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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국토를 지키고 조국의 자유를 수호하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는 전투경찰순경으로서 값있고 영광되게 몸과 마음을 바치며 필승의 신념으로 맡은 바 책임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선서합니다."

전투경찰이 임용했을 때에 하는 '선서'(전투경찰대설치법시행령 18조)란다.

지난 10일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해야할 경찰이 대우차노동자들에게 무차별적인 폭력을 가한 사건이 벌어졌다. 우리 사회가 과연 법치국가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행위였다.

그 동안 각종 집회현장에서 헌법에 명시된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오히려 공권력에 의해 유린당하는 사례는 수 없이 많았다. 합법 시위임에도 경찰이 돌을 던지거나 방패와 진압봉을 휘둘러 상처를 입는 경우도 자주 있었다.

그럴 때마다 이 불법적 행위를 어디다 하소연해야 하나 울화통이 터졌으나 가해자인 경찰의 신원을 알 수가 없어 고소나 고발 등 법적 절차를 밟는 건 불가능했다.

시위 현장에 나와 있는 전경들은 누가 어디 소속이고, 계급은 뭔지 전혀 구별이 되지 않는다. 더구나 방석모(전경들이 쓰는 투구 비슷한 헬멧)를 쓰고 있으면 누가 누군지 얼굴조차 알 수 없다.

그 반대로 집회나 시위를 하는 노동자나 학생들은 그 신분이 철저히 노출되기 일쑤이다. 집회나 행사장 주변에선 고성능 카메라와 캠코더를 들고 이른바 현장 채증을 하는 경찰이 눈을 크게 뜨고 있다. 더구나 정부는 시위현장에서 복면(손수건이나 마스크을 말함)을 쓰지 못하게 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경찰은 이러한 채증 작업과 우월한 정보력을 바탕으로 시위 참석자의 신원을 파악하고 주동자를 수배하거나 현장에서 잡아간다.

하지만 이번 대우자동차 폭력사태에서 드러났듯이 경찰의 불법행위가 분명한데도, 명확한 당사자를 찾아내기는 힘든 게 현실이다. 기껏해야 현장 지휘 책임자에 대한 문책이나 공개 사과 정도가 이뤄질 뿐이다.

이처럼 공공연하게 자행되는 경찰의 불법행위를 줄일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물론 '올바른 시위문화'를 정착시키고 경찰관계자의 의식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차선의 방법이면서도 법적 책임을 제대로 물을 수 있는 길은 다른 데 있다. 그건 바로 전경들에게 이름표를 달게 하는 것이다. 이름표는 물론이고 소속부대와 계급이 눈에 잘 띄게 해야 한다.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렇다.
전투경찰대설치법시행령 제24조 '복제' 규정에 따른 '경찰복제에 관한 규칙'(행정자치부령 제15호)에 소속부대와 이름표를 달도록 강제하는 조항을 넣어야 한다.

지난 1998년 9월 12일 개정된 현행 규칙엔 일반 경찰관에겐 이름표를 달게 하고 있는 데, 이유가 참 그럴 듯 하다. "경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책임행정을 구현하기 위하여 경찰공무원의 제복에 이름표를 달도록 했다"는 거다.

군사독재 시절 민중의 지팡이가 아닌 몽둥이 행세를 해왔던 경찰의 자기 개혁 노력이라 할 만한 조치다. 더 나아가 전투경찰에게도 이름표를 달게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시민과 노동자들이 낸 세금으로 운영되는 경찰이 오히려 합법적 '폭력배'로 둔갑하는 걸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익명성이 보장된 권력은 절대적 힘을 갖는다"는 누군가의 말이 생각난다.

그렇다. 익명의 권력은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는 악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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