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2.16 06:46최종 업데이트 24.02.16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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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껏 반도체 특강을 진행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한국의 대표적인 반도체 회사로 소개했습니다. 두 회사가 한국 반도체를 대표하긴 하지만 웨이퍼 팹을 가지고 있는 반도체 회사는 더 있습니다. 파운드리 사업을 주로 하는 DB하이텍, 전력반도체를 생산하는 온세미 코리아 등도 웨이퍼 팹을 운영하며 각사의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반도체 회사입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DB하이텍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그 전에 괜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제가 싱가포르로 이민을 오기 전에 이 회사에서 10년 가까이 일을 했다는 걸 미리 밝힙니다.

세계 10위 파운드리 회사, DB하이텍
 

DB하이텍의 사업현황. 파운드리 톱10, BCD분야 세계 1위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DB하이텍 2023년 2분기 실적보고서 중 한 페이지) ⓒ DB하이텍


DB하이텍을 이야기하려면 아남산업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합니다. 1970년, 국내 최초로 반도체 조립 산업에 착수하면서 한국 반도체 역사의 시작이 된 아남산업은 1996년 웨이퍼 팹 분야에 진출을 했습니다. 동부전자는 그 다음 해인 1997년에 시작됐구요. 동부그룹(현 DB그룹)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어려움에 처한 아남산업을 인수한 후 두 회사를 합병해 탄생한 회사가 지금의 DB하이텍입니다.부천에 있는 1공장이 아남산업, 음성에 있는 2공장이 동부전자였습니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종합반도체 회사로서 주로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하고 있는 것에 반해 DB하이텍은 파운드리 사업이 핵심입니다. 반도체를 설계하는 팹리스 업체로부터 주문받아 반도체를 생산해주는 회사죠. 한국의 LX세미콘, 미국의 아날로그 디바이스, 중국의 스마트센스, 일본의 소니, 독일의 인피니온 등을 고객사로 확보하고 있습니다.


3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회사지만 설립 후 오랜 기간 동안 적자를 면치 못했습니다. 반도체 산업이 규모의 경제를 통해 원가를 낮추는 게 중요한데 초기에는 그게 쉽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이후 꾸준한 투자를 통해 2015년에 처음으로 흑자 전환했고, 지금까지 흑자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2022년에는 매출 1조 6753억 원, 영업이익 7687억 원이라는 사상 최고의 실적을 올렸습니다. 덕분에 2022년 4분기와 2023년 1분기에는 매출액 기준으로 세계 파운드리 기업 중 10위를 차지했습니다. 이 분야 1위는 TSMC, 2위는 삼성전자이고 10위 안에 한국 회사는 삼성전자와 DB하이텍 뿐입니다.
 

사상 최대의 흑자를 기록한 DB하이텍은 200mm 반도체의 고도화와 300mm 진출을 선언했습니다. (DB하이텍 2023년 2분기 실적보고서 중 한 페이지) ⓒ DB하이텍


DB하이텍의 주력 제품은 BCD 공정입니다. BCD란 Bipolar(아날로그 신호제어), CMOS(디지털 신호제어), DMOS(고전압 관리)의 앞 글자를 딴 약자인데 이 3가지 구조를 하나의 프로세스에 집적하는 기술을 말합니다. DB하이텍은 이 분야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DB하이텍은 현재 200mm 팹 두 개를 운영하고 있는데, 실리콘 카바이드(SiC) 웨이퍼를 이용한 200mm 공정 고도화와 2025년 이후 300mm 팹 사업에 진출한다는 목표를 세워 놓고 있습니다.

DB하이텍의 계획대로 진행이 된다면 파운드리 업계에서 순위가 더 올라갈 수 있을 테고, 3%에 불과한 우리나라 시스템반도체의 세계시장 점유율도 끌어 올릴 수 있을 겁니다. 대통령님이 공언한 세계 최대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에 DB하이텍이 들어가지 못할 이유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현실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잘 나가던 DB하이텍의 실적 하락

2022년 사상 최대의 실적을 기록했던 DB하이텍이 얼마 전 2023년 실적을 발표했습니다. 매출액은 전년 대비 30% 줄어든 1조1578억 원, 영업이익은 65% 감소한 2448억 원입니다. 2022년 46%였던 영업이익율은 2023년 21%로 반토막이 났습니다.

작년 한 해 전반적으로 파운드리 시장이 안 좋기는 했지만 DB하이텍은 다른 나라 회사들과 비교하더라도 더 안 좋아졌습니다. 2023년 실적을 발표한 파운드리 회사를 보면 TSMC는 매출이 4.5% 줄었고, UMC는 20%, SMIC는 13.1%, 화홍 반도체는 6.7% 줄었습니다. 이에 반해 DB하이텍은 매출이 30% 줄었고, 2023년 2분기부터는 세계 10대 파운드리 회사 순위에서도 이름이 사라졌습니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매출 역시 32% 줄어 우리나라 회사 둘이 나란히 30%대 매출 하락이 발생했습니다.

