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우리는 화개장터를 빠져 나와 섬진강변을 따라 걸었다.
"저 강이 섬진강이야, 삼촌 난 민물이 무서워?"
조카가 '민물'이 무섭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나는 '밀물'이 무섭다고 말한다고 생각했다. 조카는 바다에서 태어나 이제까지 자랐으니 썰물과 밀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고 지레 짐작했던 것이다. 다시 물어보니 조카는 정확히 민물이 무섭다고 했다.
"왜?"
"그냥 물색이 무서워."
"바다가 더 무섭지 않아?"
"바다는 별로…."
"그것은 네가 바다를 잘 알고 많이 접해서 그래. 민물도 바닷물과 같아. 무서워 할 것 없어."
사실 나는 민물은 무섭지 않았지만 바다는 무서웠다. 바다에 들어가면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가 나를 바다를 끌고 들어 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삼촌, 바다는 하나도 안 무서워."
"그것은 네가 바다에 살아서 그래? 매일 바다를 보고 있으니 바다가 무섭겠니?"
조카는 수긍하지 못했는지 민물이 무섭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은 것 같았다. 진안의 데미샘에서 출발한 섬진강은 진안과 임실, 순창, 남원, 곡성 그리고, 구례와 하동의 강처럼 순하고 소박한 지역만을 고루 고루 지나다가 광양의 망덕포구로 흘러서 바다와 만난다.
조카의 말처럼 바다는 무섭지 않고 민물이 무섭다면 어쩌면 바다도 민물을 무서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민물이 자꾸 차면 바다가 민물이 되어 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바다는 가끔씩 민물 때문에 떨지는 않을까?
"그래, 어쩌면 바다는 민물이 두려울지도 모르겠다."
"뭐라고 삼촌?"
"바다 말이야, 어쩌면 민물이 무서울지도 모르겠다고?"
"왜?"
"민물이 자꾸 들어가면 바다는 바다가 아닌 게 되잖아."
"치…. 지구상에 바닷물이 98%야 나머지 2%가 민물이고? 그런데 바다가 왜 민물을 무서워해!"
2%의 사람들이 98% 사람들을 지배하고 살고 있고, 98% 사람들이 2%의 사람들을 무서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조카는 뭐라고 할까? 그러면 바닷물이 민물을 무서워할지도 모른다는 내 생각에 대해 수긍을 할까? 라는 생각에서 나는 애써 20:80이라는 파레토의 법칙을 이야기하려다 그만두었을 때쯤 우리 도보여행단은 화개와 악양을 잇는 섬진강변 길에서 유일하게 흙 길이 남아있는 부춘마을 도착해있었다.
섬진강을 바라보던 조카가 나를 불렀다.
"삼촌! 지난번 학교 토론회에서 나는 동강에 댐을 건설하면 안 된다고 했고, 다른 쪽에서는 댐을 건설해야 한다는 것으로 주장했는데 댐을 반대하는 쪽이 이겼어!"
"그랬어. 어떻게?"
"댐 건설로 홍수예방 효과는 미약한데 생태계 파괴는 심각하다고 주장했지. 반대쪽에서는 홍수조절과 경제발전에 대해 이야기하던데?"
"그래서?"
"동강댐이 건설된다고 해도 홍수예방 효과가 적고 경제 발전은 건설만이 아니라 관광이나 생태문화사업을 통해서도 이룰 수 있다고 해서 우리가 이겼지."
어리다고만 생각했던 조카 입에서 생태문화사업이라는 말이 나오자 나는 조금 놀랬다.
"생태문화사업이 뭔데?"
"생태계를 잘 보전해서 관광이나 탐방과 같은 사업을 하는 거지."
"그래 그렇게 되면 지역주민들이 잘살게 되는 거야?"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지역주민들도 민박이나 뭐 이런 것으로 잘살게 되지 않을까?"
"동강에 사는 분들이 대부분 나이 드신 분들인데 그 분들이 민박이나 탐방사업을 할 수 있을까?"
"하기는 우리 동네도 관광지라서 사람들이 꽤 오기는 하지만 바다양식을 하지 않고 관광객만 상대해서 살기는 어렵지. 그래도 동강댐이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낳잖아 그지?"
"그래, 니 말이 맞다."
나는 조카가 어떤 논리를 통해 토론을 했는지 궁금해서 애써 댐 건설을 찬성해 봤지만 댐 건설은 고등학교 1학년 토론 시간에도 이기지 못하는 비약한 논리를 가지고 있었다. 득보다 실이 많은 게 댐 건설임에도 정부와 건설업자들은 여전히 댐을 건설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도대체 이 나라에 얼마나 많은 댐을 만들어야 만족하는 것일까?
우리나라에는 이미 2만개 가까운 댐이 만들어져 있고 대형 댐만 1200개가 넘는다. 우리나라는 댐 숫자로 세계 7위이고, 국토 면적 당 댐 밀도는 단연 세계 1위다. 그런데 매년 물난리가 나고 홍수로부터 대단히 취약한 나라다. 이미 댐으로 물난리를 막아야 한다는 말을 다시 하기에는 미안한 숫자다. 그런데도 아직도 이들은 여기저기 호시탐탐 댐 건설을 위한 계획들을 수립하고 있다.
아이들도 공부 잘하기로 하고 용돈을 달라고 하면서 공부를 못하면 다시 손을 내밀기 미안한 법인데 매년 물난리를 막지 못하는 국가가 국민들에게 이미 포화상태인 댐을 만든다고 손 벌리는 것도 창피한 줄 알아야 할 것 같다.
어쩌면 민물은 댐을 무서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흘러가고자 하나 머물게 하는 것, 그래서 물을 감금하는 댐을 만든 인간을 향해 물은 물의 길이 아닌 인간의 마을과 길로 흘러가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조카가 민물을 무서워하는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인 것 같았다. 자신들의 자유를 막는 인간들에 대한 원망이 민물에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그들의 설움과 한탄 그리고 원망이 담겨 물색은 어두워지고 무서워지는 것은 아닐까? 조카는 물의 마음을 이해했던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수해농산물 팔아주기 운동을 하고 참거래 농민장터에도 올립니다.(www.farmm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