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 말의 교감김수오 작가는 “몇년 째 만나온 제주마들이 나를 자신들의 공동체 구성원으로 받아주었다”고 말한다.
김수오
수년째 한밤중에 한라산 기슭 드넓은 들판에 나가 제주마의 삶을 내밀하게 카메라에 담아 온 김수오 작가의 사진전 '가닿음으로'(제주 돌문화공원 내 갤러리 누보에서 11월 30일까지)가 첫날부터 커다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11월 2일 오후 열린 사진전 오프닝 행사장을 꽉 메운 참석자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깊은 감동에 빠져들었다. 김수오 작가 특유의 '한밤중 사진'이 자아내는 서정성 짙은 아름다운 풍경 때문만은 아니었다. 작가가 말에게 '가닿음으로' 시작된 말과의 일체감이 관객들에게도 그대로 와닿았기 때문이다. 말과의 오랜 시간 깊은 교감을 통해 포착한 생명의 탄생과 소멸, 그 사이에 놓인 삶의 애잔함이 우리 인간의 그것과 너무도 닮았다.
작가와 오랜 교분을 쌓아온 소설가 현기영 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말들과 사귄 지 여러 해 되었다. 사진작가로서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작업을 위해 거기에 새벽에도 가고, 저녁에, 밤에도 간다. 밤의 어둠 속에서도 달빛과 별빛을 끌어모아 촬영한다. 작가는 말을 기록하지 않고, 말을 그린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단순한 재현이 아닌 심미적 표현물이 되었다. 이번 전시의 작품들이 바로 그러한데, 그 작품들의 또 다른 미덕은 생왕쇠멸(生旺衰滅)이라는 자연순환의 절실한 내러티브를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주마의 생로병사를 담다
김수오 작가는 지난 5년여 동안 제주 중산간 드넓은 들판에서 살아가는 수십 마리의 말과 함께하면서 수많은 사진을 찍었다. 그 가운데 가려 뽑은 35장의 사진은 제주마가 세상에 태어나고, 자라고, 병들어 죽기도 하고 어미가 되고, 다시 대지의 흙으로 돌아가는 생생한 모습을 보여준다. 관람객들은 갤러리의 동선을 따라가면서 이 과정을 마치 스토리텔링처럼 감상할 수 있다.
김수오 작가는 사진전을 보러 온 관람객들에게 전시된 작품을 하나씩 풍경 감상하는 방식으로 보지 말라고 조언한다. 몇 점의 작품이 하나의 서사를 구성하고 있으므로 순서대로 연결 지어 감상하면 제주마의 생로병사로 이어지는 일생을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 봄날 제주마가 새끼를 낳는다. 어미가 새끼의 태아막을 혀로 핥아주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해 여름 어린 새끼가 그만 앓아눕게 되고, 들판에 쓰러진 새끼를 지키겠다는 어미의 결연한 표정이 느껴진다. 가을날, 안타깝게도 끝내 그 여름을 넘기지 못하고 죽은 새끼 말은 백골의 잔해로 변했다. 새끼를 잃은 어미 말이 먼저 낳아 기르던 다른 새끼 말과 둘이서 노을로 물든 들판을 쓸쓸히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