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사유리씨가 11월 17일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 비혼자인 그는 일본에서 정자 기증을 받아 11월 4일 아기를 출산했다.
사유리 인스타그램 갈무리
지난달 한국에서 활동 중인 일본 출신 방송인 사유리씨가 '비혼 출산'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단순히 혼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출산을 한 데 그친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홀로 아이를 낳고 싶은 마음에 정자를 기증 받아 출산을 했다고 한다. 출산은 산모와 아이에 대한 돌봄을 고려하여 부모님이 계신 일본에서 하게 되었다고.
임신 사실조차 알지 못했던 사람의 출산 소식에 처음에는 다소 놀랐으나 곧이어 다양한 가족의 양태가 생긴 것이 기뻤고, 축하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세간의 반응은 나의 생각과는 꽤 달랐다. 평소 다른 유명인의 출산소식과 마찬가지로 곧 잠잠해지리라 여겼던 뉴스는 이후 폭발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축하하는 이들도 많았던 반면 사유리씨의 선택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상당했다.
이들은 비혼 출산은 아이의 인생은 생각하지 않고 여성 본인의 의지만 앞세운 '이기적인 결정'임을 비판의 근거로 내세웠다. 태어난 아이가 장차 아버지의 부재를 느끼고 혼란스러워 할 수도, 평생 지워지지 않을 마음의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더불어 사유리씨처럼 정자를 기증받아 '마음대로' 출산을 하는 것이 허용될 경우, 장차 생명이 경시되고 아이들이 존중받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며 우려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평소 출산율이 세계 최저라며 그 이상 큰일이 없을 정도로 호들갑을 떠는 국가에서 나오기에는 참으로 의아한 반응이었다. 제발 좀 아이를 낳아달라고 종용하던 상황에서 여성이 적극적인 의지를 가지고 아이를 낳았다면 오히려 잘 된 일 아닌가? 태어날 아이의 의사를 고려하지 않은 이기적인 결정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세상의 모든 아이가 마찬가지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사람은 없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의지가 개입되지 않은 상황에서 오로지 부모의 선택에 의해 태어난다. 그렇게 태어난 뒤 온갖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고통을 느끼며 하루 하루를 보내게 된다. 만약 아이가 받을 상처를 감안하지 않고 낳은 것이 이기적이며 지양해야 할 행위라면, 세상의 그 누구도 아이를 낳아서는 안 되는 셈이다.
또한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기에 섣부르게 장담할 수는 없으나 사유리씨의 아이가 그들의 우려처럼 힘든 생을 보낼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한부모 가정 아이들이 마음의 상처를 입고 고통을 겪는 까닭은 아버지나 어머니의 부재 그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보호자 한 명이 생계와 육아를 병행하기 어려워서 생겨나는 돌봄 공백이나 빈곤이 더 직접적인 원인인 경우가 많다. 그러니 사유리씨처럼 부모의 적극적인 지지가 뒷받침되고, 본인이 탄탄한 경제력을 갖추고 있는 상황이라면 그러한 염려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아이 낳은 게 이기적인 선택?
그럼에도 비난하는 이들은 주장을 쉬이 굽히지 않았다. 여전히 사유리씨의 선택은 이기적이라며 여성 혼자서 '마음대로' 아이를 낳아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모두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이야기였다는 점이다. 가만히 살펴보니 이들의 목소리는 기존에 있었던 임신중단에 대한 의견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임신중단을 하는 여성에 대해서도 '태아의 의견을 무시하는 행위', '생명을 경시하는 행위'와 같은 비판의 목소리가 늘 존재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여성의 비혼 출산을 반대하는 것이나, 임신중단하려는 여성에 대한 비난이나, 모두 같은 선상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본질적으로 이들은 여성이 '홀로' 결정하는 것에 반감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생명 존중과 태아의 의사는 애초에 부차적인 문제였다. 이들은 여성이 남성 없이 출산을 진행하는 것도, 중단하는 것도,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임신과 출산과 중단의 과정에서 남성이 배제되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얼마전 논란이 된 국회의원의 발언 또한 이러한 지점을 잘 보여준다. 지난 8일 낙태죄 관련 공청회에서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낙태라고 하는 게 과거 우리 사회가 여성만의 문제로 생각해왔는데 사실 이 문제는 남성이 함께 결정하고, 심각한 책임을 느껴야 할 문제라 생각한다. 남성들의 법안에 대한 의견들 있는지 설명해주면 좋을 것 같다."
