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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가의 건물들
▲ 나보이 중심가의 건물들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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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식사를 하러 호텔 식당에 들어갔더니 식탁에 앉아있던 현지인들이 전부 나를 쳐다본다. 나보이 공항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처럼 보인다. 이 호텔에 머무는 사람들이 아니라 이 식당에서 밥만 먹는 모양이다.

현지인들이 쳐다보건 말건 나도 한쪽 식탁에 앉았다. 그러자 주문도 안했는데 음식을 가져온다. 빵과 삶은 계란, 녹차가 아침메뉴다. 그걸 다 먹고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어제 날 맞아주었던, 영어를 잘 하던 종업원이 다가와서 말한다.

"미안한데 방을 좀 빨리 비워줄 수 있어요?"
"왜요?"
"그 방 샤워실을 이용하게 해달라는 사람이 있어서요."

안그래도 밥만 먹고 일찍 출발하려고 했다. 그래서 그렇게 해주겠다고 하고 방으로 들어가서 짐을 챙겼다. 배가 엄청나게 나온 중년의 남성이 수건을 들고 방으로 들어온다. 내가 타쉬켄트까지 걸어간다니까 그는 걷는 시늉을 하면서 자기 배를 만지며 뭐라고 말한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마 이렇게 말한 것 같다.

"나도 그렇게 걸어다니면 배가 좀 들어갈텐데."

그럼 나랑 같이 좀 걷던가. 그는 웃으면서 샤워실로 들어갔고 나도 짐을 꾸려서 출발했다. 시간은 오전 8시. 어제 일찍 호텔에 도착해서 푹 쉬었기 때문에 몸 상태는 아주 좋다. 그리고 도로 상태도 좋다. 나보이 공항에서 한방향으로 쭉 걸어가면 나보이가 나온다.

'나보이'라는 도시 이름은 우즈베키스탄의 국민시인이라 할 수 있는 '알리셰르 나보이'에서 유래한 것이다. 알리셰르 나보이는 15세기에 활동했던 문인이다. 당시에 모든 시인들이 아랍어로 작품활동을 했는데, 나보이는 최초로 그 시대에 우즈벡어로 창작활동을 했다고 한다.

그런점에서 그가 높이 평가되는 모양이다. 타쉬켄트에는 나보이 문학박물관도 있고, 나보이 지하철역도 있다. 나보이가 우즈베키스탄에서 얼마나 유명한 인물인지 알 수 있다. 지금 가고 있는 도시 나보이는 나보이주의 중심도시로 15만명 가량이 살고 있는 곳이다. 나보이가 나보이에서 태어났을까, 아니면 그곳에서 많은 작품활동을 했을까. 어떤 형태로든 서로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도시명으로 그의 이름을 가져다 붙여놓았을 것이다.

나보이 중심가의 호텔에 도착하다

중심가의 동상
▲ 나보이 중심가의 동상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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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에 어렵지 않게 나보이에 도착했다. 도시 입구에 있는 나보이의 동상을 지나서 쭉 들어가니까 중심거리가 나오고 그 앞에 커다란 호텔이 있다. 호텔 1층의 안내데스크에는 젊은 여인이 앉아있다. 큰 도시의 호텔이라서 난 당연히 약간이라도 영어가 통할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이 여인은 영어를 전혀 못한다. 그러더니 다른 남자 한명을 데려왔다.

검은 양복을 빼입은 늘씬한 젊은 친구가 내 앞에 나타났다. 이 친구도 영어를 못한다. 그는 나하고 눈도 마주치지 않은채 말없이 호텔의 가격표를 꺼내서 하나하나 가리킨다. 그거 참 되게 딱딱하네. 제일 싼 방이 25000숨(1숨은 한화 약 1원)이다.

아무래도 내가 외국인이라서 비싸게 받는 듯하다. 청년은 여전히 굳은 얼굴표정으로 말한마디 없다. 현지인 금액이 적용되면 더 쌀텐데. 비싸지만 어쩔 수 없다. 일찍 도착했으니 여기서 푹 쉬고 내일 아침에 떠나는 수밖에. 나는 제일 싼 가격을 가리키면서 오늘 하루만 머물겠다고 하고 돈을 건네주며 말했다.

"오케이!"

그러자 갑자기 이 청년의 표정이 살아났다. 그도 '오케이?'라고 말하더니 활짝 웃는다. 그 모습은 순진한 젊은이의 웃음 그 자체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이 친구는 여태까지 폼 잡고 있었던게 아니라, 말 안통하는 외국인 앞에서 긴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도 긴장하기는 마찬가진데, 그러다가 어떻게든 의사소통이 되니까 웃음을 되찾은 것이다.

나에게 보여준 방은 작지만 깔끔하다. 화장실과 샤워시설도 깨끗하다. 나는 짐을 풀어놓고 밖으로 나갔다. 나보이는 나름대로 큰 도시지만 역사유적은 별로 없다. 그래서 외국인 관광객들은 거의 없는 곳이다.

