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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들과 함께 한 홍콩에서 9박 10일. 더 이상 가슴에 묻어둘 수 없다. 눈물과 웃음이, 투쟁과 놀이가, 세계 민중들과 어깨 걸고 진행된 홍콩의 생생한 기록을 10회에 걸쳐 연재한다.

▲ 상여를 메고 참가한 외국 대표단
ⓒ 오도엽

▲ 대만에서 온 참가단이 한국의 '동지가'를 율동과 함께 부르고 있다.
ⓒ 오도엽
아침부터 분주하다. 전북지역 농민들은 홍콩 현지에서 즉석으로 풍물패를 꾸렸다. 꽹과리에 맞춰 북 장단을 배운다. 이마에 'NO WTO'라고 적힌 머리띠를 묶고, 'WTO KILLS FARMERS'가 적힌 홍콩 투쟁단 조끼를 입고 출정을 준비한다. 홍콩 거리로 나서는 첫 날 12월 13일.

▲ 현지에서 꾸려진 전북지역 풍물패. 홍콩 거리로 첫 걸음을 내딛는다.
ⓒ 오도엽
집회 장소인 빅토리아 공원 앞 거리는 사람이 별로 없다. 농민들이 버스에서 내려 빅토리아 공원으로 행진하는 동안 마주친 홍콩 시민들의 표정은 굳어 있다. 애써 행진 행렬에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경계심과 거리감을 두며 힐끗 쳐다본다.

집회장에 들어서자 분위기는 확 바뀐다. 벌써 세계 각국의 WTO 반대 투쟁단이 와 있다. 피부 색깔도, 언어도, 깃발도, 구호도 다양하다. 각 나라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강대국 중심의 단일한 세계무역체제를 만들려는 것이 WTO다. 이를 반대하는 세계민중들이 빅토리아 공원에 모여 다양한 모습으로 WTO를 반대하고 있다.

▲ 'DOWN DOWN WTO'를 외치는 외국 참가단
ⓒ 오도엽
오전 10시에 시작될 '한국민중투쟁단 투쟁선포식'에 세계 언론들의 카메라가 집중되고 있다. 집회 단상은 기자들로 점령되었다.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이 집회장 가운데에 옥색 두루마기를 입고 눈을 감은 채 정좌를 하고 있다.

집회에서 강 의원은 "WTO는 강대국 소수에게 희망을 줄지 모르지만 다수의 세계 민중에겐 고통과 눈물을 가져다 줄 뿐"이라며 "각료회의의 헛된 꿈을 깨고 진정한 인류의 행복과 평화의 세상을 열자"고 연대의 말을 했다.

▲ 홍콩에는 전 세계 민중들이 함께 했다.
ⓒ 오도엽
이어 열린 '비아 캄페시나 국제 농민 결의대회'에서는 각국 참가자들이 나와 자국의 농업 현실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인도네시아 참가단은 "WTO는 각 나라의 주권을 침범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WTO의 의사 결정권자는 인권을 침범하는 범죄자"라고 규탄을 했다.

▲ 경찰과 대치하는 시간보다 다양한 형태로 WTO에 항의를 하는 시간이 많았다.
ⓒ 오도엽
태국 참가단은 "이경해 열사의 죽음은 한국 농민을 위한 희생만이 아니라 전 세계 농민을 위한 숭고한 희생이었다"며 칸쿤에서 돌아가신 이경해 열사를 추모하는 시간을 갖자고 제안을 했다. 이어 "WTO라는 농민들의 피를 빨아먹는 악마를 퇴치하기 위해 전 세계 민중이 단결하자"라고 호소했다.

브라질 참가단은 WTO 10년 동안 브라질에서 100만 농가가 농촌에서 쫓겨났다고 고발하며 'DIE WTO'를 외쳤다.

일본에서 온 가족농 연합은 가업을 물려받아 농사를 짓는 가족농이라고 소개하며 "일본도 WTO로 가족농이 어려워졌다"며 WTO는 개도국 농민만이 아니라 전 세계 농민을 괴롭히고 있다고 주장했다.

▲ 피부 색깔, 언어, 대륙을 달리해도 마음은 하나
ⓒ 오도엽
유럽을 대표해 참가한 스페인 대표단은 "WTO는 농업만이 아니라 각 국의 문화와 미래마저 죽이고 있다"며 "WTO가 있는 한 우리에겐 미래가 없다"면서 연대하여 투쟁할 것을 제안했다.

인도 참가단은 "6억5천만이 농민이다. 인도와 같은 개도국에서 농업은 교역의 품목이 아니리라 생명이고 문화이자 생존의 기반이다"며 "WTO는 자유 무역 미명 아래 문화를 파괴하고, 땅을 파괴하고 있다.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라도 WTO를 파괴하자"고 해 박수를 받았다.

▲ 일본 가족농 연합에서 참가한 농민들
ⓒ 오도엽
경남 하동에서 온 농민은 집회를 보며 "WTO는 한국만이 아니라, 개발도상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 민중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는 걸 알았다"며 "세계 민중들이 연대해서 싸워야겠다는 걸 깨우치게 해줬다"고 말했다.

▲ 언론에선 한국농민만을 다뤘지만, 홍콩 집회장엔 세계의 민중이 참여 수를 떠나 함께 어깨동무를 했다.
ⓒ 오도엽
하지만 수많이 찾아 온 기자들은 다른 참가단의 목소리엔 큰 관심이 없다. 오로지 한국 농민들이 집회 뒤 있을 행진에서 어떤 모습을 보일까에 신경을 집중한다. 9박 10일 동안 농민들과 함께 하며 전 세계 언론에 가장 아쉬웠던 부분이다. 한국 농민 참가단의 규모와 행동만 알리고, 왜 전 세계 농민들이 홍콩에 모였는지는 보여주지 않는가? 이번 홍콩 각료회의 저지 투쟁은 한국 농민만이 아닌 전 세계 민중들의 투쟁이었는데….

▲ 방독면과 헬멧을 달고 다니는 기자들. 기자들의 관심은 한국 농민들의 폭력을 확인하는데 집중되고 있다.
ⓒ 오도엽
집회가 끝나자 참가자들은 각료회의가 열린 컨벤션 센터까지 거리 행진을 하려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기자들의 가방에는 방독 마스크와 안전 헬멧이 달려있다.

덧붙이는 글 | 인터넷 신문 '참말로'에도 함께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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