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100년 통사>에서 5.18 관련 서술 부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이 책은 언뜻 보면 유신을 비판하는 책으로 읽힐 수도 있다. "야당·언론 탄압 유신 기간", "유신 시절의 비(非)민주·비자주 시민사회", "이승만 독재를 부끄럽게 만든 박정희 유신독재" 같은 구절이 그런 느낌을 갖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유신은 민주적 기반 구축의 고통'으로 해석한 부분에 더해, 김대중·노무현도 유신 때 대통령이 됐으면 별수 없었을 것이라는 논리를 접하게 되면, 유신에 대한 저자의 관점을 명확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는 "나는 다음과 같은 발상으로 당시를 다시 정리해보기를 간절히 호소한다"고 촉구한 뒤 "유신독재를 비호하자는 발상은 아니다"라고 전제하면서 이런 가정을 내놓는다.
"만일 1968~75년간 대통령이 박정희가 아니라 윤보선·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었더라면 이들은 박정희와 얼마나 다르게 국정을 운영했을까."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민주화를 상당 부분 진척시킨 것은 두 지도자가 민주화 의지를 가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이들을 대통령으로 만든 지지세력이 그런 의지로 무장했기 때문이다. 김대중이나 노무현 같은 인물이 1968~1975년 시기 민주화 세력의 지지를 배경으로 대통령이 됐다면, 그 시기 대한민국은 당연히 박정희 유신체제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김대중·노무현 같은 인물이 단신으로 공화당정권에 들어가 대통령이 됐을 경우와 그런 인물이 민주화 세력의 지지로 대통령이 됐을 경우는 각각 엄연히 다른 결론으로 이어진다. 두 경우의 질적 차이를 무시한 채 '누구라도 그때는 박정희처럼 할 수밖에 없었다'는 논지를 펴는 것은 김진현 전 장관이 <대한민국 100년 통사>를 집필한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를 짐작케 만든다.
그는 종신 집권을 위해 국민을 짓밟고 탄압한 박정희를 비판하지 않고, 박정희에게 저항한 세력을 도리어 비판한다. 김대중·노무현 언급이 있은 뒤에 이렇게 썼다.
"당시 국제외교·안보·경제·남북관계가 6·25전쟁 이후 최대 국난이었다는 사실을 통찰했더라면 종교·언론의 엘리트들이 좀 더 국가적·종합적 차원에서 통합·조정·협상 능력을 제고할 여지가 없었을까."
1971년에 미·중 간의 핑퐁외교가 있었던 사실에서도 느껴지듯이 1970년대 초반은 세계적으로 데탕트 분위기가 일던 시기였다. 한국전쟁 때 적대했던 미국과 중국이 상하이공동성명을 발표하고(1972.2.28.), 남과 북이 역사적인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하고(7.4) 중국과 일본이 국교정상화를 발표하는(1972.9.9.) 등의 화해 분위기가 일어났다. 분단과 냉전을 위협하는 이런 정세가 김진현 전 장관이 말한 "6·25전쟁 이후 최대 국난"이었다.
당시의 민주화 세력은 그런 최대 국난을 통찰하지 못했다고 비판한 뒤 그는 자신을 사회운동으로 이끈 고 김수환 추기경과 고 강원룡 목사를 소환한다. "종교·언론의 엘리트들이 좀 더 국가적·종합적 차원에서 통합·조정·협상 능력을 제고할 여지가 없었을까"라고 말한 직후에 그는 "김수환 추기경, 강원룡 목사가 살아 계신다면 다시 묻고 싶고, 저승에 가서도 여쭈어보고 싶다"고 말한다. 유신독재에 맞선 두 인물이 걸은 길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발언이다.
<대한민국 100년 통사>는 민주나 독재는 대서양적 개념이라는 궤변을 제시하며 유신체제를 옹호하고 5·18을 반역으로 매도한다. 이런 책이 대한민국 국민의 세금으로 문화체육관광부 소속기관인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발간됐다. 김진현 전 장관이 우리 역사와 국민들을 모독했다기보다는, 윤석열 정부가 우리 역사와 국민들을 모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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