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내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되기 전에는 평범한 독자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내게 귀와 입같은 존재였습니다. 지금은 교동섬에도 인터넷 전용선이 들어왔지만 그 전에는 위성안테나를 이용하여 인터넷을 했는데 <오마이뉴스> 기사는 거의 빠짐없이 보았고, 주로 정치·사회면을 탐독했습니다.
그러던 내가 <오마이뉴스>에 시민기자로 등록을 하고 첫 기사를 보냈는데 그 날 저녁 <오마이뉴스>를 열어보았더니 그 어디에도 내가 올린 기사는 없었습니다. <오마이뉴스>에서 정식 기사로 채택하지 않으면 ‘생나무’에 남아 있게 된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그리고 해가 바뀌고 2003년이 되었습니다. 새해를 맞고 나서 그동안 나의 방만한 삶을 정리하고 좀 반듯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농촌 목회를 20년 가까이 해오면서 여기 저기 신문이나 잡지에 꾸준하게 글을 기고해 왔는데 그동안 스크랩을 전혀 하지 않아 남아 있는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또 일부 원고는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저장해 두었는데 하드디스크가 박살나면서 최근 3년 동안의 원고(단행본 2권 분량)가 공중분해 되는 일도 겪었습니다. 이러다 완전 적자인생으로 전락할 것 같은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가족홈페이지’를 만드는 일과 인터넷 신문에 정기적으로 글을 기고하는 것이었습니다. 가족홈페이지 <느릿느릿 이야기>는 2월초에 개설하였고, 1월초부터는 개신교의 진보적인 인터넷신문인 <뉴스앤조이>에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시작했고 그리고 지난 4월 16일부터는 <오마이뉴스> <사는 이야기> 색션에 생활에세이를 기고하게 되었습니다.
<오마이뉴스>에 두번째로 올린 기사는 ‘낙화’라는 제목의 글이었습니다. 내가 찍은 사진 한 컷과 시 그리고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규탄하는 내용의 짤막한 글이었습니다. 그 때도 역시 생나무나 잉걸이 무엇인지 몰랐는데, ‘기사쓰기’에 들어가서 내가 쓴 기사 앞에 달린 꼬리표를 보고 생나무와 잉걸 그리고 메인서브가 무엇인지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4월 16일 올린 기사가 잉걸에 오르고 그 다음부터는 거의 메인서브에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2003년 4월 14일부터 오늘 10월 18일까지 154회 기사를 올렸는데 생나무 한 번 외에는 모두 잉걸 이상의 기사로 올랐습니다. 그동안 톱기사로 오른 것이 14번이었습니다. 지난 5월에는 과분하게 시민기자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내가 <오마이뉴스>에 본격적으로 글을 올린 것이 꼭 6개월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내 생활도 많이 정리되었습니다. 시간을 쪼개서 쓸 정도로 시간관리를 철저하게 되었습니다. 주로 글을 올리는 시간은 이른 아침이었습니다. 그 전날 완성된 원고를 다음날 아침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아침 운동을 다녀와서 7시경에 올렸습니다. 비가 와서 아침운동을 못 나가게 되는 경우에는 그것보다 더 이른 시간에 기사를 올렸습니다.
내가 주로 <오마이뉴스>에 올리는 글의 소재는 독자들로 하여금 식상하게 느껴지지 않도록 다양한 이야기를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삶의 주변에 경험할 수 있는 잔잔한 이야기, 유년시절을 반추하면서 내가 경험했던 이야기, 가족 이야기, 명상에세이 등을 골고루 섞었습니다.
그렇게 6개월 동안 글을 올리다보니 많은 사람들의 호응과 격려를 받았습니다. 특히 외국에 사는 교포들로부터 심심치 않게 메일과 전화를 받았습니다. 모두 고마운 분들입니다.
그렇게 호응과 격려를 해주시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심한 거부반응을 갖고 ‘이제 글을 그만 올리라’고 질타하시는 분들도 더러 계셨습니다. 그 때 솔직한 심경을 <박철의 느릿느릿 이야기> 게시판에 피력하기도 했습니다. 그 중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목사가 목회나 열심히 하지 무슨 글을 그렇게 많이 쓰냐? 거기에 시간을 다 빼앗겨 목회를 제대로 하겠느냐?” 몇 분의 그런 염려를 잘 들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목회라고 하면 목사가 설교준비하고 심방하고 기도하고 그런 걸 목회라고 하지요.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건 매우 좁은 의미의 이해입니다. 저는 목회란 목사의 모든 삶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목사가 밥 먹고, 여행하고, 글을 쓰고, 산보를 하고, 사람을 만나고, 인터넷을 하고…. 이 모든 것이 목회의 한 부분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목사의 삶은 도덕적으로 투명해야 합니다. 저는 매사에 솔직하려고 노력합니다.
