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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쉽게 만나고 소비하는 것들일수록 그것의 원재료가 무언지, 어떤 과정을 거쳐 완제품이 되는지에 관해서는 무심히 넘어가는 경우가 흔하다. 반면 공정에 대한 궁금증을 가진 이들도 적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하는 친숙한 제품의 탄생에서 소멸까지를 직접 제품의 입장이 되어 1인칭 화법으로 서술해보았다. 기획 열 번째 기사는 설탕이다. <편집자주>
ⓒ CJ 제공

"퐁당!"

심청이 인당수에 몸 던지는 소리냐고? 틀렸다. 이 소리는 서른 다섯 노총각 봉철이가 커피에 나를 던져넣는 소리다. 바로 어젯밤 봉철은 전설적 발레리나 마고트 폰테인을 닮은 아름다운 인영에게 청혼했고, 그녀의 수락을 받아냈다.

"나는 아무 것도 원하지 않는다, 너 외에는. 나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네가 사라지는 것 말고는. 네가 없다면 내 자유 따위가 무슨 소용일까"라며 희랍 소설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까지 인용했던 프로포즈.

일년 남짓 줄곧 매달리기만 했던 힘겨운 연애가 끝나고 봄이면 인영과 같이 먹고 함께 자게 될 봉철은 출근한 이후 오전 내내 입이 귀에 걸려있었다.

고조된 감정 탓일까? 점심식사 후 커피를 마실 때면 늘상 나를 두 조각 넣었지만, 오늘은 한 조각만 넣어 스푼으로 젓는다. 사랑에 빠진 자에겐 꿀과 설탕이 필요없다. 내가 주는 달콤함을 어찌 사랑이 주는 달콤함에 비하겠는가. 나 '(각)설탕'의 입장에선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 조상이 태어난 것은 예수가 이 땅에 오기 400여년 전인 기원전 4세기다. 최초의 생산국은 인도. BC 327년 인도를 침공한 알렉산더의 부하 네아르쿠스 장군은 내 선조를 보고 경악했다. "대체 벌의 도움 없이 갈대의 줄기만으로 어떻게 이 달콤한 꿀을 만드는 것인가?" 그는 설탕과 꿀을 구별하지 못했던 것이다.

자그마치 240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우리 집안의 내력. 이제부터 그 지난한 시간 속에서 나와 내 조상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려 한다. 벌써부터 궁금증과 기대감에 설레지 않는가?

실크로드만 있는 게 아니다... '슈거로드'도 있다

내 원료가 되는 것은 사탕수수다. 벼과 다년초 식물인 사탕수수는 쿠바, 태국, 오스트레일리아 등 연평균 기온이 영상 20도 이상인 아열대 지역에서 재배된다. 최초의 재배지역은 태평양 뉴기니섬. 여기서 솔로몬 제도와 뉴칼레도니아로 전파됐고, 기원전 6천년 경 인도에 들어갔고, 여기에서 설탕이 처음으로 만들어진다.

인도에서 중국으로 전해진 설탕은 다시 페르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들어가는데 이 때가 8세기경이다. 이후 아메리카 대륙에 사탕수수를 심어 내 조상을 생산하게 한 사람은 호오(好惡)의 평가가 엇갈리는 콜럼버스.

인도→중국→페르시아→유럽→아메리카로 이어지는 내 조상들의 이동경로는 실크로드보다 더 멀고 험한 '슈거로드'라 이름 붙여도 무방할 듯하다. 16세기까지만 해도 유럽의 내 선조들은 금보다 귀한 대접을 받았다. 당시 설탕은 감미료가 아닌 의약품으로 대접받았고, 내 선조를 1.5kg 구하려면 소 한 마리 값을 내야했다.

사탕수수와 함께 나의 원료가 되는 사탕무. 사탕무로 내 선조를 만들 수 있는 기반을 닦은 사람은 17세기 화학자 마르그라프다. 사탕무를 원료로 해 대규모 설탕제조가 이루어진 건 1801년이니, 사탕무는 사탕수수의 새까만 손자뻘이다.

내 조상이 한국에 들어온 건 삼국시대로 추정된다. 이는 한국인이 유럽사람들보다 먼저 내 맛을 봤다는 이야기. 나에 관한 최초의 문헌기록은 고려 명종 때의 학자 이인로가 쓴 <파한집(破閑集)>에 남아있다.

