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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만원 세대', '삼포 세대'라는 말을 듣는 요즘 청년들은 그들의 돈을 어디에 쓸까요? '2030의 지갑' 기획은 청년들의 새로운 소비 형태와 이로 인해 일어나는 사회 현상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편집자말]
 평일 저녁임에도 테이블이 모두 찼다
평일 저녁임에도 테이블이 모두 찼다 ⓒ 이상원

"두 팀 정도 기다리셔야 해요."

홍대 근처에 있는 '편의점 콘셉트' 술집은 이미 사람들로 꽉 차 있다. 이미 우리보다 먼저 와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두 팀이다. 시간은 평일 저녁 7시 30분. 위치를 감안해도 꽤 인기가 많다. 더군다나 특별한 맛집도 아니고 그저 편의점에서 파는 음식들 아닌가. 자리를 옮길까 고민하다가 잠시 기다리기로 했다.

친구들이 담배를 피우러 사라진 동안 메뉴를 훑어봤다. 냉동만두가 3500원, 컵라면이 1200원, 소주가 1900원이다. 확실히 듣던대로 싸다.

월말이 가까워지면 술자리도 부담스럽다. 회사에 다니는 친구들은 카드값 막기 바쁘고 취업준비생인 나는 항상 돈이 거의 없다. 동네에서 8500원짜리 후라이드 치킨에 맥주 한 잔해도 될 텐데 홍대까지 나왔다가 마땅한 장소를 찾지 못해 난처해졌다. 요즘은 어딜 가도 계란말이 1만 5000원에 소주 한 병 4000원은 기본 아닌가. 싼 장소를 찾다가 '편의점 포차'가 떠올랐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지만 가격을 대충 훑어보고 이 정도면 괜찮겠다 생각했다.

저렴한 가격 때문인지 테이블을 채운 손님의 연령대도 대체로 20대로 보이는 사람이 많았다. 친구가 귀띔해주길 자기가 다니는 회사 막내 말로는 친구들이 근처 클럽에 가기 전에 많이 들리는 술집이라고 한다. 클럽에 가기 전 적당히 취기는 올리고 싶지만 주머니 사정은 가벼운 대학생이나 20대가 많이 찾는다고 했다.

친구는 편맥, 나는 PX

함께 온 친구는 '편맥' 스타일로 안주를 골랐다. 컵라면에 냉동만두, 과자로 상을 차렸다. 술자리가 3차나 4차까지 이어질 때 편의점 앞 테이블에서 즐기던 바로 그 조합이다. 물론 여름 한정으로 가능한 조합이다.

내 눈에는 '크림우동'이 제일 먼저 들어왔다. 군 생활 때 저녁메뉴가 너무 형편없게 나왔던 어느 날, 동기와 함께 PX에 가서 먹었다가 실수로 덜 데우는 바람에 장염에 걸린 이후로 쳐다도 안 본 냉동식품이다. 전역한 이후에 가끔 생각이 나서 더러 편의점에서 찾아봤지만 동네 편의점에선 쉽게 찾을 수 없던 바로 그 물건이었다.

PX에서 냉동치킨을 먹을 때면 항상 맥주가 아쉬웠다. 차라리 눈에서 안 보였으면 모르겠지만 PX에선 술을 팔기도 했다. 물론 병사들이 술을 사서 마실 순 없었기 때문에 그저 바라보면서 입맛만 다셔야 했지만. 전역하고 꼭 PX에서 팔던 냉동치킨에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싶었다. 그 기회가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이야. 군 생활을 추억하면서 '크림우동'과 냉동 치킨을 하나 골라 담았다.

