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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100일 동안, 매일매일 이겼다... 다리 밑 '축하잔치'

[세종보 천막 소식 99일-100일차] 금강을 지킨 천막농성 100일… 이제 101일이다

등록 2024.08.08 15:07수정 2024.08.08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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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아침 천막농성장 풍경

아침 천막농성장 풍경 ⓒ 대전충남녹색연합

 
"물 흐르는 소리가 제법 가깝게 들리네."

일요일에 쏟아진 소나기로 금강 물이 많이 불어났다. 한두리대교 다리 그늘 코밑까지 물이 차올랐다. 그 앞에 가만히 앉아있으면 물 흐르는 소리가 제법 들린다. 자장가 같기도 하고 뭔가 말을 걸고 있는 듯도 하다. 알고 보면 자연은 쉬지 않고 자기 존재를 알리며 소리를 낸다. '나 여기에 있소!'라고 말하는 듯하다.

한낮의 뜨거움이 익숙해질 무렵 소나기가 무섭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빠르게 불어나는 강물을 보면서 천막 안의 집기들을 대피시키고 문을 닫아걸면서 한바탕 난리를 치렀다. 하지만 이도 한순간이다. 비가 지나가니 반짝 해가 나고, 빗물에 씻긴 시원한 바람이 분다. 이런 자연의 흐름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것도 강에 있기에 할 수 있는 경험이다.

멀리 부산, 서울에서 온 동지들이 천막의 밤을 지켜주었다. 이 천막농성장은 대체 무엇이길래 우리를 이렇게 모이게 하고, 뜨겁게 했던 것일까. 4대강사업으로 아팠고 망가졌던 강의 모습을 봐왔기에 그럴 것이다. 죽은 강을 보면서 산 강의 소중함을 절감했기 때문에 이곳만은 지켜야 한다는 공감대가 넓게 퍼져있는 것은 아닐까.

천막농성 100일… 우리의 투쟁은 계속된다
 
a  세종보 재가동 중단 천막농성 100일 기자회견

세종보 재가동 중단 천막농성 100일 기자회견 ⓒ 이경호

 
지난 6일, 천막농성 100일을 맞아 보철거를위한금강낙동강영산강시민행동(시민행동)은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 4월 29일부터 세종보가 닫힌다면 수몰이 예정된 상류 300m 지점의 하천부지에서 천막을 치고 농성을 이어온 지 100일 째되는 날이다. 20여 명의 시민사회단체들이 참여한 가운데 세종보 재담수 계획 철회와 물정책 정상화를 촉구했다. (관련 기사 : "산 강 지키는 100일 싸움… 윤석열 '돈 잔치' 묵과 못해" https://omn.kr/29p1y)

국가 물정책이 그야말로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다. 세종보 재가동은 '제2의 4대강 삽질'을 알리는 첫 신호탄이 될 것이기에 이를 막기 위해 시작한 풍찬노숙이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보 재가동 추진이 중단되고 보 처리방안 취소와 국가물관리기본계획 재검토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농성을 이어갈 것"을 선언하며 장기 투쟁의 의지를 다졌다.

환경부는 기후대응을 위해 댐을 건설한다고 국민들을 현혹하지만 이는 대규모 토건사업을 위한 핑계일 뿐이라는 것을 많은 국민들은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보를 활용해서 가뭄과 홍수 등의 기후위기에 대응하겠다고 말하면서 'MB 4대강 망령'을 꺼내들더니, 이제는 14개 댐을 만병통치약처럼 빼어들었다. 15년 전 이명박이 4대강사업을 벌이면서 '더 이상 우리나라에서는 홍수와 가뭄이 없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던 게 떠오르는 장면이다.


금강을 지킨 100일의 힘 … 우리는 강합니다
 
a  100일 투쟁문화제가 지난 6일 저녁, 100여명의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100일 투쟁문화제가 지난 6일 저녁, 100여명의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대전충남녹색연합

 
"우리는 강합니다!"

지난 6일 밤, 보철거시민행동이 천막농성장 100일을 맞아 연 투쟁문화제에서 세종시민 추연이씨가 외친 말이다. 사실, 우리는 100일 동안 매일매일 이겼다. 당초 5월 1일부터 세종보를 재가동하겠다고 밝힌 환경부의 계획을 100일 동안 무산시켰기 때문이다. 추씨의 마지막 구호에 참석자들은 박수 갈채를 보냈다. 100여 명의 대전, 세종지역 시민들이 참석한 이날 문화제는 100일간의 투쟁을 함께 기억하고 그간의 고생을 위로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공공운수노조 아산시립합창단지회와 대전의 싱어송라이터 유진솔 가수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도요필름>이 제작한 100일 투쟁의 기록 영상이 한두리대교 교각 기둥에 비춰졌다. 이어 300여 장의 사진, 그동안 농성장을 찾은 수천명의 얼굴이 '흘러라 강물아' 노래를 배경으로 비춰졌다. 교각 기둥 위로 금강물 흐르듯이 흘러갔다.
 
a  100일 영상을 보고 있는 시민들

100일 영상을 보고 있는 시민들 ⓒ 대전충남녹색연합

 
천막농성을 하면서 인연을 맺은 추연이, 우인정, 강형석, 박근태 등 네 명의 세종시민들은 힘찬 발언으로 농성 100일을 축하해 주었다.

우리가 100일 동안 금강을 지킨 가장 큰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이날 문화제는 이에 대한 대답이었다. 바로 연대의 힘이었다. 전국의 활동가뿐만 아니다 대전과 세종의 시민들이 우리들의 부족한 부분을 기꺼이 채워줬다. 힘들 때는 서로를 북돋아줬고, 기쁠 때는 함께 웃었다. 그리고 우리는 언제나 변함없이 자기 자리를 지켜준 물떼새와 할미새, 수달과 고라니 등 강의 생명들과 연대했다. 살아있는 금강이 끝내 우리를 여기 있게 해주었다.
 
a  지난 5월, 한두리대교에서 찍은 천막농성장의 모습

지난 5월, 한두리대교에서 찍은 천막농성장의 모습 ⓒ 강원중

 
"굽이 굽이 굽이 굽이 흘러야 강이 되지~"

오랜만에 천막농성장 주제가인 '강물아 흘러라'가 나귀도훈 목소리로 울려퍼졌다. 투쟁 문화제의 밤이 깊었고 행사는 마쳤지만, 모두들 떠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서로에게 할 말이 많다는 뜻이다. 농성장을 지킨 이들도 그랬지만, 함께 한 이들에게도 쉽지 않은 투쟁이었다. 그래서인지 이날 이 노래가사가 더 절절하게 다가왔다.

내일의 해가 뜨면 다시 하루가 시작된다. 101일이다. 우리가 어디까지 걸어가야 할 지 알 수는 없지만 다시 또 한 걸음을 내디뎌본다. 금강에서 100일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우리는 매일매일 어떻게 승리하고 있는지를 기록하고 있다. 기억하기 위해서이다. 이는 살아있는 금강의 역사이고, 그 곁을 지킨 이들의 기록이다.

다음날 아침이 되니 익숙한 얼굴이 활짝 웃으며 커피와 물을 사들고 내려온다. 문득, 저 둔치의 가파른 흙길을 오르고 내린 발자국은 얼마나 될까하는 생각을 하며 미소를 지어본다. 그리고 반가운 얼굴에 한마디 건넨다.

"어서오세요, 세종보 재가동 중단과 물정책 정상화를 요구하는 천막농성장입니다."


#금강 #세종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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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운동가, 글쓰는 사람. 남편 포함 아들 셋 키우느라 목소리가 매우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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