"남성까지 처벌하자가 해법은 아닐 거라 보인다. 궁금한 건 법안에 대한 남성들의 인식 그런 게 있을까요? 전반적으로 여성들이 이 법안에 부정적 인식 있다고 진술한다. 2030대 남성들의 평가, 낙태죄 바라보는 시선, 인식 있는지."
물론 김남국 의원은 아마도 '선의'로 이러한 발언을 했을 것이다. 임신에는 남성도 책임이 있으니 임신중단 역시 함께 논의해보면 좋겠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선해하더라도 임신에도, 출산에도, 임신중단에도 남성 역시 권리가 있다는 의중이 읽혀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의 발언에서 40주간 뱃속에 각종 장기의 압박을 견뎌가며 아이를 넣어 기르고, 장차 낳고 길러야 할 여성에 대한 배려는 읽히지 않는다.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삶의 직접적인 변화와 풍파를 맞이할, '낙태죄'로 인하여 신체의 부담과 정신적 충격에 더해 실질적인 형벌까지 짊어져야 할 당사자인 여성에 대한 인식 없이, 어디까지나 남성의 '권리'가 더 우선시 된 발언이다.
그렇다고 김남국 의원 하나만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그는 그저 대한민국의 많은 이들이 가진 생각의 일부를 그대로 보여주었을 따름이다. 실은 대한민국 국가부터가 그러한 관점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는 어떻게든 떨어지는 출산율을 끌어올려 보겠다고 '가임기 지도'까지 만들어 여성을 마치 가축이나 공공재처럼 분류하려는 시도를 했던 반면, 여성의 비혼 출산은 외면하는 상황이다.
사유리씨는 본래 한국에서 출산을 계획했지만 한국에서 비혼 여성은 정자를 기증 받을 수도, 시험관 시술을 받을 수도, 국가로부터 출산 관련 어떠한 지원을 받을 수도 없다는 것을 알고 포기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비혼 출산은 '불법'은 아니지만 사실상 금기시 되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이에 대해 국가는 앞서 적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혼란을 방지하고 생명이 경시되는 풍조를 막기 위해 이런 조치를 취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 본질은 역시나 '무분별한 낙태'를 막고 생명이 경시되는 풍조를 저지해야 한다는 낙태죄에 대한 의견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여성의 몸에 대한 여성 자신의 의지와 결정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출산은 그야말로 여성의 몸에 10개월간 직접적인 변화를 가져다주는 엄청난 경험이다. 임신중단, 즉 낙태 역시 몸에 상당한 부담을 주는 의료적 수술이다. 그런 차원에서 '무분별한 출산'이나 '무분별한 낙태'는 애초에 성립하지 않는 이야기다. 어떤 이들은 출산을 마치 오븐에서 빵 하나를 구워내듯 간단한 것으로, 임신중단을 머리카락 뽑듯 가벼운 처치로 인식하고는 하지만, 임신·출산과 임신중단은 그런 것이 아니다.
여성의 몸을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타자의 시선이 '무분별한 출산'이나 '무분별한 낙태'라는 말을 만들어낸다. 여성의 몸은 국가의 것도, 다른 남성의 것도, 이 사회의 공공재도 아니다. 그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여성 자신의 것이다. 그러므로 임신·출산도 임신중단도 여성 당사자의 의지가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 여기에 다른 이들의 '평가'는 있을 필요도 없으며, 있어서도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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