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 보면 너무나 평범한 집이다. 방이 3개고 마루가 있고 화장실이 있는 30평대의 연립. 그런데 이 곳에는 부엌이 없다. 정확하게 말해 화기(火氣)가 없다. 그리고 각각의 방과 화장실의 문을 안이 아닌 밖에서 잠그도록 만들었다.
일반적인 집과는 구조가 다른 이 곳은 세종장애아동후원회(경기도 안양시 호계동 소재, 이하 세종)의 그룹홈. 현관 문에는 '사회통합의 꿈을 실현하는 희망의 집'이란 문구가 걸려있다.
그룹홈은 이 곳에 거주하는 자폐아들의 특성에 맞춰 특수하게 설계됐다. 자해를 하거나 손에 잡히는 것을 모두 던져버리곤 해서 시한폭탄 같은 자폐아에게 특수한 시설이 필요한 탓이다.
장애인 100명이 만드는 새로운 가족
영미(고2, 가명)는 그룹홈의 한 방에서 아이들과 함께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솜씨가 특별했다. 그의 스케치북 안에서 순정만화의 주인공들이 탄생하고 있었다. 영미의 꿈은 만화가.
그는 유사 자폐증세(정신지체)를 보이는 장애인이다. 아이큐가 60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세종에서 치료와 교육을 받으면서 많이 달라졌다. 이 곳에 다닌 지 1년 6개월 정도 됐지만 표가 나게 좋아졌다.
무엇보다 사회성이 향상됐고 안정을 찾았다. 예전에는 시도 때도 없이 자기가 그리고 싶은 그림만 그렸는데 때와 장소를 가릴 줄 알게 됐고, 상황에 맞는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바뀌고 있다.
영미는 만화실력을 발휘해 세종에서 카드제작을 전담하고 있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세종에서 교육과 치료를 받고, 저녁에는 애니메이션 학원에 나가서 만화 실력을 향상시키고 있다.
방대진(36) 세종 사무국장은 "그림 그리는 실력이 남다르다고 판단해서 애니메이션 학원에서 상담을 받았다"면서 "재능이 있다는 의견을 듣고, 부모님과 상의해 학원에 보내게 됐다"고 설명했다.
세종에서는 영미같은 장애아동과 청소년 100여명이 치료와 교육을 받고 있다. 그 덕에 장애아동 때문에 늘 가슴졸이며 사는 가족들은 한 시름을 놓고 살고 있다. 세종은 장애아동과 가족지원 시스템 구축을 체계적으로 준비해 사회적 기업으로의 전환을 계획하고 있다.
지역주민 반대 딛고 그룹 홈 마련
세종은 이용자 대부분이 저소득 가정이다. 지역 복지관의 경우 조건도 까다로울 뿐 아니라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이를 좇아갈 수 없는 탓이다.
현재는 ▲장애아동 통합 차량운영(월4만원)▲장애아동 방과 후 지도(월17만 5000원)▲주간보호센터(월15만원) ▲보호작업장(무료-수익금 예치)▲단기보호 센터(월15만원)를 운영하고 있다.
| | | 세종이 '노동부' 팔아먹은 이유 | | | | 세종 교육실 건물 앞에는 '노동부 선정 사회적 일자리 창출 우수 사업장'이라는 플라스틱 간판이 붙어있다. 실제로 세종은 올 1월 사회적 일자리 창출 사업으로 노동부 장관상까지 수상했지만 이 간판은 노동부에서 달아준 것이 아니다.
방대진 사무국장은 "솔직히 저 간판은 우리가 직접 만들어서 붙인 것"이라고 말했다. 직접 간판까지 만들어 붙인 이유는 동네 주민들이 "장애인들이 너무 많이 왔다갔다 한다"고 시청으로 민원을 넣기 때문.
"노동부라는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우수 사업장로 인정해 줬다는 것을 확인해야 지역 주민들도 이해하고 , 아이들 보내는 학부모들도 인정을 해주더군요."
방 사무국장은 "노동부의 인증서라도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면서 "공신력있는 곳이라는 신뢰를 보여줄 수 있는 수단이 너무 부족하다"고 아쉬움을 표시했다. 그는 또한 "세제 혜택 등의 다양한 지원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보육ㆍ간병ㆍ가정도우미 등 사회적 서비스 업무를 수행하는 사회적 기업에 세제 혜택이나 재정지원, 인증서 발급 등의 내용을 담은 '사회적 기업지원법'을 4월 임시국회에서 제정할 방침이다. / 박수원 | | | | |
이용자로부터 서비스에 따른 운영비를 받고있지만, 이용자의 상당수가 저소득층 가정이라 이용료는 높게 책정하지 못하고 있다. 총 재정 가운데 정부지원이 46,3%, 후원금이 17.3%, 이용료와 수익이 36.4%를 차지하고 있으며, 1년 예산은 2억 3000만원 정도 된다.
세종 운영책임자이자 사무국장인 방대진씨는 대학에서 특수체육을 전공했다. 사고 때문에 운동을 그만 둔 경험을 가진 그는 대학 때 아르바이트로 장애인 치료교실을 운영했던 것이 인연이 돼 여기까지 왔다.
97년 장애아 부모들과 지역 사업체사장 등의 도움으로 '세종장애아동후원회'를 꾸리면서 본격적으로 이 일에 발을 담갔다. 후원인 15명이 지금은 300명으로 늘어났고, 그 동안 지역 시민단체들과 지자체의 도움을 얻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체계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2003년 3층으로 구성된 이용시설을 확보하면서부터다. 체육실, 교육실,조리실, 작업실 등을 마련해 교육과 치료 프로그램을 좀 더 짜임새 있게 만들었다.
