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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서점 "한강 책 찾는 손님에게 '기다려달라' 말만"

도서 유통의 투명성으로 건강한 독서문화 확립해야

등록 2024.10.24 13:38수정 2024.10.24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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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식을 접한 건, '뉴스'가 아닌 '페이스북 타임라인'이었다. 페친(페이스북 친구) 중에는 동네서점(독립서점)과 중소 출판사 관계자도 연결돼 있어 평소 이들의 코멘트를 보며, 책 한 권이 주는 소중함과 깨달음, 동네서점과 중소출판사의 생존은 지역 주민과 책을 이어주는 징검다리 역할은 물론 다양한 문화공간으로서 소통의 장을 마련해주기 때문이다. 이번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소식은, 그동안 메말라가던 출판 시장에 단비와 같은 소식이었기에 대형‧중소형 서점은 물론 출판사까지도 모처럼 기지개를 켤 좋은 기회였다.

교보문고가 내건 한강 작가 책 판매 관련 안내문 지역 서점과 상생을 위해 이달 31일까지 한시적으로 도서 판매를 중단한다고 적혀 있다.
교보문고가 내건 한강 작가 책 판매 관련 안내문지역 서점과 상생을 위해 이달 31일까지 한시적으로 도서 판매를 중단한다고 적혀 있다.교보문고, 페이스북 갈무리

지역 동네 서점, 대형 서점, 가릴 것 없이 녹록지 않았던 현실

시간을 잠시 돌려보자. 2021년 9월 5일, 25년 역사를 뒤로한 채 서울시 은평구의 불광문고가 폐업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 역시도 폐업 이전부터 조금씩, 들려오던 터였다. 그러다 결국 '폐업을 결정했다'는 소식을 서점 관계자가 SNS로 먼저 전했다.

마지막 날 손님이 몰렸다. 은평구청 홈페이지에는 이와 관련한 청원까지 올라왔을 정도로 지역 주민의 아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정순구 역사비평사 대표는 이에 대해 "출판사와 출판문화산업 진흥 정책의 무관심 속에 고독사했다"고 자신의 SNS에 남겼다. 그러자 최낙범 불광문고 대표는 "무리하게 운영하기보다 거래처 대금과 직원들 퇴직금을 정산하고 존엄사를 택한 것"이라고 담담히 얘기했다.

최근에는 대전의 대표적 향토서점이었던 계룡문고도 폐업했다. 이 서점 역시 지역 문화공간으로서 폐업 직전까지도 29년 동안 북콘서트, 학생 견학 프로그램 등 각종 문화 행사를 개최했던 터였다. 오랫동안 지역문화를 뒷받침하던 동네서점 한 곳이 사라진다는 건, 단순히 서점 한 곳이 없어진다는 게 아닌 그에 기반한 지역 네트워크와 작가의 연결고리가 끊긴다는 데 문제가 있다.

대형 서점도 상황이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반디앤루니스는 부도로 폐점됐지만 지난 해 말부터 온라인 서점으로 간신히 부활했다. 국내 최대 오프라인 서점 매장을 보유한 교보문고도 매년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교보문고는 지역 동네 서점에 책을 공급하는 업체이기도 하다. 이익률이 3%도 채 되지 않는 도매 영업까지 뛰어 든 상황에서 매출 1억도 되지 않는 동네서점까지도 책을 유통해야 할 만큼 다급했던 것이다.


특히, 적자 상황을 조금이라도 모면하기 위해 교보문고 매장 내에는 여러 커피 브랜드와 잡화, 문구점이 입점해야 할 정도로 매장 유지를 위해 애쓰는 모습이 이어지고 있다. 책이 팔리지 않으니 출판사가 함께 어려워지는 것도 당연한 순리였다. 교보문고는 지난해 감원까지 했다. 2023년 국내 71개 출판사 모두 합산해 총 영업이익이 42%나 감소했고, 올해는 그 폭이 더 컸으니 그 어려움은 출판계 모두 겪고 있던 터였다.

입고된 한강 작가의 책. 동네서점을 운영하는 한 페이스북 이용자가 "책이 너무 안 들어와서 못 참고 매일 주문했더니 한 번에 입고됐다"면서 23일 올린 사진.
입고된 한강 작가의 책.동네서점을 운영하는 한 페이스북 이용자가 "책이 너무 안 들어와서 못 참고 매일 주문했더니 한 번에 입고됐다"면서 23일 올린 사진.페이스북 갈무리

한강 작가 노벨상 수상 직후 동네서점 상황


그런 상황에서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발표가 났다. 어느 순간부터 지역 곳곳에서 잡음이 들렸다. 교보문고는 그의 책 출고를 2주 동안 정지하고 도매부에 있던 한강 작가의 책 모두 자사에 출고, 역대 매출을 올렸다는 것. 그러는 동안 동네서점에는 한강 작가의 책이 단 한 권도 공급되지 않는 사례가 속출했다. 불만이 이어졌다.

