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롭게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
박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은 10일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에서 열린 '과학기술계 원로-기관장들과 정책간담회'에서 과거 황우석 서울대 교수의 논문조작 사건에 대해 사과했다. 사건이 발생한지 11년 만의 일이다. 박 본부장은 지난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참여정부 청와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으로 있으면서 당시 황 교수의 배아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에 연루됐다.
비록 때 늦은 사과라고 해도 진정성이 담겨 있다면 수용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박 본부장 말에서는 그것을 찾아보기 어렵다. 우선 지난 11년 동안 책임 있는 발언을 내놓지 않다가 다시 주요한 공직에 앉고 나서야 사과했다는 점이 그렇다. 또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말하지 않고 변명으로 일관했다는 것도 문제다. 간담회에서 눈물까지 보였지만, 그 눈물의 이유가 무엇인지도 불분명하다.
책임 있는 자리에 있었지만 아무 책임이 없는 두 사람
박 본부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자신을 향한 비판에 "황우석 사건 당시에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기에 아무 말하지 않고 매 맞는 것으로 사과를 대신했고 그 이후에도 제대로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고 싶었으나 기회를 만들지 못하여 지난 11년간 너무 답답했고 마음의 짐으로 안고 있었다"라며 "그간 여러 번 사과의 글을 썼었으나 어느 곳에도 밝히지 못했다"라고 고개를 숙였다.
박 본부장은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황 교수를 적극 지원하도록 이끌었으며 265억 원에 이르는 연구비 지원과 연구 관련 규제 완화 등 황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 후원에 앞장섰다. 또 박 본부장은 조작된 것으로 드러난 <사이언스> 논문에 기여한 것도 없이 공동연구자로 이름을 올리고, 자신도 대학교수 시절 황 전 교수에게 자신의 전공 분야와 관련 없는 주제의 연구비 2억5000만 원을 지원받은 사실도 드러났다.
박 본부장은 이 같은 자신의 과거 행적에 대해서도 적극 해명했다. 그는 황 교수에게 연구비 지원이 집중된 것과 관련해 "황우석 박사 연구에 액수가 많이 집중돼 보이는데 제가 청와대 있을 때 연구비 설계와 배분 역할은 주어지지 않았다"라며 "그 당시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관심들이 많이 반영돼 연구비 수주에 유리하지 않았나 싶다"라고 말했다. 또 "당시 국민 여론이 많이 반영된 결과이지 않았나 싶다"라고 말했다.
자신이 나서 황 교수를 지원하려 했던 게 아니라는 항변이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을 황 교수와 연결하고 적극 지원하도록 이끈 게 아니냐는 질문에는 "황 교수 연구가 난치병 치료 연구이고 장기적으로 생명과학 발전 분야여서 언론 관심도 높아 정부도 부담스러워 했다"라며 "(황 교수를) 왜 지원하지 않느냐는 기사가 신문 톱에 실리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당시 여론이 황 교수를 지원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조작된 황 교수의 논문에 이름을 올린 것과 관련해서는 "논문이 나오기 2년 전 논문 기획은 함께 했다, 논문 기획을 함께 해서 이름을 올리는 경우가 있다"라며 "황 교수 측이 이름을 올릴 것을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이동하다 '알았다'고 답한 게 큰 실책"이라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황 교수 연구 지원에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고, 조작된 황 교수의 논문에 이름을 올린 것도 단순한 '실수'였다는 얘기다.
박 본부장의 이 같은 변명을 보며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 사건에 연루된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다. 조 전 장관은 재판을 받으면서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있을 당시에 블랙리스트를 보고 받거나 지시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스스로 정무수석에 있으면서 아무 것도 모르고, 아무 일도 하지 않은 '허수아비였다'고 자인한 꼴이었다. 조 전 장관은 이를 호소하며 법정에서 펑펑 울기도 했다.
재판부는 이 같은 주장을 받아들여 블랙리스트와 관련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국회 위증 부분에만 죄를 물었다. 재판부는 조 전 장관이 '개괄적'으로 보고받았을 뿐 관여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당시 여러 명의 청와대 관계자들이 보고를 했고, 조 전 장관도 관여를 했다는 증언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판결 이후 재판부의 판단에 비판이 잇따랐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미스터리 판결'이라는 것이다.
