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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평화·통일문제 전문기자를 겸직하고 있는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지난 4일부터 워싱턴을 방문해 한·미 동맹, 북핵 문제 등 한반도 문제에 대해 미국 정부의 고위 관리들과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취재를 벌이고 있다. 대표적인 한반도 문제 전문가인 박건영 교수 인터뷰와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 인터뷰에 이어 이번엔 국방부 고위 관리들과의 면담 내용을 토대로 한미동맹을 짚는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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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작계 5029' 협상, 중단한다고 될 일 아니다


미 국방부 건물 전경.
미 국방부 건물 전경. ⓒ AP=연합뉴스
한미동맹과 관련해 인터뷰에 응한 미국 국방부 관계자들로부터 확인할 수 있었던 분위기는 한마디로 '심상치 않다'는 것이다. 5일 오전(현지시간) 펜타곤(국방부 청사)에서 만난 고위 관리들은 한국 정부가 "동맹을 정치화하고 있는 것 같다"며, 한국 정부에 대해 강한 불신을 토로했다.

동시에 이들은 한국의 '합리적인 우려'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듯 했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인정하면 한국의 안전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점과 북한의 이상 징후 발생시 한미연합군을 투입한다는 작전계획 5029가 한국의 주권을 침해하고 전면전의 위험을 잉태시킬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한미동맹이 '이중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 정부는 한국 정부가 자주 말을 바꾸고 언론 플레이를 하고 있다며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신중하고 민감하게 다뤄야 할 사안을 과장하고 오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미관계가 '신뢰의 위기'에 빠져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한 가지 문제는 한국의 정당하고 합리적인 우려가 미국 정부에 왜곡되어 전달되고 있다는 점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작전계획 5029는 한국의 주권을 침해할 수 있는 요소가 있고, 한반도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소지가 다분하다.

그런데 펜타곤에는 한국 정부가 주권과 동맹을 양자택일의 문제로 바라보고, 이를 정치화하고 있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세계 유일 초강대국이라는 부시 행정부의 오만함과 한미동맹을 매끄럽게 관리하지 못한 노무현 정부의 미숙함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전략적 유연성 문제, 한국 NSC도 잘 알고 있다"

미국 국방부 관리들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작전계획 5029에 대해 청와대의 고위 관리들이 이중 플레이를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2003년 초부터 시작된 미래한미동맹정책구상(FOTA) 등 여러 가지 안보 회의를 통해 이미 논의되었던 내용을 마치 최근에 안 것처럼 말하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참고로 청와대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작년 말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가 불거지자 "지금까지는 논의된 바가 없고 2005년부터 협의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또한 작전계획 5029와 관련해서도 2004년 말에 그 내용을 알게 되었고 한반도의 안전과 한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요소가 있어 2005년 초에 중단시켰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 국방부 관리들은 이러한 사안들은 2003년부터 논의된 것이라며, 이러한 내용은 한국의 국방부와 외교부는 물론이고 NSC에도 "매우 잘 알려진 것"(very well informed)라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내용들을 최근에 안 것처럼 말하는 것은 정치적 목적이 있지 않고서는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이 펜타곤의 분위기이다. 펜타곤 관리들은 이와 같은 한국정부의 "동맹의 정치화"(politicalization of alliance)가 양국 사이의 협의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라는 점도 여러 차례 강조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3월 8일 공군사관학교에서 열린 제53기 공군사관학교 졸업 및 임관식에서 졸업생도들에게 경례를 받고 있다. 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3월 8일 공군사관학교에서 열린 제53기 공군사관학교 졸업 및 임관식에서 졸업생도들에게 경례를 받고 있다. 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 연합뉴스 백승렬
노 대통령의 3월 8일 연설은 '충격'

펜타곤의 한국 정부에 대한 불만은 노무현 대통령의 3월 8일 공군사관학교 졸업 및 임관 연설에서 절정에 달했다. 당시 노 대통령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해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우리 국민이 동북아 분쟁에 휘말리는 일은 없다"며, "(이는) 어떤 경우에도 양보할 수 없는 확고한 원칙으로 지켜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복수의 펜타곤 관리들은 신중하게 협의해야 할 문제가 그런 식으로 처리된 것에 대해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특히 한 관리는 "노무현 대통령이 한국의 허락 없이 주한미군이 동북아 분쟁에 개입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취지의 발언은 "미국의 주권을 침해하고 있는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즉, 주한미군은 미국의 군대이기 때문에 이들이 어디를 가느냐는 한국의 허락을 받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단 한국은 동맹국이기 때문에 미국이 주한미군을 해외로 차출할 때에는 양국 사이의 협의와 협력이 필요하다는 점은 빼놓지 않았다. 그러나 3월 8일 노 대통령의 연설과 같은 발언은 동맹관계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특히 한 관리는 한국 정부가 동북아 균형자론을 천명했을 때, 그러한 정책을 사전에 미국과 협의하지 않은 것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했다. 특히 그는 이를 두고 노무현 정부가 한미동맹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느 수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이 '동맹의 논리'를 앞세워 이러한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과거의 일은 제쳐두더라도 부시 행정부 들어 한국의 안보에 엄청난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들이 한국과 일언반구의 상의도 없이 독자적으로 결정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일방주의로 일관하면서 한국에게 상호주의를 원하는 것이 미국이 말하는 '동맹의 도리'인지 묻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전략적 유연성은 미국의 주권 사항"

