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1.25 07:20최종 업데이트 24.01.25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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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채널 삼프로TV에서 CFE에 대해 이야기 하는 모습. 산업부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 삼프로TV


지난 20일, 유튜브 채널 '삼프로TV'에서 "기후변화를 위해 움직이고 있는 전 세계. '이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올렸습니다. 해당 동영상은 "산업통상자원부"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다고 했습니다. 산업부가 유명 유튜브 채널을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뭔지 궁금해서 끝까지 봤습니다.

다 보고 나서 맥이 탁 풀렸습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필수"적인 일이 RE100(재생에너지 100%)가 아니라 CFE(무탄소에너지)라는 내용이더라구요. 아무리 산업부의 지원을 받았다고 해도 너무 노골적으로 산업부의 일방적인 주장만 이야기해서 실망이 컸습니다. 대통령님이 행여 이런 류의 방송만 보고 기후 변화와 탄소 중립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할까 봐 오늘은 CFE에 대해 과외수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같으면서도 다른 'RE100'과 '24/7 CFE 협약'

지난 대선 토론회 당시 망신을 당하기도 했고, 이 연재를 통해 수도 없이 이야기를 했으니 이제 RE100이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을 모두 재생에너지로 대체하자는 자발적인 글로벌 캠페인이라는 건 안다고 믿겠습니다.

그럼 CF100(Carbon Free 100)은 뭘까요? 재생에너지 대신 무탄소에너지로 100% 대체하자는 또 다른 캠페인의 하나일까요? 아닙니다. CF100이라는 건 애초에 없는 겁니다. 그런 조직이나 그런 캠페인은 없습니다. 단지 한국에서만 RE100의 대체제로서 원전을 억지로 끼워 넣기 위해 만든 조어일 뿐입니다. 한국 포털 사이트 말고 구글에서 영어로 해외 사이트를 찾아보면 그런 게 없다는 걸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구글은 RE100 달성 이후 2018년부터 상시 무탄소에너지를 사용하겠다는 새로운 목표를 세웠습니다. 이 목표가 이후 24/7 CFE 협약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 구글

 
CF100이 없는 거라면, 유엔 주도로 구글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무탄소에너지 켐페인은 뭐냐고 묻고 싶을테지요. 그건 2021년에 출범한 '24/7 CFE 협약(The 24/7 Carbon-Free Energy Compact)'입니다. '상시 무탄소에너지 사용 협약' 정도로 번역이 가능하겠네요. 구체적인 내용은 뒤에서 다시 설명하기로 하고, 우리나라 언론들이 이걸 두고 CF100이라 부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만 먼저 기억하기 바랍니다.

대통령님이 국제연합(UN) 총회 기조연설에서 제안한 'CF연합(Carbon Free Alliance)'은 '24/7 CFE 협약'과는 또 다른 내용의 무탄소에너지 국제 플랫폼이고, 그걸 우리 정부가 국제적 운동으로 포장한 것이 "CFE 이니셔티브"입니다. 다 다른 겁니다.


삼프로TV 방송에 나온 유승훈 교수는 내용이 많이 다른 24/7 CFE 협약과 CFE이니셔티브를 뒤섞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많은 분들은 또 그렇게 문제 제기를 하세요. 야, 우리가 뭐 해서 되겠어? 우리 혼자 떠드는 거 아니야?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사실 CFE는 유엔과 구글이 먼저 시작을 했고, 우리가 뒤를 이어 들어가서 이니셔티브까지 만들어서 같이 협력해서 하자는 겁니다. 그리고 여기에 공감해 주는 나라들도 하나둘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막 국제사회의 전혀 호응 없이 혼자 떠드는 건 아닙니다."

많은 분들이 그렇게 문제 제기하는 건 다 이유가 있어서입니다. 구글이 먼저 시작한 CFE가 국제사회의 관심을 일부 받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대통령님이 제안한 'CF연합'이나 'CFE이니셔티브'같은 경우는 "국제사회의 호응 없이 혼자 떠드는" 게 맞습니다.