유럽과 마찬가지로 도입 초기 나는 후추와 함께 대단히 귀한 물건으로 취급됐다. 비싼 가격 탓에 귀족층이나 조금씩 맛볼 수 있었기에 평민이나 노비들은 단맛을 원할 때 나 대신 엿이나 조청을 먹었다.

자, 간략히 정리한 내 역사가 이해되셨는가? 그럼 이젠 각국의 내 소비량을 알아볼 차례다.

세계에서 나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는 싱가포르다. 그 나라 사람 한 명은 연평균 75kg의 나를 먹는다. 세계 평균소비량 22kg의 3배가 넘는 수치고, 쌀 한 가마니에 육박하는 엄청난 양이다. 쿠바(60kg), 이스라엘(59kg), 브라질(58kg), 뉴질랜드(56kg) 사람들도 단맛에 중독돼 있다.

한국사람은 세계평균보다 조금 많은 23.7kg, 일본인은 이보다 적은 18.9kg을 먹는다. 나는 기온이 찬 곳에서 더 강한 단맛을 내는데 추운 지역 사람들이 그들이 마시는 차에 많은 양의 나를 넣는 건 열량의 섭취와 함께 오랜 시간 익숙해진 달콤함의 마술(?)에 매료돼있기 때문이란다.

1950년대 설탕공장 모습.
1950년대 설탕공장 모습. ⓒ CJ 제공
백설탕과 흑설탕, 색깔의 차이는 어디에서?

'인류 최초의 천연감미료'로 불리는 내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지 궁금해 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사탕수수를 베어내 즙을 짠 후 불순물을 걸러내는 과정을 거쳐 이를 끓이면서 증발통을 거치게 하면 결정이 된다. 이 결정을 원심분리기로 분리하면 원료당이 되고, 한국에선 이 원료당을 수입해 나를 만든다.

국내에 들어온 원료당은 불순물을 씻어내는 세당 공정과 숯을 통해 불순물을 걸러내는 정제공정, 정제된 당액을 진공결정관에 넣어 농축시키는 결정화 공정 등을 차례로 거친다.

그 다음이 분리 공정. 여기서는 결정화된 덩어리의 표면을 물로 씻어, 다시 결정화와 분리 과정을 거친다. 이런 적지 않은 공정을 통해 생겨나는 게 짙은 갈색의 원당이다. 내 색깔이 흰색이냐 노란색이냐 진갈색이냐로 결정되는 건 이후 진행될 정제 공정이 좌우한다.

정제한 정도에 따라 하얀색의 나를 정백당, 노란색의 나를 중백당, 진갈색의 나를 삼온당이라 부른다. 정제를 많이 한 정백당은 다른 식품과 잘 섞이는데 이 때문에 요리를 할 때는 하얀색의 나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정제 공정까지 마친 나와 내 친구들은 건조 공정을 거쳐 용처에 맞도록 규격화되어 포장된다. 나같은 각설탕은 정제당을 육면체 모양으로 성형한 후 섭씨 60도 정도의 건조실에서 10시간 가량 뜨거운 바람을 쏘이는 공정이 추가돼 탄생한 것이다.

설탕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담은 사진.
설탕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담은 사진. ⓒ CJ 제공
여기서 단 100g의 몸무게 증가에도 민감한 '다이어트 마니아'들을 위해 정보 한 가지. 과도한 나의 섭취가 비만의 한 원인이란 건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입증된 사실. 살을 빼기 위해 밥 대신 과일로 한끼 식사를 대신하는 여성들이 적지 않은데, 과일마다 함유된 당분이 천차만별이다.

바나나가 함유한 나의 양은 16.2%. 16.1%인 포도와 수위를 다툰다. 사과(13.3%)와 복숭아(12.7%)에 들어있는 내 양 또한 만만찮다. 과일 중에서는 수박(5.3%)과 딸기(6.6%)가 비교적 제 몸 속에 나를 덜 포함하고 있다. 채소의 경우 내 함유량이 과일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데 그 중에서도 양배추(2.9%)와 토마토(2.7%)가 가장 낮다.

