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의 음악과 피카소의 회화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는 사람이라도 영화에 대해서는 누구나 할 말이 있다. 어떤 영화를 직접 보았다면, 아니 직접 보지는 않았더라도 그 영화의 감독이 누구고 주연 배우가 누구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누구나 한 마디씩 참견한다. 따라서 "요즘은 개나 소나 영화한다"는 말은 생산자의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소비자, 즉 관객의 측면에서도 적용되는 말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생산자의 영화와 소비자의 영화는 분명히 다르다. 우리 말로는 구분 없이 '영화'라고 부르지만 영어에서는 생산자가 바라보는 영화는 대개 '필름(film)'이라 불리고 소비자가 바라보는 영화는 보통 '시네마(cinema)'라고 불린다.
부산국제영화제(P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의 '영화'를 '시네마'가 아닌 '필름'으로 표기하는 것은 그것이 영화를 만들어낸 생산자들의 잔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름'으로서의 영화는 예술의 '창조'이며, 그 예술 창조를 위한 기술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반면에 '시네마'는 이미 완성된 '필름'의 유통과 소비 과정에 붙여지는 이름이다. '필름'이 유통되고 소비되는 공간인 영화관을 우리가 '시네마'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즉 '시네마'는 관객에 의해서 완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시네마'로서의 영화는 예술의 '향수'이며, 그 예술 향수를 보다 풍성하게 해주는 해석적인 측면에 집중한다.
그렇다면 '필름'도 '시네마'도 아닌 '무비(movie)'란 무엇일까? 롱맨(Longman) 사전은 '무비'를 '영화관에서 보여지기 위하여 만들어진 필름(a film made to be shown at the cinema)'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즉 '무비'에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양 측면이 모두 들어가 있는 것이다.
루이스 쟈네티의 영화개론서 <영화의 이해(Understanding Movies)>를 소개하는 글을 이처럼 영화를 뜻하는 두 단어에 대한 설명으로 내가 시작한 이유가 이제 이해되었으리라. 책의 영문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필름'도 아니고 '시네마'도 아닌 '무비'로서의 영화를 다루고 있는 균형 감각이 바로 이 책의 미덕임을 말하기 위해서 먼 길을 에둘러 온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영화감독이나 촬영감독을 꿈꾸며 영화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영화인의 필독서로 널리 알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전문적인 영화평론가가 되고자 하는 사람 또는 단순히 좀 더 영화를 보는 안목을 키우고자 하는 일반 독자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대중적인 영화관련 교양서로도 인기가 높다.
그러나 이 책의 옮긴이 역시 뉴욕대학에서 영화를 공부할 때 이 책을 교재로 사용했으며 지금도 미국의 많은 대학들이 이 책을 영화과목의 기본서로 채택하고 있을 정도로,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은 그리 만만치 않은 전문성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전문적인 내용으로 가득 찬 영화의 숲을 가로질러가는 저자의 솜씨는 너무나 능숙해서 그의 뒤를 따라가는 우리는 먼 길에도 쉽게 지치지 않는다.
'사진'이라는 영화의 가장 협소하고도 특수한 기술적 측면에서부터 시작해서 '화면구성(미장센)', '편집', '배우', '문학(시나리오)'을 거쳐 마침내 '이론'이라는 가장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측면에까지 이르게 되는 전 과정이 마치 무거운 배낭을 메고 떠난 도보 여행처럼 고되지만 앞으로 나아갈수록 즐겁다.
도보 여행의 끝에 이를수록 배낭은 점점 비워지고 반면에 우리의 마음은 세상을 통해 새로 배운 기쁨으로 가득 채워지는 것처럼, 이 책의 끝에 다다르면 처음에 우리의 발걸음을 무겁고 힘겹게 하던 것들이 새로운 영화 지식이 되어 우리의 머리 속으로 옮겨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느끼게 되는 배움의 기쁨과 즐거움은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은 영화가 갖는 복합적인 요소들을 관객들에게 쉽게 이해시키는 데 일익을 담당하기 위해' 쓰여졌다는 사실에서 연유하는 것일 터이다.
또한 저자가 이 책을 쓰면서 '관객들이 영화를 어떻게 감상해야 하는지 가르치려 하기보다는, 영화를 감상할 때 느끼는 반응에 대한 영화적 이유를 설명하고자' 애썼기 때문일 것이다. 본문의 내용을 시각적으로 충분히 확인시키고 이해시켜 주고 있는 350여 장에 달하는 참조 사진과 그에 대한 적절한 설명은 그 좋은 예이다.
프랑스의 비평가 앙드레 바쟁(André Bazin)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욱 더 잘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은 그것이 어떻게 말하여지고 있는가를 아는 일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말은 물론 영화의 내용과 형식은 공존한다는 믿음의 표명이지만, <영화의 이해>를 다 읽고 난 내게는 '시네마'는 '필름'의 이해를 통해 더욱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말로도 들린다.
뤼미에르 형제의 최초의 영화 <기차의 도착>(1895년)과 조르쥬 멜리에스의 <달세계 여행>(1902년)에서 볼 수 있듯이, 사실 내용과 형식, 사실주의와 표현주의, 작가와 관객, 생산자와 소비자, '시네마'와 '필름'은 영화의 탄생에서부터 동시에 존재했던 양 극단이다.
영화 탄생 100년이 훨씬 지난 우리 시대에 필요한 것은 이 양 극단 사이의 균형 감각을 회복하고 조화를 이루는 일일 것이다. 루이스 쟈네티의 책 <영화의 이해>는 이런 의미에서도 관객과 영화인 모두 일독할만한 책이다. 이 책은 관객과 영화인, 즉 '시네마'와 '필름'의 시선이 아니라 양자의 시선이 함께 녹아 들어있는 '무비'의 시선으로 영화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영화의 이해(Understanding Movies)>
루이스 쟈네티(Louis D. Giannetti) 지음, 김진해 옮김, 현암사 펴냄, 2000년 9월
이 기사는 인터넷서점 YES24의 독자리뷰에도 기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