교보문고 내에는 지역서점과의 상생을 위해 한시적으로 판매를 제한한다(2024년 10월 22~31일까지)는 안내문이 붙였다.

한 기사에 따르면 교보문고는 이에 대해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직후 주문량이 한 번에 몰려 해당 도서의 수급이 제때 이뤄지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추후 물량을 추가로 조정해 (동네 서점에) 공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말 대로라면, 자사 판매를 일시적으로 제한하고 대신 지역의 동네서점에 책을 공급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다면 직전까지 과연 얼마나 판매됐을까.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직후, 일주일 간(16일 기준) 교보문고, 알라딘, 예스24에 따르면 한강의 책은 종이책만 103만 2000부 판매됐다. 온라인 기준으로 이 3사의 시장 점유율은 90% 가까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자책 역시 7만 부가 팔렸으니 이 모두를 합치면 무려 110만 부 가까이 독자가 구매한 것이다.

일부에서는 "책 구매가 가장 활발한 50‧60은 이미 다 구매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살 사람은 대부분 산 마당에 많이 아쉬울 따름"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서점인협의회는 23일 호소문을 내고, 책의 흐름이 원활해야 한다며 독과점이 있었다면 재발을 방지할 필요가 있고, 관계자 모두의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서점인협의회는 23일 호소문을 내고, 책의 흐름이 원활해야 한다며 독과점이 있었다면 재발을 방지할 필요가 있고, 관계자 모두의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한국서점인협의회

동네서점이 원하는 것은 바로 '이것'

앞서 이를 감지한 한국서점조합연합회는 17일, "교보문고가 자사의 이익을 위해 한강의 책을 동네서점에 공급하지 않았다"고 성명을 내고 비판했다. 또 한국서점인협의회도 23일 "지난 10일 이후 동네서점엔 이러한(책 공급) 흐름이 멈췄다"며 "1백만 부가 넘게 팔려나가는 상황에서 한강 작가의 책을 단 한 권도 공급받지 못한 동네서점이 속출했다. 심지어 교보문고의 도매 주문 창도 막혀 있었다"고 토로했다.

소규모 서점연대인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도 "평소 자신이 자주 찾던 동네 서점에 책을 주문한 독자도 많았다. 그러나 동네서점은 이분들께 '기다려 달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면서 "소매와 도매를 함께 하는 교보의 경우 도매를 중지하고 소매로 자사에서만 판매를 독점했다"고 지적했다.

그들이 정부에 요구하는 것은 출판사와 교보문고는 도매업체를 통해 유통된 책의 흐름을 파악하고, 건강한 책의 흐름을 위해 출판과 유통, 서점이 함께 앞으로의 대책을 논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달라는 점이다.

교보문고와 지역 동네서점의 처지가 다르지만 건강한 독서문화 확립을 위해 이번 기회에 도서유통 구조를 점검해 볼 필요는 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통계를 보면, 교보문고와 거래하는 지역 동네서점은 2020년 716개에서 2022년 5월 기준 1100개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출판유통을 전담하는 도매상이 부도나면서 교보문고가 도매업을 겸하게 됐다. 지금 메스를 들이대지 않으면, 앞으로 이러한 문제가 또 제기될 것이 뻔하고, 이는 건강한 도서문화에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는 기본적인 책의 유통과 관련한 개선이 필요하다며 호소문을 냈다.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는 기본적인 책의 유통과 관련한 개선이 필요하다며 호소문을 냈다.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는 23일 "동네서점에도 평등하고 신속한 도서공급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고, 도서유통 투명성을 확보해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련 법 제정이 필요하다"면서 "모두 (진정으로) 상생할 수 있는 출판문화를 위해 기형적인 유통구조를 바로 잡도록 정부가 나서 개선하고 올바른 유통 체제를 확립해 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어려운 출판상황이 맞물리면서 기형적 유통구조를 초래할 위험성이 우려된다. 이에 대한 대안을 찾지 못한 동네서점이 교보문고와 공급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공급가 등 여러 문제가 수면 위로 언제든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길이 아름답게 이름이 남을 정도로 축하받아 마땅한 업적이다. 문제는 건강한 도서 유통 확립과 혁신, 재발생 방지다. 오히려 기존대로 동네서점에 책을 공급하고 평소처럼 유통했다면 이런 일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언제 어디서든 누구나 자신이 사랑하는 작가를 원하는 서점에서 접할 수 있도록 함께 논의하고 이뤄나가야 할 시점이다. 어떻게 보면 지금이 바로 그 '기회'일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글쓴이의 네이버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독립서점 #동네서점 #한강소설가 #노벨문학상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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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잡지교육원 전임교수. 사회에 필요한 사소한 이야기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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