DB하이텍은 2023년 1분기에만 해도 "300mm 사업은 회사 가치 성장을 위해 꼭 필요하다"며 진출을 선언했는데, 지난 9월 기관투자자 대상 투자설명회에서는 "300mm 파운드리 시장에 무리하게 진출하지 않겠다"고 말을 바꿨습니다. 연간 7600억 원 정도의 영업이익을 계속 이룰 수 있었다면 최소 1조 원에서 최대 2조5000억 원 정도를 투자해 300mm 팹을 짓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을 텐데, 2023년에 영업이익이 65%나 줄었으니 이제는 "무리"라고 느껴지는 겁니다.

삼성전자가 초미세공정을 위한 팹을 하나 만드는데 필요한 돈은 약 30조 원 수준입니다. 하지만 DB하이텍이 레거시 공정의 팹을 하나 만들기 위해서 예상한 금액은 최대 2조 5000억 원 정도입니다. 금액은 열 배 이상 차이나지만 실제 거기서 일하는 인원은 1000명 남짓으로 비슷합니다. 양질의 일자리 차원에서만 생각하면 DB하이텍의 팹 10개가 생기는 것이 삼성전자의 팹 1개가 생기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2023년 들어 매출이 줄어든 DB하이텍이 300mm 팹을 포기 혹은 연기한 것이 아쉬운 이유입니다.

DB하이텍의 고객이 한국, 중국,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등 여러나라에 있기는 하지만 2024년 4분기 기준으로 매출의 57%는 중국에서 나옵니다. 중국으로의 수출이 줄어 들어 전체 매출이 줄어든 겁니다.

우리 반도체 수출의 핵심은 아직 중국
 

한국은행 보고서에서 정리한 국내 반도체 산업의 수출구조. 반도체 수출의 55%가 중국으로 향합니다. ⓒ 한국은행

 
DB하이텍만 중국 비중이 높은 건 아닙니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반도체 수출의 55%를 중국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베트남(12%), 대만(9%), 미국(7%)이 그 뒤를 잇고 있습니다. 반도체는 텔레비전이나 휴대폰처럼 최종소비재가 아니라 그런 제품을 만들 때 필요한 중간재이기 때문에 중국이나 베트남 같이 제조업이 왕성한 나라로 수출이 많이 되는 겁니다.

지난 2월 1일 산업통상자원부는 1월 수출입 통계를 발표하면서 수출 4개월 연속 플러스, 반도체 수출은 3개월 연속 플러스, 무역수지는 8개월 연속 흑자라면서, 이런 수치가 나오게 된 이유를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입을 빌려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24년을 시작하며 ①대(對)중국 수출이 플러스로 전환되면서, ②수출 플러스, ③무역수지 흑자, ④반도체 수출 플러스 등 수출 회복의 네가지 퍼즐이 완벽히 맞추어졌다."

취임 두 달도 안 되는 산업부 장관도 우리 수출의 열쇠가 중국임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취임 직후부터 반도체를 강조해 온 대통령님은 아직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수출에서 19.3%를 차지하는 반도체, 그 반도체의 55%를 중국이 수입하고 있으니 중국과의 관계는 우리 수출과 산업에 아주 중요합니다. 중국이 우리나라 반도체 사용을 줄이고 자급률을 높이면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이 어떻게 되는지 지난 한 해 뼈저리게 체험했습니다.

대만 TSMC의 매출과 영업이익이 전년동기 대비 각각 4.5%, 6.9% 감소하는 동안 삼성전자 반도체(DS 부문)의 매출은 32% 줄었고, 23조 원 넘던 영업이익은 아예 적자로 전환됐습니다. DB하이텍도 이미 설명한 대로 계획했던 300mm 팹 투자 계획마저 보류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대통령님에게 중국에 굴종적 자세를 취해서라도 우리 이익을 도모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다만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로 상대를 자극하여 관계를 나쁘게 만들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탈중국 선언이나 중국과 대만과의 관계를 언급하는 게 우리에게 무슨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는 겁니다.
 

KBS 특별대담 "대통령실을 가다" 중 한중관계에 대해 윤대통령이 답변하는 장면. "특별히 문제 되는 것이 없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 KBS

 
지난 주 대통령님의 KBS 신년대담을 봤습니다. 반도체 산업과 중국 문제에 대한 전향적인 발언이 나올 수 있을 지 기대가 컸습니다. "중국과의 새로운 관계 설정이 윤석열 정부의 어려운 숙제"라는 KBS 앵커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죠?
     
"한중관계 문제에 대해서 그렇게 크게 우려할 거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아직도 사태파악이 되지 않고 있는 대통령님의 모습을 보면서 전 크게 낙담했습니다. 국민의 걱정을 덜어주는 것이 대통령님이 해야 할 일인데, 한중관계를 또다시 국민의 걱정거리, 반도체 산업의 걱정거리로 남겨 놓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지금이야 떠나왔지만 한 때 저의 청춘을 바친 DB하이텍이 앞으로 계속 잘 되기를 바랐는데, 아무래도 대통령님 임기 중에는 힘들 것 같네요. 지금의 한중관계를 우려하지 않는 대통령님의 인식이 가장 우려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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