박 본부장 역시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과학 정책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좌하는 역할을 하면서도 황 박사 연구 지원에 자신이 한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듯이 말한다. 노 전 대통령이 황 교수 연구실을 방문할 때 동행해 함께 사진을 찍고, 황 교수 논문에 이름을 싣고, 황 교수에게 연구비를 받았음에도 '황우석 사태'와는 관련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당시 여론 때문에 지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책임을 돌리고 있다.
비례대표 출마할 시간은 있었지만 사과할 시간은 없었다?
청와대는 이 같은 박 본부장의 주장을 받아들여 그를 임명한 것일까?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새 정부는 촛불 민심 구현이라는 국정 목표를 실천함에 있어 참여정부 경험, 특히 실패에 대한 경험을 소중한 성찰로 삼고 있다"라며 "참여정부에 비판적이었던 분들뿐만 아니라 종사했던 분들도 실패의 경험에 대한 성찰을 함께 할 수 있다면 새정부에서 같이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청와대의 판단이 이렇다면 조윤선 전 장관 재판부의 판결만큼이나 '미스터리'다. 먼저 박 본부장은 황우석 사태에 제대로 된 '성찰'을 보여준 적이 없다. 그는 청와대 보좌관에서 물러나고 1년이 지난 2006년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내 임무는 과학기술정책 전반을 챙기고 대통령을 보좌하는 것이었다. 황 교수의 연구를 챙기는 것이 아니다. 실험과정을 챙기는 게 대통령보좌관의 일은 아니지 않나"라고 말했다.
그는 앞서서도 "김선종 연구원의 섞어심기가 없었다면 줄기세포를 만들 수 있었다"라고 여러번 주장해 왔고, 이 인터뷰에서도 "만일 줄기세포가 안 만들어졌다면 황 교수는 왜 안 만들어졌는지를 집중적으로 연구했을 것"이라며 논문이 조작된 근본 이유를 김 연구원 책임으로 돌렸다. 당시 김 연구원은 미즈메디 병원에서 수정란 줄기세포 일부를 담아오면서 마치 서울대 연구실 배반포에서 줄기세포가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게 했다.
박 본부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고 싶었으나 기회를 만들지 못했다"라고 말했지만 이 역시 진정성을 담지 못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후보에 지원했고, 처음 발표된 후보 명단에는 당선권에 이름을 올렸다. 그 과정에서 어떠한 사과나 반성의 말도 없었다. 이후 중앙위 투표로 당선권 밖으로 번호가 밀리지 않았다면, 그는 아무런 사과 없이 국회의원이 돼 있었을 것이다.
또 "그간 여러 번 사과의 글을 썼었으나 어느 곳에도 밝히지 못했다"라고 했지만, 그는 대선이 한창이던 지난 5월 <제4차 산업혁명과 과학기술 경쟁력>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반성문을 내지는 못하고 정권교체가 유력한 선거에 맞춰 자신의 전공과는 무관한 책을 내놓을 시간은 있었나 보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비례대표에 나서고 시류를 쫓는 책을 출간하는 행적을 놓고 제대로 된 '성찰'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결국 청와대가 말하는 '실패에 대한 성찰'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성찰과는 전혀 거리가 먼 행보를 보이다가 중요한 직책을 맡고 나서야 눈물을 흘리는 것을 과연 누가 받아 들일 수 있을까? 눈물을 흘리는 조윤선 전 장관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아무 책임이 없다고 판결한 재판부처럼, 청와대가 박 본부장의 말만 믿고 황우석 사태의 책임을 가볍게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다.
청와대는 논란이 뻔히 예상됨에도 박 본부장 인사발표 당시에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뒤늦게 논란이 확산되자 '실패에 대한 성찰', '과도 있지만 공도 있다', '신설 기구인 과학기술혁신 본부의 적임자'라고 인사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과학기술계의 의견을 경청하겠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의견을 경청하려 했다면 임명 전에 했어야 한다. 과학계는 이미 박 본부장을 강하게 거부하고 있다.
박 본부장 인사는 청와대가 황우석 사태로 과학계와 국민들이 얼마나 큰 상처를 입었는지 간과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앞서서도 국민 여론을 감안해 인사를 철회(형식은 자진사퇴였지만)한 적이 있다. 같은 기준에서 판단한다면 박 본부장을 더 이상 고집할 이유가 없다. 박 본부장도 2006년 인터뷰에서 "이제는 학교에서 조용히 연구만 하고 싶다"라고 한 말을 지키는 것이 동료 과학자들에 대한 예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