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7.22 16:19최종 업데이트 24.07.22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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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현지시간) 미국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소개를 받으며 무대를 가로질러 걸어가고 있다. ⓒ 연합뉴스


예수를 기념하는 성만찬에서 성체란 용어를 몰라 '작은 과자'라 부르고, 아는 성경 구절을 하나도 말하지 못하며, 신에게 용서를 구해본 적도 없다는, 세 번이나 결혼한 남자가 가장 보수적인 미국 기독교인들에게 통하는 역설.

지난 4월 7일 영국의 <가디언>은 이런 역설에도 불구하고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선거운동이 종교 이미지를 강화해 복음주의 지지자들을 확보하는 한편, 미국의 기독교 민족주의에 손짓을 보내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힘입어 미국의 종교적 우파와 트럼프의 관계가 깊어졌으며 트럼프는 사람들이 자신을 메시아에 비교하는 것에 익숙해 있다고 <가디언>은 지적했다. 이들은 트럼프를 신이 선택하고 기름을 부은 자로 믿고 있다는 것이다. 

AP통신 역시 지난 5월 18일 트럼프가 많은 사람들에게 기독교와 애국주의 지킴이로 인식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AP는 그가 복음주의자들과 보수 기독교인들에게 전례 없이 강한 지지를 받고 있음을 지적했다.

이런 분위기를 두고 3월 31일 <뉴욕타임스>는 "트럼프는 구세주가 아니다"라는 사설을 통해 트럼프판 60불짜리 성경책팔이를 꼬집고 "민주당에 투표한다면 더 이상 기독교인이라고 부르지 말라"는 것이 예언이자 미국을 영적인 어둠에서 이끌어 낼 신의 계획이냐고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관련 기사 : 미 대선후보가 8만2천원짜리 성경책을 파는 이유 https://omn.kr/28act)

헌신적 트럼프 지지층, 백인 복음주의 개신교
 

16일(현지시간) 미국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 둘째 날, 사라 샌더스 아칸소 주지사가 연설하고 있다. ⓒ 연합뉴스

 
트럼프 저격 사건이 발생한 13일 이후, 지지자들에게 트럼프는 공식적으로 구세주로 확정받는 분위기가 되었다. 저격 시도 이후 트럼프가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공화당 전당대회 분위기는 그야말로 우리 대 그들, 선과 악의 구도였다.

트럼프의 친구이자 가수인 리 그린우드는 "기도가 통했다. 총알이 비껴가서 그가 살았다"며 "신이 이 나라에 변화를 일으키실 것으로 오랫동안 우리는 믿어왔으며 트럼프가 이제 지금의 행정부를 바꾸고 저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려 하고 있다"고 역설했다. 이 자리에서 아칸소 주지사 사라 샌더스는 "총알도 트럼프를 막을 수는 없었다"며 "신의 보호를 받는 미국에서 전능하신 신이 개입하셨다"고 언급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주택도시개발부 장관이었던 벤 카슨은 이번 사건에서 "너를 치려고 벼린 무기는 아무리 잘 만들었어도 소용이 없으리라(이사야 54:17)"라는 성서 구절을 떠올렸다며 "저들이 트럼프의 명성에 흠집을 내고 파산시키려 하며 투옥하고 심지어 죽이려고 했어도 그는 멀쩡히 살아 있다"고 했다. 트럼프 역시 저격의 순간 신이 자신과 함께 있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미국의 제40대 대통령이었던 로널드 레이건이 백인 복음주의자들을 공화당으로 끌어들인 이후 기독교의 언어와 상상은 수십 년간 공화당의 대선 정치에 영향을 미쳐왔다. 한 연구에 따르면 지난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는 백인 복음주의 개신교층 84%의 표를 얻었다. 백인 복음주의 개신교는 미국 전체 인구의 1/5에 달하며 가장 헌신적인 트럼프 지지층을 대표하고 있다.

그렇다면 자신들의 신앙과 트럼프에 대한 지지를 오랫동안 연결시켜 온 이들에게 이번 저격 사건은 어떻게 이어지고 있을까?

