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런 바쁜 여행객도 잠시 멈춰서는 곳이 있다. 심지어 시간을 할애하며 기다리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주말마다 혹은 하루 중 어느 시간에 맞춰 행해지는 조그만 이벤트들 중 꽤 알려진 것은 안내서마다 표기가 되어 있다. 놓치면 후회할 것 같은 호기심을 자극해 지나가는 여행객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이 중 대표적인 것이 근위병 교대식이다. 아마 글을 읽는 이 순간에도 많은 분들은 런던 버킹엄 궁전 앞에서의 근위병 교대식을 떠올릴 것이다. 빨간 상의에 커다란 털모자를 쓴 모습이 직접 본 것마냥 생생하리라. 나 역시 그랬다.
지난해 5월의 끝자락 즈음, 버킹엄 궁 앞에 도착한 순간 입이 떠억 하니 벌어지고 말았다. 궁전 주위의 울타리는 물론이고 정문으로 향하는 길목까지 가득 들어찬 관광객들의 행렬에 놀란 것이다. 11시 30분에 시작된다기에 그 시간을 맞춰 갔는데 사람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나와 있었다.
지하철에서 걸어오는 동안 대형 전세버스들이 길가에 줄줄이 세워져 있던 연유도 이제 알았다. 마침 일요일이라 더 많은 구경꾼이 몰려든 것 같다. 불어로 떠드는 일군의 학생들이나, 처음 듣는 언어의 단체 관광객까지 그 구성 또한 다양하다.
멀리서 군악대의 소리가 들려오고 근위병들이 지나간다. TV나 책에서 많이 보았던 탓인지 낯설지도 신기하지도 않다. 손발이 틀리는 엇박자만이 자꾸 눈에 띈다. 날선 군대의 군기를 늘상 보고 듣는 우리만의 특수성인 것 같다.
근위병 교대식은 세계 많은 곳에서 행해진다. 과거의 전통을 계속적으로 이어오기도 하지만 관광을 위해 복원되었거나 이벤트화하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대부분은 관광객들을 붙잡는데 성공했다.
폴란드 바르샤바의 샤스키 공원에는 좀 다른 의미의 위병 교대식이 열린다. 공원의 피우수츠키 광장에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각종 전쟁에서 죽은 이름 없는 용사들을 위한 묘역이 조성되어 있는데, 이를 하루 종일 위병들이 지키고 매 시간마다 위병들의 교대식이 이어지는 것이다.
공원광장을 향해 멀리서부터 발을 맞춰 걸어오는 위병들과 몇 마디의 구령으로 임무를 교대받는 위병들의 발소리만이 교대식이 전부다. 그래도 여행객들은 이 짧은 순간을 위해 몇 분씩 기다리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체코의 프라하 성 앞에서도 매 시간마다 근위병 교대식이 이어진다. 성의 일부가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고 있어 위병들이 지키고 있는데 부동 자세의 그들을 대상으로 사진을 찍어대는 관광객들은 반대로 위병들의 구경거리이기도 할 것이다.
프라하의 구시가 광장에는 사람들을 기다리게 하는 또 다른 볼거리가 있다. 매시 정각 즈음이면 구 시청사의 천문시계를 향해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든다. 큰 바늘이 12시로 향하는 순간, 시계 창으로 12사도의 인형이 나와 움직인다. 그리고 느닷없이 울어대는 닭울음소리! 시계탑으로 모아졌던 시선들이 이내 웃음을 머금는다. 아마, 이 독특한 마무리가 유명세에 한 몫을 담당한 듯하다.
이 외에도 건축물의 야간 점등식이나 분수의 음악 쇼 등은 여행의 양념처럼 꽤 매력적인 볼거리가 된다. 세월의 무게에 다소 나른하고 힘겹게 서 있던 과거의 유산들도 이때나마 잠시 생기를 얻는지도 모른다.
무대에 올라선 오페라의 주인공처럼 대중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갖가지 조명에 맞춰 웅장한 아리아를 뿜어내고 나면 그 건축물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어느새 경이로움으로 변해 있다. 여기에 굳이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라는 수식어를 가미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우러나온다.
최근 우리 나라 경복궁, 창덕궁에서도 왕궁수문장 교대식을 하고 있는 걸 보았다. 무심하게 지나다니던 길을 잠시 멈추고 이를 지켜보았다. 처음엔 수문군들의 움직임을 보다가 차츰 두리번거리며 광화문 처마 자락도 쳐다보고 멀리 아련히 보이는 궁궐과 어우러지는 인왕산의 자태까지 보게 된다. 일상의 무관심이 벗겨지는 순간, “참 좋다!”라는 감탄사가 튀어나온다.
문화와 역사와 자연을 꾸미기 위해 덧붙여지는 치장은 딱 요만큼의 자연스런 관심이어도 괜찮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