 편이점 포차에서 고른 메뉴 모두 합쳐서 3만원이 안된다
편이점 포차에서 고른 메뉴 모두 합쳐서 3만원이 안된다 ⓒ 이상원

주머니 가벼운 사람에겐 매력적인 장소

집에 와서 편의점 포차를 검색해보니 이미 언론에 여러 차례 소개된 '핫플레이스'였다. 기사는 대체로 저렴한 가격대에 주목했다. '주머니 가벼운 청춘들의 아지트'라는 제목으로 편의점 포차를 소개한 <조선일보>의 기사는 "와, 소주 한 병에 1900원이래!"라는 감탄사로 시작한다. 기사는 십수종의 안주에 일일이 가격을 표시해가며 편의점 포차가 곳에 비해 얼마나 저렴한가를 계속 강조한다.

물론 소주 가격이 3500원, 4000원 하는 시대에 1900원 하는 소주 가격이 매력적임은 부인할 수 없다. 더군다나 임금은 더디게 오르고 물가만 빠르게 오르는 시대 아닌가.

한참 돈이 없을 때는 술집에 여럿이 가서 안주는 한 개만 시켜놓고 계속 기본안주만 리필해서 먹었던 적이 있었다. 탕이나 찌개 종류도 많이 시켜 먹었다. 국물이 바닥을 보일 때쯤 직원을 불러 육수를 더 부어달라고 하면 계속 리필해서 먹는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눈치는 보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재방문 의사? '별로...'

저렴한 가격은 편의점 포차의 알파이자 오메가였다. 함께 간 친구는 "한 번은 가지만 두 번은 가고 싶지 않은 곳"이라고 평가했다. 가게의 인상을 묻자 "싼 가격에 혹할 수는 있지만 그게 전부"라고 요약했다. 다른 친구도 "싼 가격 이외에는 그리 장점이 보이지 않는 곳이라 느껴졌다"고 말했다.

싼 가격으로 술을 즐기기 위해 감내해야 할 불편함도 여럿 있었다. 전자레인지가 두 개밖에 없어서 사람들이 몰릴 때는 자리 쟁탈이 치열했다. 테이블 사이 간격이 상당히 가까웠고 사람이 계속 드나들어서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산만했다. 음식 조리부터 쓰레기 분리수거까지 사소한 일도 모두 셀프로 해야 했다.

직원이 계산을 담당하는 1명밖에 없어서 '사장 친화적'이긴 했지만 그다지 '고객 친화적'이지는 못했다. 가격대를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결과이기도 했지만, 일행의 말대로 "월급 벌어서 술 사 먹는 사람이 갈 곳"은 아니었다.

편의점 포차, 싸다고만 해서 성공할 수 있을까

 편의점 포차의 안주들
편의점 포차의 안주들 ⓒ 이상원

함께 간 일행의 평가는 박했지만 어찌됐든 상당히 인기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저 싸다고만 해서 이만큼 이목을 끌 수 있었을까. 편의점 포차가 가격과 함께 놓치지 않은 부분은 편의점이라는 디테일이 주는 경험이다. 이미 편의점은 우리 일상의 여러 순간에 들어와있다.

누군가에게 편의점 포차에서 마시는 술은 여름날 밤늦은 시각에 술집에서 나와 아쉬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편의점 테이블에서 맥주를 마시던 '경험'을 되살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혹은 갑자기 술이 끌릴 때 다른 사람들과 마시긴 부담스럽고 편의점에서 사온 안주로 혼술할 때의 재미를 부각한 것일수도 있다.

2030세대에게 편의점은 그저 술집에 갈 돈이 없기 때문에 들리는 장소만은 아니다. 이미 술을 즐기는 또 다른 방법으로 정착한 것이다. 편의점은 30년 전 대폿집이나 20년 전 포장마차의 역할을 대신 하고 있다. 포장마차의 경험이 쌓여 요즘 유행하는 '포차'가 생겨났듯이 '편의점 포차'는 지금껏 2030세대가 겪은 문화가 누적된 결과일지도 모른다.

물론 돈이 더 많았다면 편의점에서 밤 늦게 술을 사서 마실 일도, 편의점 포차에서 그 기분을 즐길 일도 없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어쩌랴. 술은 항상 좋고, 돈은 항상 모자라니까 조금이라도 더 싼 곳을 찾을 수밖에.


#편의점포차#편의점#홍대#편맥#가성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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