏴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궁사들의 모습은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기술도 기술이지만, 오랜 시간을 인내할 수 있는 체력과 마음의 여유야말로 고수가 되는 비결 아닐까. 비록 입상은 못했지만 큰 공부를 하고 돌아올 수 있었다.
'밀양 의열단기 전국활쏘기대회'는 어떨까

▲ 활을 쏘는 선수들의 모습
김경준
마지막으로 한 가지 제언을 하고 싶다.
이번 대회의 타이틀은 '밀양시장기'였다. 그런데 다른 지역에서 열리는 전국 대회의 경우 지역이 배출한 위인이나 역사적 사건을 타이틀로 거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정읍은 '동학농민혁명 기념', 통영은 '한산대첩기', 남원은 '황산대첩 기념 이성계장군기' 등이다.
그런 차원에서 나는 밀양 역시 '의열단기 활쏘기대회' 등으로 타이틀을 바꿔서 추진해보면 어떨까 싶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밀양은 무수히 많은 의열단원들을 배출한 의열의 도시다. 호국무예인 전통활쏘기를 겨루는 대회에 '의열단'이라는 타이틀, 얼마나 적절하고 폼나는가(궁도라는 말 자체도 일제강점기 이후 정착된 일본식 용어이므로 기왕이면 활쏘기대회나 궁술대회로 대체하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다).
더군다나 현재 독립운동가들을 기리는 활쏘기 대회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내가 알기로 춘천 호반정에서 열리는 '의암류인석대한13도의군도총재배'가 유일하다. 밀양에서 의열단기 활쏘기대회가 열린다면, 좋은 선례로 기록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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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사학과 박사과정 수료 / 서울강서구궁도협회 공항정(空港亭) 홍보이사 / '어느 대학생의 일본 내 독립운동사적지 탐방기', '다시 걷는 임정로드', '무강 문일민 평전', '활 배웁니다' 등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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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양궁을 응원하며, 저도 활을 쏘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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