우선, 우리 정부는 두바이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 'CFE 이니셔티브' 추진을 홍보했지만, 그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외신 보도는 <워싱턴포스트>가 '한국이 무탄소 계획을 추진하지만,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둔화하고 있다'고 비판적으로 보도했을 뿐입니다.
 

우리 정부가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 ‘CFE 이니셔티브’ 추진을 홍보하자 워싱턴포스트는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우려하는 비판 기사를 내놓았습니다. ⓒ 워싱턴포스트


국내적으로도 작년 6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국내 매출 상위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82.4%가 CF100(이 이름으로 질문을 했습니다)에 참여할 의향이 없다고 답을 했습니다. 안팎으로 무탄소에너지 정책은 누구의 호응도 못 얻고 있는 겁니다.

RE100은 일정 수준 이상의 전력을 사용하는 주요 다국적 기업으로 가입 조건이 정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460개의 회원사가 참여했으며 한국에서도 36개의 기업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24/7 CFE 협약은 특별한 가입조건이 없음에도 전 세계 회원 수가 145개뿐이며, 한국에서는 단 3개만 참여하고 있습니다.
 

RE100에 가입된 한국 기업들. 수출을 주로 하는 제조기업들이 대부분입니다. ⓒ RE100

  

24/7 CFE 협약에 가입된 기업과 단체. 잘 알려진 기업은 그리 많지 않고, 국제원자력기구나 한국수력원자력 등 관련 단체가 많습니다. ⓒ 24/7 CFE

 
RE100에 참여하고 있는 기업을 보면 애플, 구글,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모두가 알만한 기업들이 많습니다. RE100 참여 기업들은 협력업체에도 RE100 가입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 앞으로도 더 많은 기업이 참여할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24/7 CFE 협약에는 탄소 중립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에너지 구매 기업이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 등 10개 남짓밖에 없고, 국제원자력기구(IAEA)나 한국수력원자력 같은 에너지 관련 단체의 참여가 두드러져 협약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CFE 주도한다는 구글이 재생에너지를 대하는 자세

여기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습니까? 구글이 RE100과 24/7 CFE 협약, 양쪽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왜 그런지 구글의 사례를 들여다보면 RE100과 24/7 CFE 협약의 공통점과 차이점, 그리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 보입니다.
 

구글의 재생에너지 전환 목표와 현황. 2017년에 이미 목표를 달성한 후 계속 유지하고 있습니다. ⓒ 구글

 
24/7 CFE 협약의 경우, 구글이 제일 먼저 시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구글은 RE100이 생기기도 전인 2012년에 이미 향후 자사 서비스를 위한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2015년에는 RE100에 가입했고, 2017년에 그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그 후 전력 사용량이 크게 늘었음에도 계속 100% 달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2017년에 이미 전 세계 어느 글로벌 기업보다도 먼저 RE100을 달성한 구글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더 큰 목표를 세웁니다. 24시간 연중무휴로 가동되는 구글의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전력 모두를 무탄소 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겁니다.

구글이 전 세계 사업장에서 사용하는 전력량만큼 재생에너지를 구매하고 있지만, 지역별로 나눠 보면 실제 재생에너지만으로 운영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RE100은 실제로 재생에너지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나 녹색프리미엄 등을 구매해 상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구글은 2030년까지 각 지역별 사업장의 무탄소에너지 사용 비율을 모두 100%로 만들겠다는 게 목표입니다. ⓒ 구글

 
그래서 실제로 100% 무탄소 전력을 사용하겠다는 새로운 목표를 세운 것입니다. RE100을 달성하기 힘드니까 원자력 등을 포함시킨 CFE를 통해 우회하겠다는 게 아니라, RE100은 진작에 달성했으니 그보다 더 높은 수준의 탄소 중립을 실현하기 위해 CFE를 선언한 겁니다.
 

