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9.11 06:59최종 업데이트 24.09.11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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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현지시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위스콘신주 모시니의 센트럴 위스콘신 공항에 대선 유세를 위해 도착하고 있다. ⓒ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당황하고 있다. <뉴요커>의 에번 오스노스 기자는 아예 "얼어붙은 것처럼 보인다"라고 표현했다. 민주당 부통령 후보인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가 공화당 정·부통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J.D.밴스 상원을 향해 '이상해'(weird)라는 말을 던진 후 그들의 공격적인 언행이 모두 '이상한 짓'이 돼버리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트럼프가 소셜미디어(SNS)에 조롱 삼아 올렸던 게시물이나 가짜 뉴스도 전과 달리 호응을 끌어내기보다 지탄을 받고 있다. 공산당원 앞에서 연설하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나 유명 팝가수 테일러 스위프트가 자신을 지지한다는 가짜 이미지가 대표적이다.

지금까지 트럼프가 해 오던 비아냥이나 조소, 또는 별명 붙이기가 논리적이거나 객관적인 근거가 있던 건 아니었다. 차마 입 밖으로 꺼내기 힘들거나 적당한 단어를 찾기 힘들었던 대중의 속마음을 시원하게 긁어 주는 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상해'라는 강력한 표현 하나가 트럼프의 '꼬리표 붙이기 공격'을 무력화시키고 오히려 그를 '괴짜 늙은이'로 보이게 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구호 하나와 그림 한 장이 미치는 각인 효과

사진 왼쪽부터 바이든이 사퇴하고 해리스가 대선을 이어간다는 <타임> 표지, 트럼프가 임명한 연방대법원 판사들을 풍자한 <뉴요커> 표지, 외교문제로 골치를 앓는 바이든을 그린 <더위크> 표지. 도서관에서는 대선을 앞두고 주간지와 월간지 표지가 보이지 않도록 커버를 씌우거나 스탠드 전시를 금하자는 의견도 가끔 나온다. 언론이 민심을 주도하지 않도록 하자는 취지지만 실행된 적은 없다. ⓒ 타임 뉴요커 더위크


미국 정치인에게 이미지는 평생의 과제다. 이미지 관리를 '정치인의 취득 학점 과목'이라 부르는 이유다. 최고점인 A 이미지를 유지하든 아니면 그럭저럭 D 이미지를 유지하든 반드시 합격해야 하고 낙제는 구제받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번 상대 진영의 공격과 빈정거림을 잘 받아내긴 힘들다. 전무후무한 여론몰이를 하는 트럼프의 '꼬리표 붙여주기'에 걸려들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트럼프 키즈로 급성장하며 보수 정책을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던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한다면 한다'는 인물로 통했다. 그런 디샌티스가 대선 후보로 부각되자 트럼프는 '거짓말쟁이'라는 딱지를 붙여 그의 행정 추진력을 없었던 일처럼 만들었다. 설득력 있는 화술로 똑순이 이미지가 강했던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는 트럼프의 막말로 한순간에 '새대가리'가 되었다.

2016년 대선 경쟁자였던 힐러리 클린턴은 오랜 세월 정치적 경력을 쌓아온 인물로 경력만 놓고 보면 준비된 인물이었다. 트럼프는 이를 역이용해 오랜 생활 공직에 있었던 만큼 비리가 많을 것이라며 '부패 정치인' 이미지를 씌웠다. 원숙하고 정정한 모습을 보이려고 애써왔던 조 바이든 대통령을 겨냥해서는 '졸린 조'라는 별명을 붙여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정치적으로 노련한 이들이 왜 지금까지 트럼프의 별명 붙이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했을까. 정치 전문가들은 월즈의 '이상해'가 불러온 효과를 보면서 그동안 트럼프의 경쟁자들이 '너무 진지하게 대응'해 온 것이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나는 그가 말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애만 쓰다 전환점을 놓친다는 것이다.

