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경기도 연천군 중면 28사단 GP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사건에 수많은 눈과 귀가 쏠리고 있다. 연일 TV 뉴스에서는 이 사건에 대한 사실 전달과 분석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고, 난데없이 비보를 전해들은 유가족들은 슬픔 속에서 사건의 전말을 밝혀달라며 울부짖고 있다.

인터넷에서도 김일병에 대한 분노와 비난의 목소리가 사그러들 줄 모르고 있다. 심지어 김일병 친구들의 미니홈피까지 비난의 글로 가득 차는 등 분노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또한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김일병에게 사건의 단초를 제공한 '군대 내에서의 폭력문화'에 대한 논란도 함께 번져가고 있다.

국방부는 사건이 일어난 당일 오전 11시 브리핑을 통해 사건 발생원인을 김일병에게 가해진 '언어폭력'으로 발표했다. 아직까지 사건 조사가 진행 중이고, 계속해서 새로운 발표가 나오면서 의문점들이 제기되고 있는 현재까지도 사건 발생원인 중 하나가 '언어폭력'으로부터 일어났다는 국방부의 입장은 확고하기만 하다. 유족들은 이러한 국방부의 발표가 사건의 진상을 은폐한 채 모든 책임을 김일병과 희생자들에게 떠넘기려는 태도라고 비난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윤광웅 국방장관이 22일 여단장급 이상 지휘관들에게 선임병들이 악의적 기득권을 포기할 수 있도록 지휘관들이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당부하는 장관서신을 보냈다. 윤 장관은 이 장관서신에서 '선임병들에게 존재하는 악의적 관습을 포기하도록 지휘관이 끈질기게 지도하고 설득해야 하며, 불건전한 내무생활이나 관습을 하루빨리 개선해 나가며, 선임병의 내무생활 교육 강화와 행동양식의 변화를 위한 유도에 간부들이 적극 노력해 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연천 총기난사 사건으로 시끄러운 이 상황에서 내려보낸 이 장관서신은 국방부의 브리핑과 합쳐져서 이 사건의 본질을 선임병들의 악의적인 기득권으로 몰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문제의 본질일까?

필자는 이번에 사고가 발생한 28사단 예하 부대에서 2001년부터 2003년까지 군복무를 한 예비역 병장이다. 포병 출신이고 포반장(보병의 분대장에 해당)을 9개월 동안 수행해 왔다. 26개월의 복무 기간 중 단 한 번의 구타도 당한 적 없었고, 나 역시 단 한 번의 구타도 행한 적 없었다. 하지만 포반장으로 근무하면서 구타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어려웠던 것은 사실이다. 그것이 단순히 윤 장관이 말하는 악의적인 기득권일까?

군대라는 조직은 사회와 다를 수밖에 없다. 군대라는 존재 자체가 평상시에는 국가의 안보를 지키는 최전방에 서야만 하고, 유사시에는 전쟁을 통해 국가의 존재를 지키는 최전방에 서야 하는 만큼 사회와는 다른 교육과 다른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조직이다. 그 속에서 '상명하복'이라는 군대 문화는 불가피한 것이다.

군인 한 사람 한 사람은 커다란 조직에 있어서 하나의 톱니바퀴이자 필요시에는 하나의 소모물로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유사시 전장 상황에서 희생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커다란 목적(전투의 승리부터 전쟁의 승리까지)을 위해서 옆의 동료를 믿고 사지로 뛰어들 수 있는 군인을 만들기 위해서 26개월 동안 정신교육 및 각종 훈련을 받게되는 곳이 바로 군대이다.

여기서 모순이 발생한다. 위에서는 병사들이 이러한 군인상에 도달할 수 있도록 끊임없는 지휘와 교육을 하달하고 그것을 실천할 것을 명령계통을 통해서 압박한다. 더 나은 교육성과를 이루어내기 위해서, 더 좋은 병영 분위기를 만들어가기 위해서 내려오는 지시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각 계급별 간담회부터 시작해서 소원 수리, 상호존칭 사용, OO병의 날 행사 등 계통을 더해갈수록 그 지시들은 몸집이 불어나서 예하대에 내려온다.

