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개발연구원 보고서 표지한국개발연구원은 2006년, 수협의 현대화 사업에 혈세가 투입되는 것을 우려한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한국개발연구원
"노량진 수산시장은 중앙도매시장으로서 재정지원이 가능하나 민간기관인 수협이 시장의 소유주이기 때문에 재정지원이 제한될 수 있다. 정부가 특정민간단체의 사업 확장을 재정을 투입해 무상으로 지원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어서 국고를 무상으로 지원하는 방식은 대단히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
쉽게 해석하면, 노량진수산시장은 나라가 관리하라고 법으로 지정한 '중앙도매시장'이라 국가의 재정 지원이 가능한데, 수협이 사기업이라서 한 기업에만 특혜를 줄 수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수협은 국고 1500억 원을 지원받아 구 시장 터에 부동산 개발을 앞두고 있다. 어떻게 된 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서울시의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아래 농안법) 위반과 직무 유기 때문이다. 2001년, 수협은 노량진수신시장의 땅과 건물을 샀다. 그리고 2002년, 서울시는 수협과 의문의 계약서를 하나 쓴다. 서울시는 수협 소유의 노량진수산시장의 건물과 땅을 공짜로 사용하고 수협이 노량진수산시장을 관리하고 운영하라는 계약서다.
농안법에 따르면 서울시는 노량진수산시장의 개설자이자 관리자다. 운영은 외부 도매시장법인이나 시장도매인에게 맡겨야 한다. 수협 같은 기업이 시장을 운영할 수 있다는 의미다.
관리 주체와 운영 주체가 나뉘어 있지만 시장을 책임져야 하는 건 관할 지자체인 서울시다. 하지만 서울시는 농안법을 위반한 채 수협과 이유를 알 수 없는 계약서를 쓰고 모든 관리 권한을 수협에게 넘겨줬다.
이때부터 노량진수산시장에서 나오는 모든 수익과 상인들이 내는 월세가 사기업인 수협 손으로 들어간다. 이후 이명박 전 대통령, 박원순 전 서울시장 시절이었던 2012년, 수협은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 사업에 착공했다.
노량진수산시장은 나라가 지정한 중앙도매시장이고 서울시가 미래 유산으로 선정한 곳이다. 시장 자체에 공공성이 있다는 뜻이다. 공공성이 있다는 건 곧 시민의 공간이란 걸 의미한다. 시민의 공간을 수협이 샀고, 거기서 영리적 사업을 펼치는 데 국고가 지원된 이유는 농안법 때문이다. 서울시는 관리 권한을 수협에 다 줘버렸지만 법에는 노량진수산시장이 나라가 정한 중앙도매시장으로 돼 있어서 수협은 국고를 끌어올 수 있었다.
정리하면 이렇다. 공적 공간을 사기업이 샀고 그 공간을 개발해 사업을 펼치는데, 혈세 1500억 원을 끌어다 썼다. 서울시는 시장 개설자이자 관리자이지만 아무 것도 안 하고 수협은 옛 시장 땅을 개발해 돈 벌 궁리를 하고 있다. 그러니까, 당신도 모르는 사이 당신이 낸 세금이 당신과 크게 상관 없는 기업의 배를 불리기 위해 동원됐다는 것이다.
상인들이 물대포를 맞아가며 농성장을 지킨 근본적 이유는 이것이다. 사기업의 횡포, 지자체의 직무 유기로 인해 평생을 바쳐가며 일군 시민의 공간이자 일터가 파괴된 것에 저항하는 것이다.
그대들의 일부인 상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