민주당 대선주자였던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도 그 가운데 하나다. 하버드 로스쿨 교수 출신의 워런은 민주당에서 법과 경제를 모두 잘 다루는 정책 전문가였다. 트럼프는 워런의 능력 대신 혈통을 건드리며 '포카혼타스'라 불러 워런 캠프를 혼란에 빠뜨렸다. 워런은 수차례 DNA 검사를 받으며 아메리카 원주민 혈통을 입증하고 거짓 공격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그러는 사이 경쟁력에서 밀리며 대권에서 멀어졌다.

월즈의 '이상해' 발언은 계산된 전략도 진지한 대응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트럼프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인물'이나 '범죄자'라고 칭하며 고전하던 민주당에 급격한 변화를 주었다. 또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라 외면받던 미국인 관심을 다시 붙잡으며 양당 대선 후보의 정책과 지도력을 다시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유권자들이 원하는 것

미국의 한 도서관에 있는 정기간행물 스탠드. 대선 기간에는 이 스탠드를 치우자는 의견이 가끔 나온다. 만평과도 같은 표지가 민심에 영향을 준다고 보기 때문이다. ⓒ 장소영


미국의 동네 도서관 로비에는 정기간행물을 진열한 스탠드가 있다. 지나가며 쳐다만 보아도 세상 돌아가는 분위기를 알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주요 주간지와 월간지 표지는 그 자체가 하나의 정치 만평 효과를 낸다. 선거철이 되면 공공장소의 스탠드를 표지가 보이지 않게 하자는 의견이 나올 정도다. 책장형 스탠드로 둘러싸인 작은 공간에서 신문을 읽는 주민들에게 양당 대선 후보의 이미지에 대해 물었다.

"해리스는 계속 남편과 포옹하는 사진을 적극 사용할 거야. 친밀한 부부와 가정. 그게 미국이 보고 싶어 하는 모습이지. 어려운 점(인종이나 재혼하며 결합한 자녀들)을 다 극복한 가정이잖아? 친밀한 가족의 전형이지. 월즈도 마찬가지야. 사연이 있는 아들과 딸(인공 수정으로 얻은 남매와 장애아)이 포함된 친밀한 가정. 월즈 자체가 팀을 이끌어본 지도자잖아. 해리스-월즈는 다양성을 건강하게 포용하는 좋은 인상을 주고 있어. 게다가 상식적이고. 그래 '상식'이라는 단어가 좋겠네. 월즈는 보통의 미국인이 기댈 수 있는 현실 복지를 해왔다잖아. 지나치게 치우치지 않아서 좋아."

"사실 밴스의 아내가 인도계라는 것도 비슷한 긍정적인 인상을 주었지. 그런데 가족 효과라는 게 얼마나 갈까? 전쟁이나 고물가 같은 현실에도 지치고 오바마 이후에 뭔가 사회가 혼란스러워졌어. 어차피 해리스는 바이든 정부의 일원이잖아. 그들의 실패를 보는 데 지쳤어. '지치고 견디기 힘들다' 그게 내 단어가 되겠네. 농담이지만, 민주당은 늘 그들만의 파티를 하지. 나는 해리스가 어떤 사람인지 아직 잘 모르겠어. 나는 검사가 아니라 지도자를 원해."

여러 사람의 대답을 모아 중첩되는 점을 중심으로 재구성했다. 사회적 혼란이 '정치적 올바름'(PC)을 말하는 거냐고 묻자 즉답을 피하는 대신 '모든 날이 핼로윈'이라거나 '정돈이 안 된'이라는 단어가 대답 대신 돌아왔다. 도서관 두 곳에서 만난 몇몇 중장년들이 전체 유권자를 대변할 수는 없겠지만 생각해 볼 점은 있어 보인다.

