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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6일) 술을 마셨는데도 눈을 뜨니까 속이 편하고 상쾌했다. 아침에도 찰밥을 먹었는데 김을 넣고 무친 무짠지 맛이 일품이었다. 개운하고 고소해서 학창시절부터 1등 도시락 반찬으로 꼽아왔는데, 모두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누님들의 자랑스러운 손맛이다.

찰밥은 평생 먹어도 질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더니, 막내 매형이 집에 있는 동안 계속 찰밥을 해주겠다며 밖으로 나갔다. 찹쌀을 사러 간 모양이었다. 그런데 쌀집 주인이 한식(寒食)과 겹쳐 진즉에 떨어졌다고 한다면서 껄껄 웃으며 들어왔다.

차를 마시면서 딸에게 전화해서 9일(금요일) 점심때 만나기로 약속했다. 지난해 7월 광주 고검장을 끝으로 퇴임한 신상규 변호사와 점심을 먹기로 약속한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객지에서 혼자 지내면서 신뢰할만한 변호사 한 사람쯤 알아두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서였다.

 밭에서 거둔 싱싱한 채소와 파를 다듬는 누님들과 조카. 셋째 누님은 일을 타고 난 여인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닐 듯싶다.
 밭에서 거둔 싱싱한 채소와 파를 다듬는 누님들과 조카. 셋째 누님은 일을 타고 난 여인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닐 듯싶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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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로 나가는 날인데 누님들은 조카와 둘러앉아 밭에서 캐온 파를 다듬고 있었다. 셋째 누님이 "나는 쫌 있다가 조기도 다뤄야 허고 할 일이 많으니까 둘이 다녀오세요!"라고 했다. 여행보다 동생 집 잔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누님에게 더는 할 말이 없었다.

매형과 다녀올 수밖에 없었는데, 의왕시에 있는 철도 박물관과 서울역, 그리고 서울 인사동 거리를 둘러보기로 했다. 집이 시내와 조금 떨어진 시골이어서 조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나왔는데 소화도 시킬 겸 평택역 부근에서 내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걸었다. 

50년 궁금증 풀어준 철도박물관

평택에서 철도박물관이 있는 의왕까지는 전철로 45분쯤 소요되었다. 의왕역에서 10분쯤 걸어가니까 박물관이 보였다. 아침에는 날씨가 끄물끄물하더니 햇볕이 따사로워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었다. 날씨도 '6년 만의 외출'을 도와주는 것 같았다.

철도 박물관에 들어서니까 코흘리개 시절을 떠오르게 하는 각종 기관차가 광장에 진열되어 있었다. 기차 앞으로 지나가면 센서가 작동해서 기적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것처럼 울렸는데, 흘러간 팝송만큼이나 반갑고 정겨웠다.

이름이 생소한 기관차도 있었다. 고향동네가 구 군산역 근처여서 '미카', '터우', '소리', '푸러' 등은 어린 시절 친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파시'나 '허기' 등은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특히 군산은 철로 지반이 약하다는 이유로 장항보다 늦은 60년대 중반에야 디젤기관차가 운행되어 오래도록 증기기관차를 볼 수 있었다.

 철도박물관에 전시된 증기기관차 ‘미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진리를 말해주는 듯 했다.
 철도박물관에 전시된 증기기관차 ‘미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진리를 말해주는 듯 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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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기기관차 중에 가장 빠르고 힘이 세기로 이름난 '미카'는 몸을 깨끗하게 단장하고 죽음을 기다리는 중환자실 환자처럼 철도박물관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쓸쓸히 서 있는 모습이 전쟁에 패한 패장처럼 안쓰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철도박물관을 둘러보며 얻은 중요한 소득이 있다. 기관차 이름 '미카', '터우', '소리' 등의 뜻을 몰라 궁금해했는데 알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첫 기차 이름은 몽골족, 또는 그 자손이란 어원에서 비롯되어 '거물'이란 뜻의 '모갈'이었다고 한다.

'푸러', '허기', '파시', '미카' 등은 사람 이름 또는 특정한 명칭에서 따온 일종의 코드네임인데 ▲모갈(Mogul)=거물 ▲소리(Consolidation)=단결, 협동 ▲푸러(Prairie)=대초원 ▲터우(Ten Wheeler)=10륜차 ▲바티(Baltic)=발트해 ▲미카(Mika)=황제 ▲파시(Pacific)=태평양이라고. 

1945년에는 해방을 기념하는 '조선해방자호'가 운행되었고, 1961년 군사쿠데타가 일어난 다음 해(1962년)에는 '재건호'가 선보였고, 파월부대 이름을 딴 '비둘기', '맹호', '청룡', '백마'호가 운행되기도 했다. 지금까지 운행되는 '새마을'호도 빠질 수 없고.

간판과는 딴판이었던 '보신탕'  

철도 박물관을 둘러보고 나오면서 점심은 조금 늦더라도 서울역 대기실 식당에서 비빔밥을 먹기로 하고, 전철역을 향해 걸어가는데 길가에 허술한 식당이 보였다. 간판도 순댓국집인지 보신탕집인지 헷갈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끌렸다.

