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킹된 자료에 따르면 캡콤은 성별에 따른 편차가 있어서는 안 되며 반드시 이야기의 흐름상 필요한 경우에만 등장시켜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그러자 남초 현상이 강한 한 게임 커뮤니티에 '캡콤마저 PC를 추구하냐'는 식의 부정적인 반응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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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이 가능한 일이었다. '정치적 올바름'을 뜻하는 'PC(Political Correctness)'는 게임을 비롯한 다양한 문화 분야에서 요근래 아주 뜨거운 개념이었다. 누군가는 게임 회사들이 시대의 흐름에 발을 맞춘다고 환영했지만, 한편에서 어떤 사람들은 '과도한 정치적 올바름의 추구'가 게임의 재미를 망친다고 반발했다.
이런 식의 반발은 여성 캐릭터들이 노출이 전무한 의상을 입고 게임에 등장하거나 혹은 인기 슈팅 게임의 군인 캐릭터가 동성애자라는 설정이 공개되었을 때 나타났는데, 사실 수긍하기가 어렵다. 오히려 오지를 뛰고 구르는 게임의 주인공이 노출이 많은 옷을 입고 있었다면 오히려 더 집중하기가 어렵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야기의 흐름을 헤치지 않는 이상 주인공의 성적지향이 어떻든 게임의 재미에 무슨 영향을 미친다는 걸까.
'과도한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말이 이상한 이유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 나는 사람들이 저런 식의 발언을 너무도 쉽게 한다는 것에 놀랐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과도한 정치적 올바름의 추구로 재미가 사라졌다'는 말은 너무도 위험한 말이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올바르다 평가 받는 가치는 아무리 철저하게 추구되어도 '과도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예를들어 한국 사회는 수차례 집회를 통해 권력자를 끌어내린 경험이 있지만, 이를 두고 '과도한 민주주의 추구'라고 말한 이가 있는가. 하지만 유독 성평등·인종차별 반대와 같은 가치에만 '적정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면, 이는 '소수자에 대한 어느정도의 차별과 혐오는 필요하다'는 말이나 다름 없게 된다.
'재미가 사라졌다' 또한 마찬가지다. '정치적 올바름'이 누군가의 '재미'를 앗아갔다는 말은 그 사람이 지금껏 소수자에게 유해한 요소들에서 재미를 느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마치 약자를 괴롭히는 행위에서 재미를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현상의 원인이 무지와 게으름이라고도 한다. 점차 가시화 되는 소수자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와 새롭게 부상하는 정치적 올바름의 내용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그럴 의지도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정치적 올바름'의 대척점에 서있는 사람들은 내 기준에서 지나치게 열심히 사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들은 편향되거나 부정확한 정보를 습득하는데 아주 성실하며, 자신의 입장을 설득시킬 근거가 없다면 새롭게 가공하는 데에도 열심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들이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일이 결국 무엇일까 늘 고민했다. 조심스럽게 답을 내려보자면 그건 '현실부정'이 아닐까 싶다.
현실에 발맞추어 움직이는 게임 업계
물론 우리가 사는 세계에는 차별과 배제가 만연하지만 그런 것들이 다양한 삶의 형태와 소수자의 존재를 깔끔하게 지울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최초의 여성', '최초의 비백인'이 존재했지만 이제는 성별이나 인종이라는 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분야가 많아졌고, 그런 영역은 점차 넓어지고 있다.
다른 국가로 시선을 돌린다면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드러내고 정치나 행정을 비롯해 여러 분야에서 힘이 있는 자리에 오른 사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이 그저 조용히 존재하기만 했냐고 하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 현대사의 중요한 순간에 사건의 중심에 섰던 소수자들의 존재는 찾기가 그리 힘들지도 않다. 가령 2007년 미군이 바그다드에서 민간인을 학살했던 사실을 폭로해 이라크전을 둘러싼 여론을 뒤흔들었던 첼시 매닝은 트랜스젠더 여성 군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