1963년 설탕파동, 보너스로 나를 주는 회사도 있었다

이번에는 내 시장규모를 공부할 차례다. 2004년 식품연감에 따르면 연간 내 생산량은 131만톤. 이중 내수용이 87만톤이고, 나머지는 수출된다.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5180억원. 이 중 하얀색의 내가 85%를 차지한다.

나를 생산하는 국내업체로는 CJ와 삼양사, 대한제당 등이 있는데 점유율은 CJ가 50%,로 1위. 삼양사와 대한제당이 각각 30%와 20%의 시장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내 아버지가 들려준 가장 '무서운 추억'을 들려주는 것으로 이야기를 정리해야겠다.

1961년 당시 연간 3천만톤의 원당을 수출하던 사탕수수 최대 생산국 쿠바가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에 원당 수출을 중지한다는 선언을 하자 가격이 폭등한다. 여기에 악재가 겹쳐 그해 유럽에서는 사탕무 재배가 최악의 흉작을 기록했다.

그런 상황이었으니 원당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건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일. 미국에서는 나를 사재기하는 열풍이 분다. 이 여파는 1963년 한국에도 밀어닥치는데 이른바 '1963년 설탕파동'이다.

내가 투기대상이 됐고, 시내 직매소와 대리점은 물론 조그만 구멍가게 앞까지 나를 사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섰다. 주부들은 곗돈을 타 남편 몰래 나를 왕창 구입해 다락과 주방에 쌓아두었고, 어떤 회사는 보너스 대신 나를 지급하기도 하는 웃지 못할 사태까지 생겼다.

현재 오십을 넘긴 사람들은 그 때를 '석유파동'에 필적하는 혼란기로 기억한다. 하지만, 이것도 이젠 지나간 추억. 쓴 웃음 한 조각으로 당시를 떠올리는 건 흐르는 시간이 그 상처를 많은 부분 지워주었기 때문이리라.

오염도 부패도 없는 나, 설탕에는 유통기한이 없다

봉철은 오늘 밤 인영을 자신의 오피스텔로 불러 록그룹 딥 퍼플과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함께 연주한 '에이프릴(April)'을 들으며 자신의 심장처럼 붉은 루비반지를 끼워줄 생각이다. 4월 결혼식과 변치 않는 사랑을 약속하며.

나 설탕에게는 유통기간이란 게 없다. 식품위생법도 나를 유통기한 표시 생략제품으로 규정한다. 수분활성도가 낮아 세균에 오염되거나, 부패될 우려가 없기 때문이다. 봉철이 인영에게 약속한 사랑 역시 유통기한 없이 오래오래 지속되기를.

설탕은 건강을 해치는 악당이다?
달콤함을 둘러싼 몇 가지 오해와 진실

뿌리치기 힘든 달콤함의 유혹과 해악에 대한 걱정을 제 몸 안에 동시에 담고 있는 까닭일까? 설탕은 인간들의 사랑과 멸시를 동시에 받아왔다. 과도한 설탕 섭취가 각종 성인병의 원인이라는 지적도 이미 오래 전부터 제기됐다.

설탕은 높은 열량으로 인해 비만의 주범으로 지목받고 있다. 하지만, 이건 설탕만이 아니라 모든 음식에 해당되는 이야기. 몸으로 들어온 칼로리를 운동으로 소비하지 못할 땐 설탕만이 아니라 다른 음식에 의한 칼로리 섭취도 몸무게를 늘어나게 한다. 다만, 이미 비만 체질인 사람은 설탕의 과다섭취를 주의할 필요가 있다.

설탕은 당뇨를 부르는 것으로도 오해되고 있지만, 이는 의학적으로 검증된 바가 없다. 그러나, 당뇨병 환자는 설탕은 물론, 꿀과 조청 등의 당류섭취에 항상 주의해야 한다.

충치 역시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 체질 등에 의해 발생한다. 설탕은 이중 한 요인을 제공하는데 불과하다. 하지만, 이(齒)를 상하게 만드는 바이러스가 당류를 먹고 자란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치아건강을 위해서 설탕 섭취를 적절히 조절하는 게 좋다.

설탕은 커피 등 차의 풍미를 더해준다.
설탕은 커피 등 차의 풍미를 더해준다. ⓒ CJ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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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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