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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조개 주름에 담긴 금강, 산 강의 징표

[세종보 천막 소식 96일차] 4대강사업으로 사라졌던 말조개... 악몽 재현돼선 안돼

등록 2024.08.03 18:47수정 2024.08.03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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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가마우지 떼 먹이활동 후 몸 말리고 있는 가마우지떼

가마우지 떼 먹이활동 후 몸 말리고 있는 가마우지떼 ⓒ 임도훈

 
"가마우지가 몸 말리고 있네."

더위를 피해 한두리대교 아래 그늘에 앉아 있다가 건너편 하중도의 가마우지 떼를 보며 혼잣말을 했다. 팔 벌리기를 하듯이 날개를 좌우로 쫙 편 채 서 있는 모습이 한편으로는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한창 먹이 활동을 하고 몸을 말리는 모양이다. 가마우지가 한차례 강 위, 아래로 우르르 몰려다니며 제 삶을 이어가고 있다. 꽤 성실해 보이는 친구들이다.

장마 때 말아서 보관하던 대형 현수막 몇 개를 농성장 근처에 널어두고 말리고 있는데, 흰목물떼새와 검은등할미새가 거리낌 없이 지나다닌다. 검은턱할미새도 보이는데, 이를 알아보는 방법을 두고 나귀도훈(임도훈 보철거시민행동 간사)과 얼가니새(이경호 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가 옥신각신한다. 서로 자기가 더 잘 알아볼 수 있다고 나서는 사이 새는 날아가 버렸다.

버드나무가 누런 잎을 눈처럼 떨구고 매미 울음소리도 점차 잦아들고 있다. 뜨겁게 기승을 부리던 여름이 서서히 물러나는 듯하지만, 아직은 견뎌야 할 날들이 많다. 금강 변 바람에 의지해 오늘도 폭염주의보 안내 문자를 보며 하루를 지켜내고 있다. 

비 온 뒤 발견되는 말조개… 4대강 사업 공사 후 자취 감춰
 
a 말조개 농성장 근처에서 발견한 말조개 껍데기

말조개 농성장 근처에서 발견한 말조개 껍데기 ⓒ 박은영

 
펄이 쌓였던 틈새로 말조개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오늘은 큰 말조개를 하나 발견했다. 국립생태원 자료에 따르면 말조개는 하천, 강 등 맑은 물이 흐르는 모래, 자갈에 서식하며 껍데기의 길이는 7.6cm로 두껍고 성장맥이 있다. 껍데기 표면이 검고 안은 청백색 진줏빛이 돈다. 금강에 가면 늘 말조개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말조개는 과거 4대강 공사를 하던 2010년 집단 폐사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4대강 사업이 있기 전부터 공주시 금강 북쪽 강변은 모래와 자갈이 많아 각종 어패류의 산란장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4대강 사업 공사가 시작되면서 말조개도 위협받기 시작했다. 

 
a  공주대교 교각공사를 위해 해체된 돌보의 모습

공주대교 교각공사를 위해 해체된 돌보의 모습 ⓒ 김종술


공사가 시작되고 공주대교 교각 공사를 위해 돌보를 해체했는데 상류의 수량이 1미터가량 줄어드는 일이 벌어졌다. 물이 갑자기 빠지자 물가에 서식하던 어패류(말조개, 뻘조개)가 물밖에 드러나서 집단 폐사 위기에 처했던 것이다(관련기사: 새섬 말조개·뻘조개는 왜 집단폐사했나 http://bit.ly/XMStkm). 


공사가 완공되고 물 흐름이 없어지면서 하중도는 모두 사라졌고 말조개 또한 자취를 감췄다. 말조개, 펄조개, 자라까지 4대강 보가 생기면서 강에 살던 생명들이 폐사하고 자취를 감췄다. 공주대교 돌보를 해체하자 드러난 조개를 줍던 이들의 사진이 애처롭다. 4대강 사업으로 우리가 잃은 것은 자연이 거저 제공했던 천혜의 환경이고, 얻은 것은 녹조로 가득한 물이었다.

말조개 주름에 쌓인 금강 … 세종보 해체하라
 
a 금강트래킹의 추억 회원들과 함께 매달 금강을 찾아 걸었다.

금강트래킹의 추억 회원들과 함께 매달 금강을 찾아 걸었다. ⓒ 대전충남녹색연합

 
"이거 잘 가지고 있어요. 이제 못 보게 될 거예요."


4대강 공사가 시작되기 전 대전충남녹색연합은 매월 회원들과 금강 트래킹을 다녔다. 당시 연기군에 살면서 금강지킴이 활동을 하던 임비호 선생님이 내게 말조개 껍데기를 몇 개를 건네주었는데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결혼하고 이사를 두어 번 했는데 그때마다 남편이 버릴까 물었지만 잘 챙겨서 투명한 병에 담아 진열해 두곤 했다.

4대강사업으로 강바닥이 파헤쳐지고 녹조가 강을 새파랗게 점령하고, 큰빗이끼벌레가 창궐하면서 죽어가는 금강. 이를 지켜보면서 차마 그 말조개 껍데기를 버릴 수가 없었다. 맑았고 모래와 자갈이 가득했던 금강을 잊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걸 버리면 금강을 영영 되찾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a  4대강 사업 전 금강에서 임비호 선생님이 주셨던 말조개와 그 친구. 아직 간직하고 있다.

4대강 사업 전 금강에서 임비호 선생님이 주셨던 말조개와 그 친구. 아직 간직하고 있다. ⓒ 박은영


오늘 다시 만난 금강의 말조개는 꽤 긴 성장맥을 가지고 있었다. 오랫동안 금강에서 지낸 흔적이 그 맥바디에 남아있다. 자갈자갈하며 흐르는 여울의 소리, 모래틈을 부드럽게 지나갔을 움직임, 펄 속에서 인내하며 보냈을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듯해서 애틋했다. 
 
a 오소리 발자국 밤사이 돌아다닌 오소리 발자국

오소리 발자국 밤사이 돌아다닌 오소리 발자국 ⓒ 임도훈

 
"밤에 오소리 돌아다니던데요."

농성장 야간 당번을 했던 분이 간밤에 오소리를 보았다고 알려주었다. 오소리 발자국이 여기저기 박혀있다. 저녁에는 뭔가 스멀스멀 지나가는 느낌이 들어 몰래 밖을 보니 어린 고라니 하나가 살금살금 지나가고 있었단다. 어두운 밤이라 카메라로 찍을 수 없어 가만히 지나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고 했다. 천막 바로 옆에는 수달 똥도 즐비하다.

긴 장마, 한달 동안 하천 둔치 위에 올라가 있었을 때 그리워했던 순간들이다. 간헐적으로 다가오는 물내음과 시원하게 부는 바람, 다채로운 새들의 소리가 사라져 버릴까, 혹여나 수문을 도둑처럼 닫는 것은 아닐까, 조바심을 내기도 했는데, 이제는 마음이 한결 가볍다.

장마가 몰고 온 자갈들이 수북하게 쌓였다. 장마 전에 보았던 자갈보다 더 깨끗한 돌이다. 이걸 보며 거센 물살에 휩쓸린 돌탑을 다시 쌓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금강이 계속 흐를 수 있도록 마음을 다시 쌓아야겠다. 이 더위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세종보를 막으려는 계획을 포기하지 않는 환경부에 결코 지지 않겠다는 마음의 증표를 강변에 다시 한번 새겨야겠다.
#금강 #세종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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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운동가, 글쓰는 사람. 남편 포함 아들 셋 키우느라 목소리가 매우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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