지난 4일 <더칼럼니스트>에 실린 글에서 테네시텍 정치학과 이인엽 교수는 "월즈는 '이념 진보'가 아닌 국민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생활 진보', '정책 진보'로 진보에 대한 거부감을 낮추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주민들이 주지사로서의 월즈의 정책을 '현실적으로 기댈 수 있다'고 언급한 것과 일치한다. 동시에 민주당의 PC(정치적 올바름)주의나 구멍 뚫린 복지에 대한 반감을 낮추고 있다는 뜻도 된다.

또 하나, 양당의 대통령과 부통령 후보 중 누구도 절대적인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이든을 향해 늙고 무능하고 외교에 휘둘린다고 공격했던 트럼프는 이제 후보들 중 가장 나이가 많다. 바이든을 공격했던 말들이 부메랑처럼 트럼프에게 돌아가고 있다.

트럼프 재임기를 한 번 경험했던 유권자들은 그의 구호만큼 미국이 다시 위대해졌는지(MAGA) 확신하지 못한다. 반면 해리스, 월즈, 밴스는 유권자에게 낯설다. 그들이 외치는 슬로건들이 지지자 아닌 대중에게 강력하게 어필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월즈가 진보주의자에 대한 반감을 낮췄다고 해도, 해리스가 '바이든 행정부의 일원' 이미지를 탈피하지 못한다면 그의 부통령 경험은 오히려 리스크로 작용할 것이다. 잡히지 않은 물가와 불안한 경제, 치안, 바이든이 해결하지 못한 중동과 우크라이나 상황 등 트럼프 진영이 해리스를 몰아세울 항목은 차고 넘친다. 도서관에서 만난 주민들이 언급한 '실패'라는 단어가 확산하면 실패자 이미지는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누구도 알 수 없다

지난 9일(현지시간)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첫 TV 토론을 위해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국제공항에 도착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반면, 해리스-월즈가 가져온 변화에 대해 집중하는 전문가도 있다. 지난 8월 11일 정치 분석가 제프 그린필드는 <폴리티코>에 쓴 글에서 '원래 부통령이란 변화를 기대할 수 없는 현 정부의 일원이지만, 해리스의 경우 바이든-트럼프와 비교되는 특별한 요건들이 변화의 상징처럼 느껴지게 한다'고 분석했다. 젊고, 여성이며, 유색인종이자, 경선에서 바이든을 몰아붙이던 날카로움과 소수계 엘리트가 가지는 해리스만의 특별한 친화력이 두 노인 후보와 대비를 이룬다는 것이다.

주민들과의 대화 속에서 무엇보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미국 사회의 '안정'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트럼프와 바이든 행정부를 거치면서 각계각층에서 충돌이 심했던 탓이다. 대선 토론을 포함해 양 후보가 치열하게 다툴 주제도 두 행정부를 거치며 번복되고 또 번복된 '국가 질서' 문제일 것이다. 낙태, 환경, 교육, 소수자와 이민자 등 까다로운 문제를 풀어낼 지도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이다.

트럼프는 '괴짜 늙은이' 이미지를 탈피할 수 있을까. 성범죄나 국회침탈사건 등 사법 리스크를 피해 왔지만 '법질서 파괴자'로 낙인찍힌 상태다. 여기에 대선 전 미국 전역의 극장에 걸리는 영화 <어프렌티스>가 트럼프의 어지러운 과거에 대해 어떤 파급 효과를 끼칠지 불확실하다.

2020년 대선 당시 트럼프의 조카 메리 트럼프가 출간한 책 <과한데도 만족을 모르는>의 영향이 크지 않았듯 이 영화도 그럴 것이라고 낙관하는 반응도 있지만 대중매체의 위력은 장담할 수 없다. 해리스 역시 정치에 발을 담그던 시절을 추적하는 영상 등이 번지고 있다. 정치적 스캔들로 부각될지 묻힐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미 대선까지 앞으로 50여 일, 남은 시간이 짧기에 각자가 가진 꼬리표를 서둘러 떼내고 미국인이 바라는 '지도자상'을 선점하는 후보가 절대적으로 유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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