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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무꽃
골무꽃 ⓒ 김민수
골무꽃은 꽃의 모양새가 골무를 닮아서 지어진 이름입니다.

골무란 바느질 할 때 바늘을 눌러 밀기 위하여 손가락 끝에 끼는 물건으로, 조선 후기의 작품 <규중칠우쟁론기>에서 '감투할미'로 묘사되기도 했습니다. 바늘, 자, 가위, 인두와 함께 침선의 필수품이었는데, 언젠가부터 침선의 필수품들조차 구경하기가 힘들어졌습니다.

@BRI@등잔불을 켜던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으니 제게 있어서 어머님의 바느질과 관련하여 기억나는 가장 먼 기억은 30촉 백열등 아래서 돋보기를 쓰고 바느질하시던 모습입니다.

농사일로 거친 손이었지만 알록달록 멋진 수를 놓은 골무를 끼고 바느질하시는 어머님의 손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이었습니다.

천이 귀하던 시대였으니만큼 입고 있는 옷의 무릎과 팔꿈치가 다 헤어지면 천을 기워서 입었고, 양말도 뒤꿈치가 다 헤어지면 전구를 양말에 넣고는 천을 기워 신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한복의 동정을 다는 어머님의 솜씨는 일품이었습니다.

ⓒ 김민수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어머님의 바느질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만큼 시대가 변한 것이지요. 아주 가끔 명절에 한복을 입을라치면 동정을 달아주시곤 하시지만 이제는 우리 집 반짇고리에는 골무가 들어 있질 않습니다.

어릴 적 어머님의 반짇고리를 열어보면 각양각색 모양을 수놓은 골무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사군자와 나비, 태극무늬는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옛날에는 골무상자가 있었는데 골무상자에는 장수를 기원하는 뜻에서 골무 백 개를 채워 넣었다고 합니다.

어머님이 "나도 골무상자 하나 사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아마도 골무 백 개가 채워진 예쁜 골무상자를 보셨겠지요. 그러나 결국 어머니는 낱개로 몇 개 구입하셨을 뿐 골무상자 한번 가져보지 못하셨습니다.

참골무꽃
참골무꽃 ⓒ 김민수
우리 집은 전기료를 아끼기 위해 60촉짜리 백열등이 아닌 30촉 백열등을 사용했습니다. 투명한 백열등은 잠자는 아이들 눈이 부시다고 뿌연 백열등을 주로 사용했습니다. 희미한 30촉짜리 백열등 아래서 늦은 밤까지 바느질을 하시다가 이내 앉아서 끄덕끄덕 조시곤 했습니다.

하루종일 농사일을 하시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식솔들 밥상을 차리시고 물리신 후에도 쉬지 않고 가족들을 위해 뭔가를 하셔야만 하셨던 어머니, 그리고 새벽이면 마음에 품은 한들을 풀어달라 예배당에 가서 새벽기도를 드리고 오시곤 하셨습니다.

그냥 편안하게 누워 주무셨으면 좋으련만 그렇게 편안하게 주무시는 것조차도 허락되지 않던 어린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청소년기가 되었을 때 '목로주점'이라는 가요에서 '30촉 백열등이 그네를 탄다'는 가사가 더 마음 깊이 와 닿았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 김민수
그래서인지 골무꽃을 보면서 가장 먼저 어머님 생각이 났습니다. 그 작은 골무꽃에는 어머님의 눈물이 들어있는 것 같아 애잔하기도 했습니다.

고사리 철에 서울에 보낼 고사리를 꺾으러 나선 길에 무덤가 소담스럽게 핀 골무꽃을 만났습니다. 굵은 고사리를 하나 둘 꺾으면서 "야, 제주도 고사리는 굵기도 하다"고 말씀하실 어머님 생각에 마냥 신이 났었습니다. 그런데 골무꽃을 보니 30촉 백열등 어래서 바느질하시던 어머니 생각, 골무상자 한 번 가져보지 못하셨던 어머니의 삶을 생각하니 마음이 짜해졌습니다.

엄니 거친 손 갈라진 손가락에 알록달록 예쁜 골무 끼었다.
골무가 아무리 예뻐도 우리 엄니 손보다 예쁠까?
엄니 거친 손 갈라진 손가락에 알록달록 예쁜 골무 끼었다.
엄니 눈물 한 방울이라도 제대로 담을 수 있을까?
골무상자 아니라도 백 송이 피어보자, 골무꽃 피어보자.

- 자작시 '골무꽃'


ⓒ 김민수
자식을 낳아 키워보면 부모님 마음을 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은 거짓말인 것 같습니다. 이젠 골무상자를 하나 사드릴 수 있는 여건이 되었는데도 이 글을 쓰기 전까지도 그런 선물을 할 생각조차도 하지 않았었습니다.

요즘은 바느질을 거의 하시지 않지만 알록달록 예쁜 각양각색의 문양이 들어간 골무상자를 선물하면 참 좋아하실 것 같습니다. 이번 설날 선물은 '골무상자'로 결정되었습니다. 그런데 '골무상자'를 살 수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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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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