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 주렁주렁 달린 열매들
이혁진
모과나무는 3층 크기로 다 커서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있다. 땅에는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떨어진 푸른 열매들이 여러 개 보였다. 능소화 꽃도 몇 잎이 바람에 구르고 있었다.
과거 동네 곳곳에 민관이 앞다퉈 나무를 심었는데, 이 곳은 모과나무와 능소화의 '콜라보'랄까. 울창하기도 해 아마 여기처럼 아름다운 나무는 유일할 것 같다.
근처 동네에 살면서 올해 초 이곳을 발견하고는, 오갈 때마다 닭과 공작이 잘 있는지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멀리 지나다가가, 이들이 잘 있는지 궁금해 일부러 이곳을 거쳐가기도 한다.
다른 동물을 생각하고 돌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 심성마저 착해지는 느낌이다. 여기 사는 주민들은 이 명물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이리저리 구경하는 나를 보고는 미소를 건넸다.
동물원 덕인지 주변 건물과 도로, 골목이 유난히 깨끗해 보였다. 실제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거나 투기하는 곳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를 보니 '깨진 유리창 이론' 이 떠오르기도 한다. 깨진 유리창 이론은 한 건물의 유리창이 깨져 방치되면, 추가적인 파괴 행위를 유발하고 궁극에는 더 큰 무질서와 혼란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 좋은 사례가 아니겠는가.
물론 이전에도, 쓰레기투기 공간에 화분을 갖다 놓거나 화단을 조성해 투기를 막는 여러 시도가 있었던 걸로 안다. 그러나 소용이 없다. 오히려 화분 속이 담배꽁초와 쓰레기로 쌓여만 갔다. 묘안이 필요했다.
동물을 데려다 놓는 것도 그 묘안 중 하나 아닐까. 쓰레기 몰래 버리던 공간이 이렇게 동물 사는 환경으로 변모해 주민들의 사랑을 받다니, 기발한 아이디어가 아닐 수 없다. 이 시설을 만들고 관리하는 사람이 누군지 그에게 표창이라도 주고 싶다. 깨끗한 환경이 사회적 무질서를 예방할 수 있음을 직접 이렇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이 조류 동물원을 만든 사람은 누굴까. 아마도 이 건물의 설비업자(동물원 옆에 바로 붙어있는 곳이다)이 아닐까 추측이 되는데, 찾아갔을 때 한 번도 만나지는 못했다. 언젠가 만나게 되면 격려와 응원을 해줄 참이다.
나는 이 동물원을 보기 전까지는 우리 동네 쓰레기문제는 도저히 해결될 기미가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젠 희망을 보았다. 비단 동물원은 아니라 해도, 소규모 식물원이나 화단 등, 자투리 땅을 친환경적으로 조성해보면 어떨까. 앞의 좋은 사례처럼, 이를 계기로 주민들의 의식 또한 점차 개선될 것으로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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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몰래 버리던 공간, 주인의 묘안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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