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8.09 10:50최종 업데이트 24.08.09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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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9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 후 첫 해외 순방지인 영국으로 떠나기 위해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전용기 에어포스원에 탑승하며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미국이 돌아왔다!"(America is back!)

2021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영국에 도착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첫 외교 순방에서 한 선언이다. 바이든이 말한 대로 미국은 돌아왔을까?

조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전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과 차별화에 나섰다. '무지개 행정부'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소수계와 소수자를 등용했고 제조업 분야와 무너진 중산층을 끌어올리는 한편 모범적인 도시 재생을 위한 '그린 뉴딜 정책'을 공언해 왔다.

바이든 행정부는 외교 정책에서도 트럼프 행정부와 달랐다. 트럼프식 외교가 동맹 외교의 표본이었던 선례를 따르기보다는 다소 돌발적이고 때론 무례하게 굴면서 전통적인 동맹 관계를 흔들고 국제협약 기구들을 탈퇴하며 미국의 선도적인 이미지와 영향력을 축소시켰다고 보았다.

따라서 바이든 정부는 출범부터 트럼프의 신고립주의나 미국 우선주의 노선 탈피를 시도했다. 파리기후협약과 같은 각종 국제기구에 차례로 재가입하고 유럽과의 상호 관세 철회와 동맹 강화에 서명하며 동맹과 함께 러시아와 중국을 견제하는 모양새를 갖췄다.

취임 초기 바이든의 연설과 정책에는 오바마 정부를 이어가는데 머물지 않고 2차대전 후 세계를 휘어잡던 경제 대국이자 세계 경찰국으로의 미국의 위상을 회복하려는 야심이 자주 엿보였다. <워싱턴포스트>는 바이든을 '국제주의자'로 칭하며 세계라는 무대에서 미국을 중앙에 올려놓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주요 언론은 바이든의 노력을 새로운 '팍스 아메리카나(미국 주도 세계 질서)로의 이상'이라고 평했다. 미국의 패권에 의해 세계 질서가 안정을 얻되 환경과 인권을 챙기고 유럽 외 신흥 경제 대국과의 무역에서도 이익을 챙기겠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바이든의 이상은 취임 초기부터 삐걱거렸다.

비판받는 바이든의 리더십
 

친팔레스타인 시위대가 보복 전쟁을 멈추고 가자지구를 구하라고 외치고 있다. ⓒ 장소영

 
바이든이 내세운 명목과 타당성에도 불구하고,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 과정에서 보여준 바이든의 리더십은 뼈아픈 실책으로 평가된다. 질서 있는 철군은커녕 언론 협조와 통제, 정권 이양에 적절한 시기를 놓치며 혼란을 자초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현지 상황이 급속도로 퍼지며 세계가 그 혼란을 지켜보았다.

아프간 사태로 시작된 '대외 리더십' 문제는 한동안 잠잠했던 세계의 화약고들이 연이어 터지며 더욱 심각해졌다. 예상보다 길어지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어떠한 중재도 끌어내지 못했다. 이로 인해 나토의 결속은 강화된 반면 미국의 입지는 애매해졌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서 인도도 떼어 놓지 못했다. 인도는 서방과 러시아를 오가며 양쪽 모두와 우호를 맺고 독자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려 했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인도를 서방에 합류시키고 러시아와 거리를 두게 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서방이 새삼 깨닫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폐허로 만들고 있는 이스라엘은 문제가 더 심각하다. 지난 5월 <뉴욕타임스>는 '지난 수개월간 미국의 노력에도 이스라엘 지도부가 여전히 말을 듣지 않고 있는 반면 민주당 내부에서는 이스라엘의 맹렬한 보복을 억제시키라는 요구가 강하게 일고 있다'고 전했다. 대학 내 친팔레스타인 시위도 잠재우지 못했다. 소득 없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이스라엘과 중동은 확전도 불사할 기세다.

중국과 북한에 가한 경제 제재와 압력도 원하는 만큼의 효력을 얻지 못했고, 원자력 잠수함 도입 문제로 동맹인 프랑스와도 충돌했으며, 심각해진 난민 유입 문제는 결국 미 남부 국경에 빗장을 걸게 했다.

