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낙엽이 쌓이듯 발자국만 가득 남아있는 가을 바닷가
ⓒ 최성민
가을바다는 호젓함 그 자체다. 낙엽 지는 산만 쓸쓸한 게 아니다. 수많은 발자국들만 뒤섞여 속삭이는 백사장은 낙엽 흩날리는 오솔길 보다 더 쓸쓸하다. 가을바다에서는 모든 게 외로워 보인다. 먼 수평선에 일직선을 그으며 홀로 허우적대는 무역선의 모습도 그렇다.

이때야말로 도시의 번잡을 피해 여행길에 올라볼만하다. 호젓함이 가득한 바닷가 쪽으로…. 리아스식 해안으로 이름 높은 서해안은 어딜 가나 호젓함이 가득 쌓여있다. 전남 함평-무안 바닷가는 들고 남이 어찌나 어지러운지 비행기로 내려다보면서 그림을 그릴지라도 해안선이 헷갈릴 정도다. 해안선의 오목 볼록이 심하다는 것은 해안 풍치가 수려하고, 갯벌이 넓고, 먹이를 구하거나 알 낳으러 찾아드는 고기들이 많다는 내용으로 이어진다. 볼록한 해안선은 파도를 막아주고 오목한 곳엔 주변 산에서 흙이 흘러내려 갯벌로 쌓인다. 그런 곳은 물이 들면 호수처럼 잔잔하고 갯벌 플랑크톤과 해조가 많아 조개과 고기들의 삶터가 된다.

▲ 함평 돌머리해수욕장에 마련된 갯벌체험학습장 밀물관찰구역으로 밀물이 밀려들고 있다.
ⓒ 최성민
'함평천지'라는 말은 넓은 들을 상징하지만 그들의 상당부분은 갯벌을 막아 이룬 것이다. 함평의 바닷가에 돌머리해수욕장이 있다. 요즘 이곳은 적잖은 돈을 들여 친환경적으로 잘 손질해 놓았다. 모래밭 주변에 여느 해변과는 달리 황톳길을 둘렀고 백사장 귀퉁이 곳곳엔 원두막을 세웠다. 원두막 앞 넓은 갯벌 한쪽엔 대나무 울타리를 쳐서 경계를 만들고 한쪽은 깊게 파 놓았다. 물이 들대 대나무 울타리 너머로 폭포수처럼 흘러들게 해서 밀물 썰물의 드나듦을 한 눈에 체험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 이 무렵 갯벌이 있는 어느 해안에서나 잘 낚이는 운저리(문절망둑).
ⓒ 최성민
▲ 돌머리해수욕장은 아낙네들까지 나선 운저리낚시터이다. 낚시꾼들이 운저리를 잡은 즉시 회를 치고 있다.
ⓒ 최성민
돌머리 원두막에서 요즘 가을 낚시꾼들이 호젓함을 낚고 있다. 그 호젓함을 미끼로 오인해 낚여 올라오는 것은 망둥이들이다. 남쪽에서는 망둥이를 운저리라고 한다. 이 운저리라는 고기는 가을 바닷가에서 없어서는 안 될 요소이다. 먹성이 좋아서 따로 정해진 미끼가 없이 제 살을 떼어 넣어도 잘 물고 늘어진다. 한 시간에 10~20마리의 팔뚝만한 몸집들이 들어 올려진다. 툭툭 채다가 찍 끌어당겨 물고 도망가려 하는 순간에 여지없이 걸려든다. 그 순간포착과 달아나는 힘을 역이용해서 되치기 하는 손맛이 운저리낚시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맛이다.

채비가 간단하고(낚싯대와 미끼로 갯지렁이나 새우, 돼지비계 정도만 있으면 된다) 바닷가 백사장이나 갯바위에서 할 수 있어 여성들도 즐긴다. 단, 앞에 갯벌이 발달한 곳이 좋다. 그리고 밀물 때 물이 들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만조에 이를 때까지 잘 물고, 썰물로 바뀌는 순간 입질 딱 끊어진다. 물이 빠져나가는 것을 본능적으로 미리 감지하고 한 발 앞서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잡은 운저리는 현장에서 회를 떠서 먹기도 하고, 고추와 양파를 썰어 넣어 조림을 하거나 바짝 말렸다가 겨울에 구워 먹기도 한다.

▲ 돌머리해수욕장가에 마련된 원두막.
ⓒ 최성민
▲ 함평 해변에 들어선 펜션.
ⓒ 최성민
돌머리해수욕장 주변은 황토밭이다. 끝간 데 없이 황토밭이 펼쳐지는 벌판 끄트머리, 호수 같은 바다가 한 눈에 보이는 곳마다 그림 같은 민박 전원주택들이 들어서 있다. 방 하나 가족단위 1박에 4만원 안팎이다. 반찬거리는 주변에서 직접 잡거나 살 수 있는 운저리나 뻘낙지 등이 될 것이다.

함평 바닷가는 가까이에 있는 해제-무안쪽으로 이어진다. 계절의 분위기에 맞춰 이름 없는 어촌에 걸음을 내렸다. 굳이 이름을 알아보니 어디에나 흔한 '남촌'이라는 곳이었다. 마을 끝 바닷가에는 '도로 끝'이라는 표지가 크게 서 있다. 호젓함에 너무 취한 나머지 가속기를 밟아 바다로 돌진할지도 모르는 위험을 막기 위한 것일까? 그물이 산더미처럼 쌓인 부둣가에 어부 서넛이 새우 그물을 꿰매며 정부의 수산정책을 질타하고 있다. 남촌 어귀엔 저녁 해가 긴 여운을 남기며 기울고 있는데, 바다 한가운데 작은 바위섬에 묘비가 서 있다. 누군가 고기잡이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넋을 기리는 가족과 후손들의 염원일 것이다.

▲ 무안 남촌 마을 앞 작은 바위섬에 서 있는 어느 망자를 위한 비석 너머로 가을 해가 지고 있다.
ⓒ 최성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한겨레신문 창간발의인, 문화부 기자, 여론매체부장, 논설위원 역임. 곡성 산절로야생다원 대표. (사)남도정통제다다도보존연구소 소장. 철학박사(서울대 교육학과, 성균관대 대학원 동양철학과)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