어려움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안양시 호계동 주변에 연립을 매입해 그룹홈 시설을 마련해 두었지만 장애인 시설이라는 것을 안 주변 주민들의 반대 때문에 1년 동안 사용하지 못했다.
오고싶다는 아이들은 늘어나는데...
2005년부터 노동부의 사회적 일자리 프로그램 지원을 받아 10명이 일하고 있으며, 올 1월에는 사회적 일자리 창출 사업으로 노동부 장관상까지 수상했다.
이렇게 성장하기까지는 방 사무국장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다. 그는 365일 하루도 쉬는 날이 없을 정도다. 단적인 예로 그는 지난해 사무실 있는 호계동을 벗어난 날이 단지 이틀에 불과하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도 눈을 뗄 수 없는 아이들이 그의 손길을 기다리는 탓이다.
"저라고 하기 싫을 때가 왜 없겠습니까? '오늘은 또 무슨 사고가 일어날까' 하는 생각에 잠자리에서 빠져 나오고 싶지 않은 때도 많죠. (웃음)"
자해하고 무조건 병을 던지고 차만 보면 돌진하던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건 그야말로 전쟁이다. 하지만 소외됐던 아이들이 웃음을 되찾고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방 사무국장은 힘을 얻는다.
그의 요즘 고민은 세종의 안정적 운영.
"오고 싶다는 아이들이 많은데 더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 이예요. 지금 선생님도 부족하고요. 노동부 사회적 일자리 프로그램으로 인건비(70만원 지원)를 일정 기간 지원을 받지만 한계가 있죠. 장애아 교육을 위해서는 전문가 선생님이 필요한데 월급은 적고 고민입니다."
세종에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공간이다. 지금의 4층 공간은 장애아들의 공간으로 쓰기엔 위험하기도 하고 민원도 자주 발생한다. 지원을 받기 위해서 민간 기업을 알아보기도 하지만, 개인이 움직이는데 한계가 많다.
"그런 부분을 체계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있었으면 해요. 사실 혼자 이것 저것 하려면 시간도 부족하고. 기업에서 쉽게 만나주지도 않고요. 운영과 관련해서 교육을 받는 기관이 있었으면 좋겠고요."
사실 세종은 뜻있는 후원인, 그리고 방대진 사무국장, 박봉이지만 헌신적으로 일하는 교사들이 있기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 장애아동과 가족 400명을 위한 사회적 서비스를 묵묵히 진행해 온 셈이다.
'사회통합의 꿈을 실현하는 희망의 집'. 세종의 실험이 돋보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 | "보람있는 일터지만, 계속 일할 수 있을지..." | | | [인터뷰] 세종에서 일하며 언어치료사 자격 취득한 고윤주씨 | | | |
| | ▲ 세종장애아동후원회에서 일하며 언어치료사 자격 취득한 고윤주씨 | ⓒ오마이뉴스 남소연 | 언어치료사 고윤주(30)씨는 세종에서 자신의 전망과 일을 찾았다. 그의 컴퓨터 바탕 화면에는 세종에서 치료와 교육을 받고 있는 장애 아동의 사진이 깔려 있다.
고씨는 2000년 대학을 졸업하고 사무직으로 일했다. 빵을 만드는 일을 하고 싶어서 잠시 직장을 그만뒀다가 여의치 않자 2001년부터 세종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2002년에는 자비를 들여서 대학원에 들어갔다. 사회 복지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공부를 병행해 언어치료사 자격도 취득했다. 모든 것이 장애아동 교육을 위한 필요 때문이었다.
"4년 일하면서 아이들과도 정이 많이 들고, 세종이 성장하는 것도 몸으로 느끼니까 보람이 있죠. 하지만 공인되지 않은 기관이라고, 사람들이 인정을 잘 안 해주는 것 같아 속상해요."
고윤주씨의 월급은 100만원이 조금 넘는다. 이 가운데 70만원은 노동부의 사회적 일자리 지원금이다. 고 씨는 박봉도 박봉이지만, 사회적 일자리 프로그램이 교육에 재투자할 수 있도록 정책이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야 지속형 사회적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더 좋은 조건의 직장도 있지만, 아직은 이 곳이 좋아요. 직장 동료들과 의사소통도 잘 이루어지고, 교육 운영도 최대한 자율성이 보장되고.
하지만 고민이지요. 30대 후반까지 이 곳에 있어야 하는지. 장애교육의 경우 계속 교육이 필요한데, 사비 털어가면서 교육 받기는 쉽지 않죠."
고씨는 무엇보다 장애 아동들이 변화되는 것을 느낄 때 보람을 느낀다. 특히 자기를 믿어주고 말 없이 다가와서 안아줄 때가 가장 행복하단다.
세종에는 노동부의 사회적 일자리 프로그램 지원을 받는 인력이 10명이 있다. 고윤주씨처럼 이 곳에 들어와서 자신의 전망을 찾은 사람들이 많다. 대학이나 대학원에 진학해 특수교사, 사회복지사, 사회체육지도사 등의 자격을 취득할 예정자가 고씨 이외에도 4명이나 더 있다.
사회적 일자리 도입 취지를 100%로 살린 이들이지만, 앞으로 세종에 계속 근무할 지는 미지수다. 교육과 재투자, 그리고 능력에 맞는 급여 보장 등 이들이 지속적으로 일하기 위한 과제가 아직 많기 때문이다. / 박수원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