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일본의 닛케이 225 지수를 보여주는 도쿄의 한 증권사 전광판 앞을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가장 큰 원인은 앞서 언급했던 코로나 시국 당시 실시된 일명 '제로제로 융자' 때문이다. 무이자, 무담보의 '무'를 딴 이 제도 때문에 상환 유예기간이 끝나고 2~3년 후인 지금, 그때 차입한 돈을 갚지 못해 쓰러지는 기업들이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제로제로 융자는 일본 정부가 각 지자체 신용보증협회에 기업 대상 융자 보증 심사를 대폭 완화시켜 중소·영세기업이 코로나 시국을 헤쳐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한 정책이다. 이 정책으로 인해 많은 기업이 도움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절차도 간단했다. 기업들은 주거래은행에 대출 신청을 했고, 금융기관은 최저 500만 엔(4333만 원)에서 1억 엔(8억 6658만 원)까지 거의 아무런 조건 없이 대출을 승인했다. 금융기관 입장에선 대출금이 상환되지 않더라도 신용보증협회로부터 받으면 되니 별다른 심사 없이 빌려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기업에 대출된 융자액은 54조 엔(467조 9532억 원)에 달한다. 그리고 3년 후 본격적인 변제가 시작되면서 대출상환능력 없는 기업들이 도산 쓰나미에 빠질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측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제국데이터뱅크에 따르면 오사카 지역에서만 대출금 변제에 불안을 느낀다고 답한 이들이 8만 기업 중 9.9% 즉 8000여 곳에 이른다. 이 중 7월 현재 변제를 못 해 도산할 것 같다고 말한 기업은 800여 개에 달하며, 실제로 오사카 지역에서만 하반기 도산 예측 기업이 500여 곳을 넘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도쿄를 비롯한 관동지역은 더더욱 암울하다. 도쿄도는 중앙 정부 지원과 별도로 기업 파산을 막기 위해 기업 대상으로 고용안정 지원금을 내놓고 있다. 일례로 증가 일로에 있는 외국인 방일 관광객의 숙박업소를 운영하는 기업의 경우 자잘한 조건이 붙기는 하지만 종업원 1명당 연간 280만 엔(2427만 원)을 1년 동안 5명까지 무상으로 지원하며, 숙박 인테리어 공사비용도 최대 1000만 엔(8667만 원)까지 무상 지원한다.
그 외 업종에도 각종 지원금 혜택을 주고 있다. 하지만 제국데이터뱅크는 "하반기 도쿄도내 도산기업은 1000여 개를 넘을 것으로 보며, 전국적으로 연간 9000여 개 기업에 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들의 예상대로라면 일본은 2014년 이후 9년 만에 다시 도산기업수가 9000대로 올라선다.
물가인상률 따라잡지 못하는 실질임금인상률
유례없는 지원책을 폈고 지금도 각종 혜택을 주면서 기업을 도산시키지 않으려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고용' 때문이다. 회사가 파산하면 종업원들은 실직하며, 그에 따른 사회보장예산이 큰 폭으로 늘어난다.
또한 기업의 도산은 파급효과를 일으킨다. 중견기업의 경우 그와 거래하던 다른 영세기업과 중소기업도 위험해진다.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정부 예산이 더 들어갈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에 이러한 시책을 폈던 것이었다.
하지만 지난 2년,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역대급 물가 상승과 기록적인 엔저 현상이 찾아왔다. 실제로 사이타마 지역에서 금형 공장을 20년째 운영하는 사이토 히로시 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대로 가다간 올해를 못 넘길지도 모르겠다"라며 이렇게 덧붙였다.
"우린 공장이니까 전기를 많이 쓰는데 (전기요금이) 한 15%는 올랐고, 수입하는 원자재 값이 30% 정도 올랐나? 그렇다고 엔이 올라갈 기미는 없고… 결국 다른 분야로 눈을 돌려야 하는데, 그럴 돈도 힘도 없고 은행도 더 이상 대출 힘들다 하니까 결국 사업 접으란 소리지."
수출 대기업은 엔저 현상으로 인해 연일 최고 실적을 기록하고 있지만, 일본에서 수출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30%에 불과하다. 즉 대다수의 기업과 중산층 이하 서민들은 물가 상승으로 인해 타격을 받고 있다. 하지만 실질임금인상률은 물가인상률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22년 4월 1일부터 '임금인상 촉진세'라는 제도를 도입해 정부 차원에서 임금 인상을 독려했다. 종업원 급여를 3% 이상 올릴 경우 증가액의 15%를 법인세에서 공제해 준다(4% 인상은 25% 공제).
하지만 이 제도는 대기업에 한정되었다. 또한 설령 이렇게 임금을 올렸다 하더라도 물가인상률에 비한다면 턱없이 부족하다. 총무성 통계국이 발표한 지난 9월의 물가인상률 통계를 보면 식료는 전년도 대비 8.8%p 상승했고, 가솔린 8.7%p, 면류 10%p, 과자류 11.6%p, 전기 24.6%p, 가스 12.5%p 등 실생활 관련 물가상승률은 실질임금인상률보다 두 배 이상 높다.
악순환 끊을 고리는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