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만원 세대', '삼포 세대'라는 말을 듣는 요즘 청년들은 그들의 돈을 어디에 쓸까요? '2030의 지갑' 기획은 청년들의 새로운 소비 형태와 이로 인해 일어나는 사회 현상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편집자말] |
유행이란 원래 강제로 주어진다고 볼 수 있다. 치수가 심하게 크거나 몸에 지나치게 달라붙는 옷 등은 대부분 누군가 먼저 시도했고 대다수가 자연스레 따른다. 유행 장신구, 유행 맛집, 유행어 등도 비슷한 양상이다.
안타깝게도 요즘 대한민국은 '포기'가 유행이다. 결코 좇고 싶지 않은데 울며 겨자 먹기로 흐름에 일조하는 사람이 많다. 취업 포기, 연애 포기, 결혼 포기, 출산 포기. 꼬리에 꼬리를 물어 인간관계 포기, 자존감 포기 등에 이르기도 한다. 하물며 이럴진대, '영화 관람'이라니. '극장 데이트'라니!
필자가 경향신문의
<30대 초반의 'N포 세대' 영화도 포기?> 기사를 읽었을 때만 해도 30대 초반이 영화관에 가지 않게 된 이유는 '영화표 가격 인상'과 '영화관에 가지 않아도 영화를 볼 수 있는 환경'이 주된 이유라 생각했다. 이 기사에선 2030세대 중 유독 30~34세 관객 비율만 줄어든 것을 지적한다. (2012년 관객비율 19.9%→ 2016년 15.7%) CGV는 이를 'N포 세대'가 영화관에서 이탈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지난해 7월, 메가박스를 포함한 CGV, 롯데시네마의 황금시간대(주말 11시~23시) 영화표는 1만 1000원이 되었다. 물가와 인건비 상승으로 인한 결정이라고는 하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이나 안내해주는 영화관 직원이나 올라간 비용만큼 나아진 점은 찾지를 못하고 있다. 또한 IPTV로, 아니면 온라인으로 구매한 영화를 집에서 편하게 감상할 수 있으니 굳이 영화관에 가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지 않나.
혹시 놓치고 있는 이유가 있을까 싶어 SNS를 통해 30대 연령의 50인에게 카카오톡 메신저를 통해 설문조사를 했다. 결과는 미묘하게 달랐다. 위의 이유도 포함이 되긴 했지만 단지 그것이 다는 아니었다.
영화관 방문 빈도는 '3개월에 한두 번(26%)'이 가장 많았고 '1년에 한두 번(22%)'이 다음이었다. '6개월에 한두 번(18%)' 보다 '한 달에 한 두 번(20%)'의 선택이 많은 건, 조사 대상의 60%가 기혼이고 그 중 80%가 자녀와 함께 관람한다고 답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안 간다'는 6%, '초대권이 생기면 간다'는 4%였다.
영화관을 찾는 이유(복수응답)는 59%가 '꼭 보고 싶은 영화가 개봉해서', 24%가 '그저 영화가 좋아서'라고 답했다. 그리고 '달리 데이트할 곳이 없어서(14%)', '자녀/조카 때문에(8%)', '시대에 뒤떨어질까 봐(6%)', '직업상 봐야 해서(5%)' 등이 뒤를 이었다. 영화에 관심이 없다는 2명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영화관에 가고픈 마음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은 왜 영화관에 못 가게 된 걸까? '일이 너무 바빠서(47%)'가 첫째 이유였다. 두 번째는 '육아 때문에(25%)'로 꼽았고(응답자 성비, 여:남=7:3), 이어 '집에서 볼 수 있으니까(21%)', '다른 취미가 생겨서(17%)', '영화표가 너무 비싸서(7%)', '같이 갈 사람이 없어서(4%)'가 꼽혔다.
또 '30대가 되면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 물으니 공동 1위(35%)는 '체력 약화'와 '자녀 양육'으로 조사됐다. 응답자의 52%가 자녀가 있음을 감안하면 아직 어린 자녀를 돌보기에 여념이 없는 시기이며, 20대와는 달리 체력적으로 한계에 부딪힌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합뉴스의 기사 <
"금요일 4시 퇴근해 돈쓰라고?... 직장인 68%, 퇴근하면 녹초">에 따르면 응답한 2040세대 직장인 2/3가 퇴근 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피곤하다고 답했다. 남성보다 여성이, 고소득자 보다 저소득자가, 비혼보다 기혼이, 그중에서도 맞벌이이고 자녀가 있으면 더욱 지쳐서 우선 쉬고 싶더라는 얘기다. 영화는 바라지도 않겠으니 야근과 회식을 빼달라는 아우성이 들리는 것 같다.
이렇게 바쁘고 피곤한 30대는 무엇에 가장 큰 지출을 할까? 34%가 '식비'로 1순위, 이어 '자녀 양육비(22%)', '집세(14%)', '저축(8%)', '부모님 용돈(6%)' 순이었고 '집안 빚'과 '반려동물'이 뒤를 이었다. 기타로 '쇼핑', '여행', '학비'도 있었다. 돈을 벌어 삶을 향유하기 보다는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다는 인상이 지배적이었다.
그렇다면 자녀가 없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며 업무에 시달리지도 않는 30대는 왜 영화관에 가지 않게 되었을까? 설문에 참여한 30대 모두가 재정적으로 궁핍한 상황은 아니었다. 전업주부이거나 구직 중이라 수입이 없는 경우도 있었지만, 연봉 5000만 원 이상의 30대도 생각보다 많았다.
이들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20대 때 가지 않았던 고급 식당에 가거나 전시회, 공연 관람으로 여가를 보내고 새로운 취미생활을 찾아 자기만의 개성을 가꾼다고 했다. 반려동물을 살뜰히 챙기고 요리, 악기, 그림이나 사진을 배우며 시간나면 부동산 공부도 하고 헬스클럽, 골프, 발레 등으로 몸만들기도 잊지 않는다. 영화관에 가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일이 많은 것이다.
내친 김에 설문조사를 한 이들에게 30대(기혼자 포함)의 데이트 패턴은 20대에 비해 어떻게 달라졌는지도 물었다. 공통적으로 1. 멀리 나가지 않고 2. 분위기 좋은 곳보다 편한 곳을 찾으며 3. 여러 가지 보다는 하나를 제대로 하는 식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연인을 만날 시간이 넉넉한 것도 아닌 데다, 어지간한 것들은 이미 다 해봤으니 집에서 요리를 해 먹거나 함께 TV를 보고, 가끔은 차를 몰고 교외로 나간다는 대답이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30대 초반이 영화관에 가지 않는 이유는 CGV 관계자의 말처럼 단순히 '소득이 적고 연애할 여유가 없어서'만은 아니었다 . 영화관의 가격이 비싸지고 IPTV 등 다른 방식으로 영화를 볼 방법은 더 많아졌다. 게다가 바깥에서는 일이 바쁜 데다가, 안에서는 육아 부담이 가중되는 시기이므로 자연스럽게 영화관에 가는 일이 줄어들게 된다. 이들은 물적·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데이트를 할 경우에도, 다른 취미생활을 즐길 것이 많으니 굳이 영화관을 가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