여기에 무슨 볼거리가 있을까. 나는 길을 나와서 무작정 외곽으로 걸었다. 걷다보니까 나오는 커다란 이슬람 사원. 이곳은 '알리셰르 나보이 마스지드'라는 사원이다. 기도가 시작되려는지 안쪽으로 사람들이 들어가고 있다. 나도 건물안으로 들어가려는데 한사람이 길을 막는다.

"무슬림이에요?"

내가 아니라고 하니까 그는 무슬림이 아니면 이 사원에 들어올 수 없단다. 그때 다른 사람이 나오더니 괜찮으니 들어오라고 권한다. 그래서 들어가 보았다. 사원 안쪽에는 한줄로 사람들이 모여서 기도를 하고 있다. 그 중에서 한 사람이 커다란 목소리로 기도 모임을 주도하고 있다. 마치 노랫소리처럼 퍼지는 무슬림들의 기도소리.

사원에서 무슬림들의 기도를 구경하고

알리셰르 나보이 마스지드
▲ 나보이의 사원 알리셰르 나보이 마스지드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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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무슬림들
▲ 나보이의 사원 기도하는 무슬림들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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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무슬림이 아니면 들어오지 못한다고 했을까. 내가 비록 태어나자마자 유아세례를 받은 천주교 신자이지만, 그래도 다른 종교를 존중할 줄은 안다. 무슬림이건 아니건 그것이 무슨 상관인가. 이슬람교의 경전인 코란에는 아브라함도 나오고, 예수도 나온다. 성경에서는 예수가 인류를 구원하려고 온 하느님의 아들이지만, 코란에서 예수는 단지 예언자의 한명일 뿐이다.

대신에 아브라함은 좀더 높은 대접을 받는다.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스마일이 사막으로 들어간 것이 아랍 부족의 기원이기 때문일 것이다. 유대교에서도 아브라함은 최고 선지자로 추앙받는다. 세계 3대 일신교인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에서 아브라함이 차지하는 위치는 그정도로 대단하다.

어떤 책에서는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가 서로 아브라함을 놓고 싸운다고 표현할 정도다. 그러니 이슬람교의 알라, 그리스도교의 하느님 모두 같은 신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무슬림이니 아니니 따져서 뭐하나.

기도시간이 끝났다. 아까 나를 가로막았던 남자가 다가오더니 여기말고 다른 사원에도 가보았냐고 묻는다. 내가 아니라고 하자 그는 나를 자기 차에 태우면서 데려다주겠다고 권한다. 오늘도 역시 행운이 따른다.

그의 승용차를 타고 10분 가량을 달리니 또다른 이슬람 사원이 나온다. 여기는 '카심 샤이흐 마스지드'다. 그는 안으로 들어가서 구경하라고 권하더니 승용차를 몰고 떠나버렸다. 부하라에서 본 많은 사원과 비슷한 생김새다. 대신에 여기는 조용하다. 항상 수많은 관광객이 몰리는 부하라의 사원에서는 조용한 기도나 참선이 불가능할 정도다.

하지만 큰 도시인데도 관광객이 없는 이 나보이의 사원은 그야말로 도를 닦기에 적당해보인다. 찾는 사람도 없고 큰 소란도 없는 이 도시의 사원에서, 한 일년만 생활해보면 좋을 것도 같다. 말도 안통하는 불편함이 있을테지만 어차피 도를 닦는 생활에서 말은 필요가 없다. 사원의 한쪽에 조용히 앉아있는 무슬림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문득 든다.

저녁으로 생맥주와 꼬치구이

카심 샤이흐 마스지드
▲ 나보이의 사원 카심 샤이흐 마스지드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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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개의 사원을 방문하고 나니까 나보이 구경을 다한듯한 기분이다. 천천히 걸어서 중심가의 호텔로 돌아온 나는 작은 식당으로 들어갔다. 어느새 해가 지고 어두워졌다.

"꼬치구이 있어요?"

젊은 여직원은 나를 데리고 식당의 뒤쪽으로 가더니 그곳에서 구워지는 꼬치구이들을 가리킨다. 내눈에는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다. 여직원은 그중 하나를 가리키면서 '무우~~'하고 소가 우는 소리를 낸다. 이건 소고기 꼬치구이다.

다른 고기를 가리키면서는 '메에~~'하고 양이 우는 소리를 내고, 또 다른 고기를 보면서 두손으로 날개짓하는 시늉을 한다. 재미있는 이 여직원 덕분에 고기를 대충이나마 구별할 수 있게 생겼다. 나는 양고기 꼬치구이를 2개 주문하고 생맥주와 토마토 샐러드도 함께 시켰다.

머릿속에서는 조용하던 그 사원의 모습이 떠나지 않는다. 도보여행하는 도중에 사원에서 하룻밤 자는 것도 괜찮을 것만 같다. 천주교 신자라는 이유로 무슬림들이 날 내쫓지만 않는다면, 그것도 정말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여행을 끝마치기 전에 그런 기회가 올 수 있을까?

꼬치구이와 생맥주
▲ 나보이의 식당 꼬치구이와 생맥주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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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우즈베키스탄, #중앙아시아, #도보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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