글을 써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글이 책상에 앉아서 쓰여진다고 생각하십니까? 한 줄의 글을 쓰기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더 많은 고민을 하고, 독서를 하고 기도를 합니다. 저는 제 주변에 일어나는 일은 가급적 따뜻한 시선으로 보려고 노력합니다. <오마이뉴스>에 눈살을 찌푸릴 글을 한번도 올려본 적이 없습니다. 제 글에서 남을 비방한다든지, 특정한 집단이나 개인을 공격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저녁 9시30분에 잠자리에 들어서 새벽 3시 50분에 일어납니다. 하루에 글을 쓰는 작업은 한 시간이상 넘어 본 적이 없습니다. 다른 일에 지장을 줄 만큼 글 쓰는 작업에 매달리지 않습니다.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의 글쓰기 작업은 마치 숨을 쉬는 것과 같습니다. 제 생활의 일부분입니다. 그리고 제 글의 채택 여부는 <오마이뉴스> 편집부 소관입니다. 톱이나 메인으로 채택이 되든지, 잉걸에 머물든지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원고료는 제 필름값에 지나지 않습니다. 돈 벌려고 직업적으로 글 쓰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리고 소재가 없으면 쓰고 싶어도 쓸 수가 없습니다. 글을 쓰고 안 쓰고는 제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그걸 뭐라고 하지 마십시오. 저에게 글을 쓰지 말라는 말은 “너는 오늘부터 밥 먹지 말라"든지 "너는 오늘부터 숨을 쉬지 말라”는 말과 같습니다. 제게 글을 쓰는 작업은 더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기 위한 삶의 방편이기도 합니다. <오마이뉴스> ‘사는 이야기’를 통해 살맛나는 세상과 마음이 통하는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마이뉴스>에 글을 올리면서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고 또 다양한 입장들과 생각들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독자들의 반응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하겠지만 건강한 비판이 아닌 아무런 근거나 내용이 없는 음해나 인신공격, 언어폭력에 대해선 온라인 인터넷 신문 특성상 어느 정도 각오해야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주로 쓰는 '사는 이야기'가 독자들에게 욕먹기 딱 좋은 소재라는 것입니다. '사는 이야기'에 올라오는 이야기가 무슨 대단한 이야기나 이슈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독자들이 생각하는 뉴스(News)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이기 때문에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엊그제 우리 동네에서 첫 벼베기가 있어서 벼를 수확하는 장면을 사진에 담아 글과 함께 올린 기사가 메인 톱으로 채택되었는데 그 기사를 보고 어느 독자가 “지금 아랫녘에서는 매미의 피해로 농경지의 자식 같은 작물을 잃고 신음하고 절망하는 분들이 있는데 벼베기 기사를 올리면 희망적인 글이 될까요? 물론 수해의 아픔에 젖어 탄식만 하자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씁쓸하네요”하면서 비판의 댓글을 올려주셨습니다.
'사는 이야기' 섹션에 올라오는 글들은 우리가 생활현장에서 흔히 경험할 수 있는 소재에 글 쓰는 사람의 주관적인 판단이나 생각이 곁들여지기 때문에 독자들의 생각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는 이야기'의 소재를 객관화 또는 일반화시키면 밋밋하고 아무 재미없는 이야기가 되고 말 것입니다. 독자들도 이 점을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올린 기사가 메인서브에 채택되고 아니면 운 좋게 메인톱으로 채택되고 하는 것은 큰 의미는 없습니다. 원고료가 조금 차이가 나겠지만 <오마이뉴스> 원고료 받아서 땅을 사거나 집을 사는 것도 아닙니다. 필름값이나 재료값을 충당하면 다행한 일입니다.
요 며칠 전 내가 올린 “작은 씨앗이 큰 나무를 이루듯이”가 보기 좋게 생나무로 추락을 하였습니다. 그것도 잉걸에 올랐다 생나무로 추락하는 좀처럼 보기 드문 일이었습니다. 이런 일도 있는가? 궁금해서 편집회의로 통해 문의를 했더니 메일을 통해 친절하게 답변을 보내주셨습니다.
“박철 기자님의 글은 잘 읽어 보았습니다. 말씀하신 기사는 내용 파악이 어렵고 군데군데 호응하지 않는 문장이 있어 생나무로 두었습니다.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메일을 받고 참 고마웠습니다. 생나무 미역국을 먹게 되었는데 솔직히 기분이 하나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나도 생나무 미역국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통쾌했습니다. 올해 154회 글을 올리면서 한 번도 생나무에 머문 적이 없었는데 <오마이뉴스> 편집부에서 생나무 펀치를 날린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프지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감사했습니다.
앞으로 더 겸손하게 글을 쓰겠습니다. 그리고 기사 채택여부와 관계없이 나 나름대로 개성 있는 글을 쓸 것이고, 더 깊은 내용을 담아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마이뉴스>를 통해 좋은 친구들을 만나게 된 것도 감사합니다. 종종 생나무 미역국을 먹게 되더라고 호탕하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