지난 2003년 경북 포항에서 실시된 한미합동군사훈련 모습. 미군 공기부양선과 장갑차가 해안으로 접근하고 있다.
지난 2003년 경북 포항에서 실시된 한미합동군사훈련 모습. 미군 공기부양선과 장갑차가 해안으로 접근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해 미국 관리들로부터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기본적으로 이 사안은 '미국의 주권 사항'이라는 인식이다. 미군이 한국에 있을 때 주한미군이 되고 그들의 유일한 임무는 한국을 방어하는 일이지만, 미군이 한국을 떠나면 그들은 더 이상 주한미군이 아니며 이에 따라 임무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펜타곤의 논리인 것이다.

그러나 미군이 한국의 영토·영해·영공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처럼 단순화할 문제는 아니다. 가령 중국-대만 사이에 무력 충돌이 발생해 오산에 있는 미국 공군기가 출격할 경우 이는 한국의 주권을 침해한 것일 뿐만 아니라, 한국의 안보도 위협하는 것이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이 관리는 구체적인 시나리오에 대해서는 얘기할 수 없다며 즉답을 피했다.

이 문제와 관련해 작년에 만난 중국의 전문가의 지적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작년 7월 상하이에서 만난 중국의 안보전문가는 "주한미군이 양안 분쟁에 개입하는 것은 한국이 미군의 영토 사용을 허용하는 것"이라며, 이는 한국이 중국에 대해 위해 행위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처럼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한-미-중 사이의 인식 차이는 크다. 동북아에서의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대단히 민감한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flow-in' 강조하는 미국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해 또 한 가지 주목할 현상은 이 계획이 한국에도 이롭다는 점을 최근 미국 정부가 부쩍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주한미군의 해외 이동(flow-out) 뿐만 아니라 해외 주둔 미군의 한반도 투입(flow-in)에도 주목하라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다.

이는 미국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정당화하기 위해 가장 강조하는 논리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논리는 간단하다. 전략적 유연성은 주한미군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미국 군사력 전체에 해당되는 것이고, 한반도에서 분쟁이 발생하면 한국 방어를 위해 한반도 밖의 미국 군사력도 신속하게 개입할 수 있기 때문에 한국에도 이롭다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은 주한미군의 해외 차출을 의미하는 'flow-out'을 정당화하는 유력한 논리로 이용되고 있다. 즉, 한국이 유사시 주한미군 이외의 미국 군사력도 투입(flow-in)되는 것을 희망하면서, 다른 지역에서 분쟁이 발생했을 때 주한미군의 차출을 반대하는 것은 이기적인 발상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인터뷰에 응한 미국 국방부 관리의 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한국이 북한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는데, 일본이 주일미군의 한반도 출동을 반대하면 어떻게 되겠는가?"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그 얘기는 중국과 대만 사이에 무력 충돌이 발생했을 때, 한국은 주한미군의 출동에 대해 노(No)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렇다!(Yes)"라고 답했다.

이처럼 미국이 '투입'을 근거로 '차출'을 정당화하려는 것에서 두 가지 차원의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 하나는 노무현 정부가 전략적 유연성을 비롯한 주한미군과 관련한 협상을 벌일 때, "한국의 안보에 이상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미국에게 '역이용'당할 소지를 제공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한국 정부의 우려에 대해 미국은 110억 달러를 투입해 주한미군의 전력을 증강시키고 한국 이외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도 한반도 유사시 신속하게 개입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왔다. 이를 통해 주한미군의 '변형'(transformation) 및 차출을 포함한 전략적 유연성을 관철해온 것이다.

또 한 가지 문제는 미국의 일방적인 해석이다. 한반도 유사시 대규모 증원군을 투입하겠다는 것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논의되기 훨씬 이전부터 있었던 '오래된 계획'이다. 신속성과 그 성격에 있어서 차이가 있더라도, 미국 군사력의 추가적인 '투입'이 새로운 계획인 것처럼 주장하면서 주한미군의 '차출'을 정당화하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논란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수밖에 없다. 한국 정부가 상당 부분 합의해주었다고 생각했다가 노 대통령이 3월 8일 연설에서 이를 강하게 부인하는 발언을 하자 펜타곤은 충격과 불만에 휩싸여 있다. 그리고 협의는 하겠지만 주한미군의 해외 차출은 미국의 주권 사항이기 때문에 어디든지 갈 수 있다는 것이 미국의 기본적인 입장이다.

초기 대응부터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낸 노무현 정부는 뒤늦게 대통령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직접 나서서 제동을 건 상황이다. 안 그래도 초강대국인 미국과의 협상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외교안보팀의 안일함과 대통령 및 외교안보팀 사이의 의사소통 체계의 왜곡, 그리고 NSC의 정책 조율·총괄 기능의 부실함으로 인해 감당하기 힘든 딜레마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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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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