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7일 국내증시가 코스피(KOSPI)지수 기준으로 1142.99포인트를 찍으며 마감하는 등 역사적 신고가를 경신하면서 15년 간 지속한 500~1천포인트의 장기 박스권을 '대탈출'할 것이라는 기대가 강화되는 가운데 증권거래소에서 직원들이 최고가 갱신을 축하하며 꽃가루를 뿌리면서 즐거워하고 있다.
ⓒ 연합뉴스 최재구
국내 증권사에서 비관론이 사라지고 있다.

종합주가지수가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역사적 최고점을 돌파한 뒤 연일 무섭게 솟아오르고 있다. 증권사 애널리스들은 이에 질세라 낙관적 전망만을 쏟아내는 모습이다. 그 틈바구니에서 외롭게 싸워왔던 비관론자들도 속속 낙관론에 백기를 들고 투항하고 있다.

국내 주식시장에서 '마지막 비관론자'로 불려온 유동원 씨티글로벌마켓증권 상무는 지난 9일 보고서를 통해 "종합주가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돌파함에 따라 연말 지수 목표치를 1000포인트에서 1065포인트로 상향조정한다"고 밝혔다.

'마지막 비관론자' 유동원 상무도 한발 물러서

"국내 기업들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이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주가지수 1000포인트는 과도한 수준"이라는 의견을 고수해온 그로서는 한 발 물러선 셈이다. 그는 "(그래도) 비관적인 시각을 고수한다"는 말로 여전히 '큰 틀에서의 변화'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시장은 이미 이를 투항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이처럼 대표적 비관론자인 유동원 상무마저 목표주가를 올려 잡으면서 이 땅에 비관론자가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이미 올해 초 또 한 명의 대표적 비관론자인 교보증권의 임송학 이사가 "주가예측에 오류가 있었다"고 스스로 고백하며 낙관론 앞에서 두 손을 든 바 있다. 그는 지난해 말 "국내 경제에 수출·내수 부진 등 악재가 산적해 있다"며 올해 종합주가지수를 700~950으로 제시했었다. 그러나 연초부터 무섭게 치솟은 주가는 그를 결국 리서치센터장에서 연구위원으로 강등시켰다.

'소신파' 임송학 센터장, 연구위원으로 강등

특히 그는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으로 일할 때 '소신파' 전략가로 이름을 날리던 터라 당시 증권가에 몰고 온 충격은 예상보다 컸다. 지난해 상반기 종합주가지수가 900선을 넘으며 강세를 보였을 당시에도 '중국 쇼크'를 일관되게 주장해 주가를 정확하게 예측했던 그가 아니던가.

안타까운 점은 이 같은 현상이 국내에서만 벌어지는 일이라는 데 있다. 유동원 상무는 "기본적으로 애널리스트에 대한 평가는 정확한 주가예측이 아니라 그가 제시하는 논리적 근거가 얼마나 설득력이 있느냐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국내 시장에서는 논리적 근거의 타당성과는 상관없이 오로지 숫자만 맞추면 인정을 받는 구조"라고 덧붙였다.

주가가 장기 박스권에 갇혀 있었던 1~2년 전만해도 주변에서 '소신 있는' 애널리스트를 쉽게 찾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전부 자취를 감췄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한 증권사 관계자는 "국내 증권사들은 리서치부서를 지나치게 영업부서와 연결시키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리서치부서에서 내놓는 자료가 곧 일선 영업점에서 고객 지원자료로 쓰이는데, 비관론 일색의 자료로 어떻게 고객을 대할 수 있겠느냐"고 덧붙였다. 일면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애널리스트들, 점쟁이가 되려는 것이 문제"

리서치센터의 사관학교로 불리는 대우증권에서 국내 제1호 애널리스트로 시작해 리서치센터장까지 오른 하상주 가치투자교실 대표. 그가 과거 리서치센터장 시절 반드시 부하 직원들에게 요구한 것은 "점쟁이가 되려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하 대표는 당시 직원들이 보고서를 작성할 때 이것만은 꼭 지키도록 했다. 예컨대 그는 보고서에서 예상 종합주가지수를 935, 1023 등 일단위까지 표시해 놓은 경우 호통을 치고 보고서를 다시 작성하도록 지시했다.

당시만 해도 증권사간 리서치부문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서로 정확한 주가예측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려 했다. 그러다보니 젊은 애널리스트들 사이에서 '내가 더 세심하게 예측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앞 다퉈 일단위까지 표시했던 것.

이에 대해 하상주 대표는 "애널리스트는 현재의 여러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여건들을 종합적으로 바라보고 미래의 경제 상황을 판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지 그 안에서 주가지수 예측은 곁가지에 불과할 뿐"이라고 말했다.

"주가예측에만 열을 올린다면 숫자놀음일뿐"

그는 "전부 주가지수 예측에만 열을 올린다면 애널리스트가 하는 일이란 숫자놀음밖에 되지 않는다"며 "그러나 요즘 젊은 애널리스트들을 보면 자꾸 점쟁이가 돼 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아무리 낙관론이 국내 증시를 지배한다고 해도 새로 주식투자를 시작하려는 개인투자자 입장에서는 빨갛게 달아오른 객장의 시황판만을 쳐다보면 여전히 머뭇거려진다.

"어디에 투자하지? 밑천은 얼마나 필요할까? 수익은 어느 정도일까?" 오를지, 아니면 내릴지, 신도 알지 못한다는 주식시장에 증권사가 쏟아내는 낙관론 일색의 전망만을 믿고 뛰어들기에는 아직 용기가 없다.

비관론이 사라져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