 진한 국물에 쫄깃한 고기가 입맛을 사로잡았던 보신탕. 간판에 ‘순대국’, ‘보신탕’만 적혀있고, 식당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진한 국물에 쫄깃한 고기가 입맛을 사로잡았던 보신탕. 간판에 ‘순대국’, ‘보신탕’만 적혀있고, 식당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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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입맛이 배여서 그런지, 길가나 시골 장터에서 머리에 수건을 쓴 아주머니가 국수를 팔면 꼭 사먹었다. 국수 맛도 맛이지만, 마음의 여유와 풋풋한 인정이 국수 그릇에 가득 담겨 나오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었다.

해서 매형에게 "비빔밥 대신 보신탕을 먹으면 안 될까요?"라고 물었더니 "아 좋지!"라고 하기에 들어갔다. 밖에서 예상했던 것처럼 음식이 깔끔하게 차려 나왔는데, 육질도 쫄깃해서 좋았고, 얼큰하고 개운한 국물 맛도 헷갈렸던 간판과는 딴판이었다.

아주머니에게 음식 솜씨가 대단한 것 같다고 덕담을 건넸더니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정성이 가득 담긴 밑반찬이 입맛에 딱 맞았다. 아주머니는 식당을 남편과 둘이 하는데 고추, 양파, 솔(부추) 고기까지 재료는 남편이 집에서 키워 조달한다고 자랑했다. 

얘기를 하다 고향을 묻기에 전북 군산이라고 했더니 깜짝 놀라면서 자기는 서울 출생이면서 지방은 군산밖에 모른다며 '박대'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어디에서 사면 좋으냐고 묻기에 단골로 다니는 마른반찬 가게를 추천했다. 싸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것도 공덕을 쌓는 일이니까.  

서울 인사동에서

오후 2시가 넘어 서울역에 도착, 구 서울역 박물관을 돌아보려고 했는데 공사 중이었다. 역 주변에는 노숙자들이 대낮부터 술에 취해 길가에 누워 있었는데 가슴이 아팠다. 무거운 마음으로 지하철로 내려와 4호선을 타고 충무로역에서 내려 3호선으로 갈아탔다.

조상의 얼이 깃든 거리를 거닐면 마음이 차분해지는데, 6년 만에 둘러보는 종로와 묵향이 그윽한 인사동 거리는 새롭게 다가왔다. 어린 자녀를 데리고 나온 외국인들도 자주 눈에 띄었는데 삼삼오오 짝을 지어 쇼핑하는 그들 모습이 무척 평화롭게 보였다. 

갑자기 작품 구상에 여념이 없을 딸과 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느라 고생하는 아내가 생각났다. 세 식구가 함께 거닐면서 각자 필요한 물품도 구입하고 맛있는 음식도 사먹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매형과 기념사진도 찍고, 상가를 쇼핑하는데 추억의 생강엿이 눈에 띄었다. 생강엿은 옛날 초등학교 정문 앞에서 아저씨들이 널따란 판자 위에 올려놓고 대패로 긁어 종잇장처럼 얇게 벗겨 뭉쳐서 팔았다.

매콤하고 달콤한 생강엿은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많이 사먹었는데 옛날 어른들은 감기나 기관지가 약한 사람들에게 좋다며 약으로 알고 먹었다. 그래서인지 일반 엿장수들이 가지고 다니는 엿은 고물과 바꿔먹었지만, 생강엿은 현금을 주고 사먹어야 했다.

 일본 학생들과 한과를 파는 인사동 골목 가게 아주머니. 학생들이 사진 촬영에 응해줄 것을 부탁하자 얼른 태극기를 꺼내들고 촬영에 응하는 아주머니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일본 학생들과 한과를 파는 인사동 골목 가게 아주머니. 학생들이 사진 촬영에 응해줄 것을 부탁하자 얼른 태극기를 꺼내들고 촬영에 응하는 아주머니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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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대생으로 보이는 아가씨 둘이 한복차림으로 한과를 파는 가게 아주머니에게 다가가 함께 사진을 찍자고 청하니까 태극기를 들고 응했는데, 사진촬영 과정을 지켜보며 우리 국민의식이 옛날과 달라진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아쉬움도 있었다. 진열품들이 너무 기계적이고, 상업적인 것 같아서였다. 손병희 선생 동상이 있는 탑골공원에도 들렀는데 어딘가 모르게 적적함을 느꼈다. 그래도 막내 매형과 보낸 하루는 많은 것을 보고 배운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택 누님 집에 도착, 몸을 씻고 전날처럼 뽕짝 메들리를 감상하면서 김치를 넣은 조기 찌개와 저녁을 먹었다. 반주(飯酒)를 곁들였는데, 병원 침대에 누워 천정만 바라보고 있을 큰 누님 모습이 떠올랐다. 안타까움과 기쁨이 한데 뒤엉키어 심란하기도 했으나 자리는 즐거웠고, 행복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저녁을 먹고 방으로 돌아와 잠자리를 정리하며 투병 중인 막내 누님이 하루빨리 쾌유해서 사랑하는 남편과 자녀, 형제들 곁으로 돌아오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속옷을 빨아 걸어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덧붙이는 글 | 2004년 가을 이후 6년 만에 이루어진 외출에서 의왕 철도 박물관, 서울대공원, 옛 친구와의 만남, 남산 한옥마을 탐방, 강정구 교수 강의 참석, 수원 화성 시티투어 등을 하면서 느꼈던 점들을 6-7회 정도로 나눠 담아보려고 합니다.



#여행#철도박물관#보신탕#인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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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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