문제는 그 예하대에 있는 간부들이 이러한 지시사항을 수행하기 위해서 충분히 노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교육훈련을 수행함에 있어서 그 교육을 관장해야 할 간부가 자리를 비운 채 분대장이나 선임 병사에게 교육을 맡기면서 어느 정도의 '성과'를 만들어내라고 한다. 그런데 교육훈련을 하다보면 근무자들이 교체도 되고, 이런저런 작업 인원이 빠지고 그러다보면 제대로 된 교육훈련을 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 때도 있다.

결국 선임병은 고민에 빠진다. 소위 '빡세게' 굴려서 단시간에 성과를 끌어올릴 것인가 아니면 자신이 한 번 안 좋은 소리(또는 행동)를 듣고 말 것인가 하는 고민에 말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위에서는 각종 행사나 훈련 등에 있어서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과'만을 요구한다.

그 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충분한 훈련 시간이나 심도있는 대화나 생활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러한 '충분한' 시간이나 준비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한되어 있는 시간 속에서 수많은 일들을 동시에 해야 하기에 이러한 모순은 더욱 커져만 간다.

솔직히 말해서 웃으면서 말하는 사람과 욕하면서 때리는 사람 가운데 누가 더 무서운가? 열에 아홉은 욕하면서 때리는 사람을 무서워하고, 결국 두 사람 가운데 후자가 하는 훈련과 준비가 단시간에 더 높은 성과를 이루어내는 것이 진실이다. 군 내부에서의 인권유린 및 불평등한 군대문화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진 최근에 들어서 상부로부터 내려오는 지시 사항들은 많아져만 가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인원과 시간은 너무나도 제한되어 있다.

당연히 간부들은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서 선임병들의 역할을 요구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 한쪽으로는 병영문화 개선을 외치면서, 한편으로는 군대 기강해이를 말한다. 그 가운데에서 치이는 것은 소위 말하는 선임병이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후임병을 비롯한 모두에게 돌아간다.

인간의 가치는 무한히 소중하다. 그 인간이 가지는 권리 역시 어디에서든지 지켜지고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다. 군복을 입고 있는 군인 역시 이러한 가치와 권리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상명하복'이라는 절대적인 원칙 속에서 이러한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존재할 수밖에 없다.

실제 예하부대에서 벌어지는 이런 문제점들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은 채, 저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던지는 지시들이 가져 올 문제들에 대한 고려는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 지시들을 이행함에 있어서 담당해야 할 일들을 다하지 않은 채 아랫사람에게 떠넘기고 방치하는 일부 간부들 역시 존재한다.

선임병들의 기득권은 분명 존재한다. 그리고 때때로 그것들은 매우 불합리한 형태를 가지기도 하고, 악의적인 형태로 변질되기도 한다. 분명 그것들은 없어져야 한다. 하지만 그 기득권들의 형성배경 속에는 위에서 말한 것들이 뿌리내리고 있다.

단순히 선임병들의 악의적인 기득권을 문제의 본질로 말하는 것은 이러한 뿌리를 애써 외면하고 있거나 아니면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사단장이 한 마디 하면 산 하나도 옮겨간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없다면 오늘 병사들에게 물어보아라.

마지막으로 앞으로 군입대를 하게 될 예비 군인들과 현재 군복무를 하고 있는 사병들에게 한 마디를 더한다. 군대라는 곳은 특수한 곳이다. 하지만 그 곳 역시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단순히 2년이라는 시간을 그 곳에서 허비할 생각으로 의욕없이 지내기보다는 그 속에서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 보고,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에 대해서 좀 더 노력하고 자신을 단련했으면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군복무를 무사히 마치고 건강한 몸으로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들 곁으로 돌아갈 수 있길 바란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