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정보위원회의 국정원에 대한 국정감사를 앞두고 29일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가정보원에서 직원들이 감사위원들을 기다리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지난 29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국가정보원의 북한 동향 보고가 있었다. 보도에 따르면, 국정원은 "이번 달 들어서는 주체 연호 사용을 중단하고 해외에 파견된 인력들에 대한 김일성·김정일 시대 등 선대의 문헌을 대신해서 김정은의 혁명 역사 등을 재차 강조하는 등 선대 삭제, 김정은 독자 우상화 조치가 강화되고 있다"고 브리핑했다.
금년 들어 김일성·김정일의 그늘을 벗어나기 위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행보가 강화되고 있지만, 그 역시 해외파병에서만큼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전례를 무시하기 힘들어 보인다. 이번 파병이 베트남전 파병 때와 비슷한 국제환경 및 대남전략하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정은이 조부의 사례를 참고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조성돼 있는 것이다.
미국은 1950년대 들어 유럽과 제3세계에서 영향력 약화를 겪었다. 이 상황에서 미국이 보여준 대응 방식은 한국·일본·대만·필리핀처럼 가장 확실한 우방들이 포진한 동북아에 대한 영향력을 공고히 하는 것이었다.
미국은 1960년에 미일안전보장조약을 미일상호협력안보조약으로 격상시키면서 자위대가 주일미군과 공동보조를 맞추게 했다. 그러면서 1961년에 집권한 박정희 정권이 한일관계 복원에 나서게 함으로써 한미일 안보협력체제의 구축을 추진했다. 미국의 이런 구상은 한국인들의 한일회담 반대운동으로 인해 상당 부분 약해진다.
1960년을 전후해 미국이 동북아 냉전을 강화하는 이 정세는 북한이 중국·소련과 밀착하는 상황을 초래했다. 북한은 1961년에 양국과 군사동맹을 체결했다. 소련과 중국이 반목 중이었기 때문에 북한을 매개로 한 북·중·소 3각 체제는 강력하게 구현되지 못했다. 한일관계가 한미일 체제에 영향을 미친 것처럼, 중소관계가 북중소 체제에 영향을 준 결과다.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의 냉전전략에 따라 한미일과 북중러의 대결 구도가 첨예해지는 지금, 김정은은 통일 같은 것은 하지 않겠다면서 남한에 대해 공격적이고 쌀쌀맞은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국가 지도자가 입에 담기 어려운 거친 언사들은 김여정 담화를 통해 내보내고 있다. 또 무인기를 용산 대통령실 상공에도 날려 보내고 남한의 대북전단 부양에 맞서 오물풍선도 띄워 보내고 있다.
1960년대의 김일성도 중·소와의 동맹을 강화한 상태에서 대남 공세의 수위를 높였다. 이 시기의 김일성도 통일정책을 멀리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가 1961년부터 추진한 남조선혁명론은 남한을 곧바로 통일하지 않고 남한 내부의 혁명을 먼저 유도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런 방침에 따라 1960년대 후반에 나타난 것이 무장공비의 대대적 파견으로 상징되는 군사적 압박의 강화다.
2011년에 미국 외교협회가 발표한 '한국의 군사적 긴장 고조' 보고서에 의하면, 1955년부터 2010년까지 한반도에서 발생한 군사충돌 1436건 중에서 49.4%인 709건은 1960년대 후반에 발생했다. 1960년대 전반에 20.1%, 1970년대 전반에 10.7%가 일어난 사실은 1960년대 후반의 긴장 고조를 잘 보여준다.
데탕트와 7·4남북공동성명에도 영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