제조업을 부활시키겠다고 한 공언이 무색하게 미국의 제조업은 침체 국면이다. 실업률도 다시 오르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 정책을 순환시키는 데 사용되었어야 할 막대한 예산이 국외로 지나치게 흘러간다는 반발도 터져 나온다. 우크라이나, 대만, 이스라엘을 지원하기 위해 950억 달러(129조 1145억 원)의 안보 예산이 국회를 겨우 통과했지만, 세 나라에 대한 '공통 명목이나 기준'이 없어 반발을 키운다는 평도 있다.

인도를 움직이지 못한 미국은 최근 중국을 견제하고 대만을 보호하기 위해 필리핀에 5억 달러(6796억 원)의 신규 군사 원조도 제공했다. 뚜렷한 자국 이익이 없는 한 더 이상 소모적인 외국의 전쟁이나 정세에 간섭하지 않겠다는 트럼프식 고립주의가 힘을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결과만 놓고 보면, 바이든은 대중국 정책에서 트럼프와 다를 바 없었고 결국 이민자와 난민 문제로 남부 국경을 막았다. 경제 제재나 무력 지원으로도 상대국에 원하는 만큼의 효과나 위상을 얻지 못했고 분쟁국들 간 중재도 이루어내지 못했다.

<유에스에이투데이>는 '바이든이 아프간 문제부터 국경과 친팔레스타인 시위대를 다루는 문제까지 리더십 대신 수동적이고 부정적이며 회피적인 태도를 보여주었다'고 비평했다.

카멀라 해리스의 과제
 

미국 민주당의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왼쪽)과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 연합뉴스

 
지난 1일 <뉴욕타임스>는 '바이든의 평화 희망을 중동에서 일어난 암살 사건이 뒤집었다'는 기사에서 '대선이 100일도 남지 않은 지금 바이든 행정부나 새로운 대선 후보에게 가장 필요한 일은 복잡한 문제에 휩싸여 들어가거나 더 확산시키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어진 사설에서는 전쟁을 막으려면 미국은 이스라엘에 반드시 '노'라고 말하라고 충고했다.

그러나 '예스'나 '노'를 말하기에는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기가 양당 대선 후보 모두에게 부담을 안기는 상황이다. 민심과 선거 자금 모금에 영향을 미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바이든이 선언했던 미국은 돌아오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외교 베테랑을 기대했던 바이든에게 시원함을 느끼지 못했던 유권자들은 이제 부통령이자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에게 눈을 돌리고 있다. 대선 레이스를 포기하고 레임덕을 맞은 바이든이 러시아나 이스라엘 확전 상황을 관리하기 힘들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해리스에게는 서둘러 해결해야 할 두 가지 과제가 있는 셈이다. 현 정부 부통령으로서 '외교에 유약한 정부'라는 트럼프의 프레임에서 빠져나오는 것이다.

트럼프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종결과 이스라엘 내 두 국가 존립을 골자로 하는 중동 평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또한,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은 물론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나 북한의 김정은, 중국의 시진핑을 어떤 식으로든 다루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들조차 트럼프가 이들과 친한 것도 문제라고 여기지만 적어도 휘둘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해리스의 또 다른 과제는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서 트럼프의 고관세 정책이나 주춤해진 바이든의 그린 뉴딜 정책 같은 '단순하고 낡은 처방'을 대신할 해법을 서둘러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는 '바이든주의에 트럼프주의의 요소가 많다'고 지적한 바 있다. 바로 여기서부터 해리스의 고민은 시작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유권자들에게도 양면성이 있다. 미국인으로서 어느 나라에도 휘둘리지 않는 강인한 미국을 보고 싶다는 면과 자신이 속한 인종이나 출신국 등의 일에 미국이 어떻게 대응하는지 민감할 수밖에 없는 양면이 존재한다. 대선에서 양 후보의 인종 문제가 계속 거론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당장은 양당 후보의 사적인 연결고리보다 경제든 안보든 독자생존이 더 이상 불가능해진 미국을 재건하고 국제적 입지에서 밀리지 않을 후보에 유권자들의 마음이 움직일 것으로 보인다. 인플레이션과 전쟁 소식에 지친 미국 유권자들에게 경기 침체의 공포마저 다가서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조약 재탈퇴를 시작으로 재임 시절 미국 우선주의 강경책을 이어 나가겠다는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와 물리적 전쟁과 무역 전쟁을 한꺼번에 해결해야 하는 민주당 대선 후보 카멀라 해리스의 대선 토론을 유권자들이 기다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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