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이 2024년에 한국을 침공할 것인가?" ⓒ 폴리마켓
"북한이 2024년에 한국을 침공할 것인가?"
한국인들에게 섬뜩할 만한 주제로 자유롭게 내기를 벌이는 곳이 있다. '폴리마켓'(PolyMarket)이라는 온라인 도박 사이트다. 스포츠, 비즈니스, 과학, 문화 등 다방면의 내기 거리를 가져와 베팅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예측한 남한 침공 확률은 현재 6%에 불과하지만 한때는 무려 51%까지 치솟은 적이 있다. 지난 1월 13일, 미국이 북한과 러시아의 탄도미사일 거래연루를 문제 삼은 날이다. 기분은 나쁘지만 현재 환율로 80원 정도면 올해 북한의 침공에 베팅해 볼 수 있다. 물론 웹사이트에 가입이 허용되는 국가여야 한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는 선거 등 정치 이슈로 내기를 하는 것은 불법이다.
온라인 도박 사이트라고 해서 한가한 이들의 심심풀이 놀이터로만 치부할 곳은 아니다. 차기 007 영화의 제임스 본드 역할이 누구에게 돌아갈 것인가를 놓고 소소한 내기를 벌이기도 하지만, 이슈에 따라 큰돈이 오가는 곳이기에 중요한 주제에 대해서는 남다른 분석을 필요로 한다.
▲ 새로운 제임스 본드 배우는? 영국 배우 에런 테일러 존슨이 29%로 1위를 달리고 있다. ⓒ 폴리마켓
2016년 이후 선거 도박 시장 성장
미국 대통령 선거 막바지였던 2020년 10월, CNN은 영국의 도박사들이 미 대선 결과를 두고 세계 최대 온라인 베팅 업체인 '베트페어 익스체인지'(Betfair Exchange)에서 2억 2000만 파운드(약 3856억 원)를 베팅했다고 보도했다.
CNN에 따르면 이 금액은 2016년 브렉시트 선거(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결정한 선거) 당시 1억 1300만 파운드(약 1980억 원), 도널드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이 맞붙은 2016년 미 대선에서의 1억 9900만 파운드(약 3488억 원)를 훌쩍 뛰어넘는 역대 최고의 판돈이었다.
같은 해 BBC도 선거 도박이 합법인 영국에서 미 대선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이유를 소개하며 판돈 규모가 민심을 가늠하는 척도로 여겨진다고 보도했다. 영국의 또 다른 베팅 업체인 래드브로크(Ladbrokes)는 2020년 미 대선에 전 세계적으로 모일 것으로 예상되는 판돈이 10억 파운드(약 1조 7523억 원)를 넘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2016년 미 대선 판돈의 2배 수준이다.
BBC는 프로 도박사이자 정치 분석가인 폴 크리슈나무티를 인터뷰하고 "2016년을 기점으로 선거 도박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고 소개했다. 2016년은 영국인들이 브렉시트를 선택하고 미국인들은 도널드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뽑은 해다. 폴 크리슈나무티는 "일부는 전문가보다 자신의 예상이 더 적중했다는 걸 증명하길 원하는 듯 선거 도박을 한다"며 지식인층에 대한 불신이 도박으로 표출된다고 분석했다.
부시, 오바마, 바이든 줄줄이 예측 적중
▲ 역대 미 대선 도박 배당률. 승리 확률(Winner Odds)이 높을수록 마이너스, 낮을수록 플러스 수치로 표시된다. ⓒ SOHistory
도박사들의 대선 결과 예측은 비교적 정확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트페어 익스체인지에서는 2004년 미 대선 후보인 조지 W. 부시에게 90%를 베팅했다. 2008년과 2012년에는 90% 이상의 판돈이 버락 오바마에게 집중되었다.
인트레이드마켓(Intrademarkets)은 2008년 10월에 당시 상원의원이었던 버락 오바마가 민주당 대선 후보로 지명될 가능성을 86.5%로 점쳤고 대통령에 당선될 확률을 51.4%로 예측한 바 있다. 당시 경쟁자였던 공화당 대선 후보인 존 매케인의 당선 확률은 39.9%에 불과했다. 2020년 미 대선에서는 민주당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의 승리 확률을 영국의 베팅 업체 스마켓츠(smartkets)는 78%로 봤고, 뉴질랜드의 베팅 업체 프레딕트잇(PredictIt)은 80%로 예측했다.
지난 7월 14일,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주로 암호화폐를 사용해 베팅하는 폴리마켓은 유세 중 총격을 당한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의 대선 승리확률을 전날보다 10%p 상승한 70%로 소개했다. 당시 경쟁자였던 조 바이든 대통령의 승리확률은 16%에 머물렀다.
그보다 앞선 지난 6월 27일에는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진행된 2024년 대선 후보 간 첫 TV 토론을 두고는 더 날카로웠다. 토론장에서 조 바이든이 힘겨워하는 모습을 보이자 폴리마켓에서 바이든의 대선 중도 하차 확률이 급등하기 시작한 것이다.
토론이 끝날 무렵에는 바이든의 선거 포기 확률이 34%를 찍었고 토론이 끝난 직후에도 며칠간 70%까지 상승선을 그었다. 이는 민주당 유력인사인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이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바이든의 결단을 촉구한 7월 10일보다 2주나 앞선 것이다.
우연인가 집단지성인가
▲ 2024 미국 대선 예측 미 대선을 73일 앞둔 8월 24일 현재, 폴리마켓에서는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 확률을 50%, 민주당 대선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당선 확률을 49%로 표시하고 있다. ⓒ 폴리마켓
폴리마켓과 같은 온라인 도박 플랫폼은 예측 시장(Prediction Markets)이나 내기 시장(Betting Markets)이라고도 불린다. 인터넷 내기 시장은 '집단지성'이라는 이론이 현실로 구현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집단이 크고 여기에 돈이 걸렸다면, 종종 소수의 전문가보다 미래 사건의 결과를 더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돈을 두고 사안을 보는 예측 시장이 갖는 한계도 있다. 대통령 선거라는 초대형 정치 이벤트의 경우, 유권자 집단에서 표본을 뽑아 답변을 얻고 보정하는 절차를 거치는 여론조사와 달리 예측을 통해 이익을 내려는 투자자들이 참여하기에 편향이 있을 수 있다.
특히 유권자인 미국인은 정작 베팅을 할 수 없고, 여론조사기관의 예측과 달리 이변을 바라고 횡재 수준의 돈을 딸 수 있다는 외국인들의 판단이 들어가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슈가 무엇이든 도박사들은 항상 존재했고 돈을 걸어왔다. 도박사들의 정확성이 일확천금을 바라는 이들의 우연인지, 전문가들의 사각지대를 보여주는 집단지성인지는 해석의 문제다.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