24/7 CFE협약에서 밝힌 무탄소 에너지 원칙. “시간당 전력 소비량과 무탄소 전력 생산을 일치”시키고, 전력 소비가 발생하는 지역에서 청정 에너지를 구매”하는 게 핵심입니다. ⓒ 24/7 CFE

 
이런 구글의 제안을 바탕으로 유엔 산하 기구인 유엔에너지 등이 2021년에 출범시킨 것이 바로 "24/7 CFE 협약"인 것입니다. 여기서 24는 하루 24시간, 7은 일주일 내내라는 의미입니다. 24/7 CFE 웹사이트에는 "전력 소비가 매일, 매시간, 어디서나 무탄소 전력원으로 충족"하는 게 이 협약의 핵심이라고 못 박았습니다.

협약에 동의한 회원사는 "시간당 전력 소비량과 무탄소 전력 생산을 일치(Time-matched procurement)"시키고, 전력 소비가 발생하는 지역에서 청정에너지를 구매(Local procurement)"해야 합니다. 구글은 그걸 하겠다는 겁니다.

구글은 무탄소에너지의 핵심 역시 재생에너지라고 보고 전 세계적으로 7GW 이상의 재생 에너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가 2036년까지 용인의 반도체 클러스터에 LNG발전소를 세워 공급하겠다는 전력량 3GW의 두 배가 넘는 엄청난 프로젝트입니다. 구글의 이 재생에너지 프로젝트는 모두 태양광과 풍력으로만 구성되어 있습니다.
 

구글은 세계 곳곳에서 재생에너지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파란색이 풍력, 노란색이 태양광 발전입니다. ⓒ 구글

 
RE100은 이미 달성한 기업들이 제법 많지만, 24/7 CFE 협약을 달성한 기업은 아직 없습니다. 맨 먼저 CFE를 외친 구글조차도 2022년 기준, 65%밖에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어려운 과제입니다. RE100은 어려우니 24/7 CFE로 가자는 생각은 반에서 공부를 꼴찌 하는 학생이 학교 기말고사는 어려우니 포기하고,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 나가겠다고 선생님에게 추천서를 써 달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대통령님이 제안한 CF이니셔티브에 대해 산업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RE100을 대체하거나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무탄소 에너지원으로 범위를 확장하자는 보완재적 성격이 강하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연중무휴, 실제로 무탄소에너지를 쓰자는 24/7 CFE는 도저히 달성 불가능할 것 같고, 이미 대세로 자리잡은 RE100은 원자력 발전을 인정하지 않으니까 하기 싫은 거겠지요. 그래서 RE100에 원자력 발전만 추가해서 CF연합이라는 걸 만들자고 생뚱맞은 주장을 하는 것 아닙니까?

이건 아까 그 꼴찌 하는 학생이 열등반에 학생들을 따로 모아 놓고 그 안에서 시험을 보게 해 달라는 요구나 다름없습니다. 열등반의 이름만 국제수학올림피아드 비슷하게 붙이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런 요구에는 또 다른 열등생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호응하지 않을 것입니다.
 

2023년 9월 20일(현지시간) 미국을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8차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대통령님의 CFE이니셔티브는 겉으로는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재생에너지 억제 정책과 원전에 대한 투자를 정당화하고 있을 뿐입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유튜브 채널에 돈을 주고 거짓 홍보를 한다고 해서 재생에너지개발이나 RE100의 필요성이 줄어들지 않습니다. 그런 꼼수로는 기후 변화 시대에 탄소 배출도 줄이지 못하고, 우리나라 제조 기업들의 수출만 막을 뿐입니다.

지금은 기후변화에 대한 기업들의 대응으로 RE100은 필수고, 24/7 CFE는 선택인 상황입니다. 대통령님이 제안한 CF연합은 아무런 고려의 대상도 안 되고 있구요. 대통령이 되기 전, RE100을 몰랐던 건 죄가 아닙니다. 하지만 대통령이 된 후에도 RE100을 외면하는 건 우리 경제에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짓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너무 늦기 전에 정책 방향을 되돌리길 바랍니다. 그게 우리 기업들을 살리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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