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에서 뛰노는 16살 노령견 바둑이(중간 갈색 강아지).눈이 불편하지만, 늘 멀리 가지 않고 잔디에서 뛰놀며 자율배식(?)을 만끽하던 시간.
김관식
처가에는 16살된 노령견 한 마리가 있습니다. 갈색의 긴 털과 윤기가 제법 오묘한 조화를 이뤄, 가끔씩 저를 빤히 쳐다볼 때면 귀여워서 눈이 부실 정도입니다. 제 아내와 저는, 이 강아지를 '바둑이'라 부릅니다. 너무 교과서적이죠.
반면, 장모님은 "방실아~ 이거 먹어봐라" 하시고, 큰처형은 "복실이, 잘 지냈니?" 하고 부르죠. 이름은 모두 달리 불러도 대화는 이어지니 이름값이 살아가는 데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베트남에서 처남이 귀국했습니다. 정기적인 건강검진을 받기 위함인데요, 처남이 마침 장모님 댁에 들렀습니다. 아내는 얼마 전부터 기침에 몸이 좋지 않았고, 이럴 때는 저는 '흑백요리사'가 되어 느즈막히 아이 밥을 챙기니 오후가 훨씬 지나 있었습니다.
잠시 밖에 볼일을 보고 온 아내가 "엄마와 동생 보러 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도 "같이 가자"며 차를 몰고 오후 늦게 처가로 달렸습니다. 저는 장모님께 가기 전에 습관적으로 챙기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강아지 간식이죠. '작은 100g짜리 닭고기 캔'을 하나 가져갑니다.
이거 하나 가져가면 마음이 그리 편할 수 없어요. 언제부턴가 늘 올 때마다 반기는 바둑이를 주려고 사가지고 갔던 게 십수년이 됐습니다. 계산해보니 벌써 바둑이는 16살이 됐습니다. 중학교 2학년인 제 아이보다 1살 더 많습니다.
그리고 이 녀석 청력도좋고, 똑똑해서, 자동차 엔진 소리만 멀리서 들어도 "컹컹" 하고 짖는 게 아니라 "낑~낑"대며 두 발로 섭니다. 한 번은 제가 차 안에서 얼굴을 가리고 다가갔는데도, 용케 알아보더라고요. 한번은 처제가 이런 얘기도 했습니다.
"형부가 오면 바둑이 짖는 게 달라요. 낑낑대면 '아, 형부나 언니가 왔구나' 하고 알 수 있어요."
어느 새 16살이 된 바둑이, 그리 시간 지났는지도 몰랐다
이렇게 반겨주니 어찌 제가 빈손으로 갈 수가 있겠습니까. 언젠가는 추운 겨울에 곰탕을 사가서 전자레인지에 데워 준 적도 있습니다. 강아지가 말을 못 해서 그렇지 누가 자기 예뻐하는지, 누가 수상한지 단박에 알아본다는 말, 이제는 믿습니다. 이제는 저를 기다리기보다 간식을 기다리는 것 같지만, 아무렴 어떻습니까. 강아지도 기다림이 있고, 즐거움을 느낄 수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족한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