"지지자들에게 신화적인 지위 얻었다"
 

2023년 10월 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주가 제기한 민사소송을 위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맨해튼 지방법원에 출석했다. 당시 트럼프 전 대통령 옆에 예수를 함께 그린 스케치화를 트럼프 지지자이자 우파 활동가인 도미닉 맥기가 소셜미디어에 올리자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공유했다. ⓒ 트루스소셜


오랜 기간 미국 보수 복음주의 지도자이자 2000년 대선 당시 공화당 경선 후보였던 게리 바우어는 암살당할 뻔한 트럼프 사건이 미국의 역사적 사례와 맞아떨어진다고 보고 있다.

그에 따르면 신의 손길은 처음부터 미국에 닿았으며, 조지 워싱턴이 첫 취임 연설에서 미국의 독립전쟁 승리가 신의 섭리였다고 한 것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또한 많은 미국인들은 미국의 제2대 대통령 존 애덤스와 제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 둘 다 독립선언이 공식적으로 승인된 50년 후인 7월 4일에 사망한 것이 신의 계시라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바우어는 레이건 대통령이 1981년에 암살 시도에서 살아남은 것은 "신께서 그가 어떤 일을 하게 하신 것"이며 그 어떤 일이란 바로 소련 공산당을 무너뜨리는 것이었다고 언급했다. 트럼프에게도 다시 백악관으로 돌아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라는 신의 계획이 있는 셈이다.

지난 16일 <뉴욕타임스>는 이 지지자들이 트럼프를 예수와 비교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신 그를 선과 악의 싸움에서 중대한 사명을 수행하도록 하늘이 임명해 준 고레스(바벨론 제국에 포로로 잡혀있던 유대인을 해방시킨 페르시아의 왕)나 다윗(이스라엘 왕국의 두 번째 왕)과 같은, 구약성서의 도덕적으로 흠이 있는 영웅들처럼 보고 있다고 전했다.

이전까지 팔던 정치 문구가 있는 티셔츠나 자동차 범퍼 스티커를 뛰어넘어 이제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9일에는 트럼프가 이제는 지지자들에게 신화적인 지위를 얻었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미국의 구세주는 누가 될 것인가
 

지난 20일(현지시간) 미국 미시간주 그랜드래피즈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러닝메이트인 공화당 부통령 후보 J.D. 밴스 상원의원과 처음으로 선거 유세를 벌이는 날 트럼프 지지자들이 '예수'가 적힌 깃발을 들고 있다. ⓒ 연합뉴스

 
하지만 보수 기독교계 시각에서도 이번 저격 사건을 통해 신앙적인 서사를 만들어가는 것에 불편해하거나 전통적으로 미국 사회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교회와 국가의 분리가 무너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16일 <뉴욕타임스>는 트럼프에게 구약의 선지자와 같은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 아주 실망스럽다는 트럼프 지지자의 말을 실었다. 트럼프는 비판받을 일도 많고 업적도 많은 불완전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암살 시도가 있은 후 <유에스뉴스&월드리포트>는 지난 16일 보수 기독교 신앙을 가진 기고자의 입을 빌려 "트럼프는 기독교 순교자가 아니다"는 제목의 논평을 실었다. 이 논평에 따르면 복음주의자들의 삶은 순교 이야기와 폭력에 영감을 주는 영적인 열정에 물들어 있으며, 기독교인들이 트럼프를 희생양으로 부르며 죄 없이 기소된 예수와 트럼프를 혼동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 와중에 이번 암살 시도는 이런 주장을 더욱 힘 있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논평을 기고한 티파니 윌리엄스는 백인 복음주의자들 중 2/3가 트럼프를 지지한다면서 성서를 자신의 세계관이라 부르고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오해'라고 일축한 하원의장 마이크 존슨의 사례나, 공립학교 교실에 십계명 게시를 의무화한 공화당 소속 루이지애나 주지사 제프 랜드리, 성경 공부를 공립학교에 필수적으로 포함시켜야 한다고 한 오클라호마 교육부 장관 라이언 월터스의 주장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21일 조 바이든 대통령이 대선을 107일 앞두고 민주당 대선 후보직을 전격 사퇴하면서 미 대선판이 요동치고 있다. 현직 바이든 대통령과 전직 트럼프 대통령 간 '전현직 리턴 매치'는 불발되었고 향후 대결 구도가 급변할 수밖에 없는 모양새다. 난세에 영웅이 나타날 수 있을지, 미국의 구세주는 누가 될 것인지 흥미롭게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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