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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느릿느릿 박철
엄마는 할머니한테 맞고 자랐어?

우리 집 은빈이가 멀쩡하게 잘 놀다가도 한번 골이 나면 별 쇼를 다합니다. 한번 울기 시작하면 끝이 없습니다. 아무리 달래도 울음을 그치지 않습니다. 그럴 때마다 내 입에서 단골로 나오는 말은 “은빈아, 제발 그만 징징거려라. 아빠 머리 아파 죽겠다”입니다.

처음에는 은빈이에게 사정을 해보고 협박을 해 보아도 계속 징징거리며 진을 빼놓습니다. 그냥 내버려두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럴 때 극약처방이 ‘회초리’입니다. 하는 수 없이 체벌을 합니다. 회초리 가져오라는 말에 움찔해서 울음을 그치면 다행인데, 회초리 가져오라는 소리에도 수그러들지 않으면 손바닥을 맞든지 엉덩이를 맞습니다. 회초리에 감정을 집어넣으면 안 되는데 솔직히 감정 없이 어린애를 때릴 수 있나요? 그러고 나면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모릅니다.

ⓒ 느릿느릿 박철
다시는 매를 들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또 그런 상황이 연출되면 또 마찬가지입니다. 나대신 아내가 회초리를 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내는 더 무섭게 은빈이를 닦달합니다. 우리 은빈이가 땡깡을 부리며 징징거리는 경우는 거의 들어줄 수 없는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경우입니다.

한밤중에 뭘 사놓으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다음에 사줄게’가 통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요구가 무리한 요구인지 알면서도 고집을 부립니다. 두 번째는 이유도 없이 심술보가 터진 경우입니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이것저것 이유가 많은데, 딱히 떼를 쓰고 울만큼 심각한 상황이 아닙니다. 세 번째는 오빠들과의 마찰입니다. 넝쿨이 오빠는 비교적 사이가 원만하고 큰오빠 아딧줄(중3)과 마찰이 잦습니다. 나이 차가 많이 나서 전혀 충동이 없을 것 같은데 잘 싸웁니다.

ⓒ 느릿느릿 박철
TV채널 때문에 싸우고 오빠가 잔소리한다고 싸우고, 그러다 오빠가 한대 슬쩍 쥐어박으면 폭발하고 맙니다. 이제 초등학교 1학년 짜리가 말을 얼마나 잘하는지 말로는 당해낼 재간이 없습니다. 어제 저녁 밥상을 물리고 차를 마시는데 은빈이가 뜬금없이 아내에게 묻습니다.

“엄마, 엄마는 할머니한테 매 맞은 적 있어?”
“아니 엄마는 할머니한테 안 맞았어. 그걸 갑자기 왜 묻니?”
“그런데 엄마는 나를 왜 때리는 거야?”

아내가 할 말이 없는지 빙긋 웃고 맙니다. 대신 은빈이를 와락 껴안아 주었습니다. 아마 속으로 이렇게 말했을 테죠.

“은빈아! 사랑하는 은빈아! 그래 엄마가 미안하다. 네가 엄마 아빠한테 매 맞아서 마음의 상처가 많았구나. 그래 엄마아빠가 다시는 때리지 않을게!"

ⓒ 느릿느릿 박철
은빈아 오늘 밤에는 엄마 아빠 중에 누구랑 잘 건데?

우리 집은 다른 집보다 일찍 잠자리에 드는 편입니다. 8시 35분에 나오는 TV 연속극을 보고 자는데 요즘은 그나마 재미없어서 그것도 안보고 일찍 잡니다. 그러면 누가 이부자리를 펴는가? 그것을 가지고 한바탕 합니다. 주로 내가 펼 때가 많고, 더러 아내와 은빈이가 이부자리를 폅니다. 은빈이가 기분이 좋으면 시키지도 않았는데 이부자리를 곱게 펴놓고 “아빠, 이불 폈어요. 이제 주무셔야지요”라고 말합니다.

내가 방의 이불을 펴고 자리에 누우면 은빈이가 따라 눕고, 집안정리를 마치고 아내가 들어와 눕습니다. 그러면 내가 은빈이에게 묻습니다.

“은빈아, 오늘 엄마 아빠 중에 누구랑 자고 싶니?”
“응, 엄마 아빠랑 같이 잘거야.”
“은빈아, 아빠가 오늘 아이스크림도 사줬는데 아빠랑 자야지."


ⓒ 느릿느릿 박철
내가 사정사정하고 달래면 은빈이가 내 품안으로 들어옵니다. 그런데 5분을 넘지 못하고 엄마한테 갑니다. 초등학교 1학년짜리가 아직 엄마 젖을 만집니다. 나와 같이 안자는 이유가 내 젖꼭지가 ‘작아서’ 입니다.

아내는 잠자면서 은빈이가 자꾸 젖꼭지를 만져서 아프기도 하고 성가시기도 해서 제발 아빠랑 자라고 해도 은빈이는 엄마만 좋다고 나를 내버려둡니다. 조금 섭섭하지만 어떡합니까? 젖꼭지가 작으니….

요즘은 “은빈아 오늘 밤에는 엄마 아빠 중에 누구랑 잘 건데?” 하고 물으면 “○○콜라 맛있어 맛있으면 또 먹지 딩동댕동 척척 박사님 알아 맞춰보세요. 딩동댕동 댕동댕동.”

ⓒ 느릿느릿 박철
은빈이가 이 노래를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며 부르다가 마지막 ‘동’하고 끝날 때 손가락에 찔린 사람이 은빈이와 자게 됩니다. 그런데, 요 여우같은 은빈이가 막상 내가 낙점되었는데도 내가 자는 척하면 몰래 내 품에서 빠져 나와 자기 엄마 품으로 가고 맙니다.

나는 말짱 도루묵 신세입니다. 그러나 엄마 품에 안겨 새록새록 자는 은빈이를 보면 늦둥이가 우리 집에 가려다 줄 행복이 작지 않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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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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