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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식사를 하면서 아내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여태 그걸 몰랐느냐는 듯 핀잔을 주면서 거기뿐 아니라 밭에도 칡넝쿨이 들어와 엉망진창이라는 말을 했다. 고구마밭, 호박밭, 심지어 몇 포기 남아 있지 않은 고추밭에도 침범하여 그대로 두면 다 감아 목을 조를 거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아마 시골살이를 해 본 사람은 칡넝쿨의 폐해를 한 번쯤은 맛보았을 것이다. 얼마나 성장 속도가 빠른지 전에 조금밖에 안 보이던 넝쿨이 며칠 뒤면 주변을 다 덮어버린다. 덮여버린 나무나 채소류는 그걸로 더 자랄 수 없다. 결국 칡넝쿨의 왕성한 생명력이 다른 작물을 해치고 말게 된다.
그런데 나는 개인적으로 칡넝쿨에 대해서 사랑과 증오의 두 감정을 가지고 있다. 증오의 감정은 앞에서 얘기했으니 덧붙일 필요가 없겠지만 사랑의 마음은 두 가지 이유로 해서다. 하나는 그 향기의 달콤함과 그 맛의 진득함으로 하여.
꽃의 향기 중 가장 향기로운 게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답하기 곤란하지만 가장 달콤한 향기가 무엇이냐고 하면 나는 서슴지 않고 대답한다. 칡꽃 향기가 으뜸이라고. 꿀을 입으로 먹지 않고 코로 마실 때의 바로 그 맛이 칡꽃 향기다. 7월 중순부터 8월 중순까지 약 한 달 동안 사방에서 풍겨오는 칡꽃 향기에 취해 있노라면 낙원이 따로 없다고 느끼니까.
칡은 향기뿐만 아니라 맛으로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재작년 달내마을로 내려오는 길목에 어떤 이가 산을 택지로 만들기 위해 개간하던 중 나온 칡을 얻어 칡술과 칡차로 만들었는데 아직도 제법 남아 있어 필요할 때마다 마신다.
한방(韓方)에서 갈근(葛根)이라 불리는 칡은 가루칠기와 물칠기(학술적이 아니라 경상도 시골에서 칡을 가르는 기준)로 나뉜다. 가루칠기는 고구마로 치면 타박고구마처럼 씹으면 파삭파삭한 느낌이라 그냥 먹기에도 좋고 맛도 있다. 물칠기는 물고구마처럼 이름 그대로 물기가 많고 약간 쓴 맛이 강하다.
한의학에서 어느 게 더 약효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짐작으로는 칡즙을 짤 때는 아무래도 물기가 많은 물칠기가 유리할 테지만, 칡술을 담가 먹는다면 가루칠기도 물칠기에 못지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칡으로 해먹을 수 있는 건 네 가지다. 생칡을 짜서 즙을 내어 만든 생칡차와, 말린 칡의 뿌리를 달여 마시는 칡차, 칡꽃을 따서 살짝 덖은 뒤 차로 만들어 마시는 칡꽃차, 소주에다 칡을 넣고 담은 칡술(칡주)이 있다.
경험에 따르면 겨울에는 칡차를 보리차처럼 끓여 마시고, 중탕집에 가 만든 비닐봉지에 담긴 농축액은 여름에는 냉장고에 넣어두고 찬 채로 마시고 겨울에는 데워 마시면 되고, 칡술은 어느 계절이나 관계없이 먹고 싶을 때 먹으면 된다. 또 칡꽃차는 다른 계절보다 휘영청 달 밝은 가을밤에 마시면 제격이다.
칡을 좋아하다 보니 우리 집에는 이 네 가지가 갖춰져 있어 손님들이 올 때 내놓곤 한다, 그런데 칡넝쿨이 오늘처럼 매실나무를 칭칭 감아버리거나 밭의 작물들의 목을 조르는 상황이 오면 정말 밉다. 그래서 칡은 내게 언제나 애증의 두 그림자를 드리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