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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은 오마이뉴스 에디터의 사는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우리 아들이 꼬마였을 때 일이다. 운전하고 있을 때 비가 내리자 아들이 말했다. "아빠 물지우개 좀 틀어요!" 아들이 천재인 줄 알았다. 물론 이제는 아들도 '와이퍼'로 부른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우리말은 어차피 한자말이 대부분이고 토박이 우리말은 너무 적어서 제대로 뜻을 옮기기 어렵다고 말이다. 우리말 공부에 게으른 사람의 핑계가 아닐까 생각한다.

한글날 하루 전 들어온 기사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물지우개'라니. 나도 기발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한글날 때문이 아니어도 <오마이뉴스>에는 우리말을 사랑하는 시민기자들이 특히 많다. 최종규 시민기자는 심지어 최근 우리말 사전까지 내셨다. '토박이말 맛보기'를 연재하시는 이창수 시민기자도 있다. 거의 매일 하루 하나씩, 알고 쓰면 좋을 우리말을 알려주신다.

그러고 보니 백기완 선생도 우리말로 쓴 소설집을 내셨다.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이도흠 교수는 백 선생의 책 <버선발 이야기>에 대한 글에서 이렇게 썼다.
 
"한국의 소설가 가운데 어느 누구도 영어와 한자어 없이 한 편의 장편소설을 완성하지 못하였다. 이미 '새내기', '동아리' 등의 아름다운 우리말을 사전에 올려놓은 바 있는 백 선생은 외래어는 물론 이미 입말이 된 한자어마저 순수한 우리말로 전환하여 기술하였다."

으레 당연히 쓰는 줄만 알았던 '새내기', '동아리'란 표현이 백 선생이 부단히 쓰고 알린 끝에 사전에도 오르게 된 단어라는 걸 미처 몰랐다. 
 
 처음엔 오타인 줄 알았다. 이돈삼 기자가 전라남도에서 활동하고 있어서 사투리인가도 싶었다. 손그림 금경희, 채색 이다은.
처음엔 오타인 줄 알았다. 이돈삼 기자가 전라남도에서 활동하고 있어서 사투리인가도 싶었다. 손그림 금경희, 채색 이다은. ⓒ 금경희
 
편집기자도 기사를 보다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거나 맞춤법이 헷갈릴 때면 당연히 사전을 찾아본다. 그래도 전혀 모르는 단어를 발견하는 일은 별로 없는데, 더러는 이게 무슨 말인지 전혀 감이 오지 않을 때도 있다. 이날도 그랬다. 근데 하나가 아니었다. 무려 5개! 이돈삼 시민기자가 '산자락이 온통 하얗게 변하는 학마을'에 다녀와서 쓴 기사였다. 그 내용을 공개해 볼까 한다. 
 
- 새와 사람이 함께 사는 마을이다. 그만큼 마을 사람들이 새들을 지요히 여기며 보살펴준다. 새들의 서식지가 지금껏 유지되고 있는 것도 볼만장만하는 마을 사람들 덕분이다.

- 마을에서 만난 주민들의 성격도 하나 같이 노글노글하다.

- 걱실걱실해 보이는 김 어르신은 "백로와 왜가리가 마을 잘 살아라고 응원하는 것 같다"며 "새들이 마을의 보물"이라고 말했다.

- 마을길을 따라 가붓이 걷는다. 트랙터 한 대가 옛 우물가에서 쉬고 있다.

지요히? 볼만장만하다?? 노글노글??? 걱실걱실???? 가붓이????? 대체 이게 무슨 말이야! 처음엔 오타인 줄 알았다. 이돈삼 기자가 전라남도에서 활동하고 있어서 사투리인가도 싶었다. 

이럴 때 필요한 건? 사전! 사전을 찾아보자, 정말 있는 말인지! 맙소사. 정말 있는 말이다. 사전에 등재된 우리말! 몰랐던(심지어 처음 듣는!) 우리말을 찾아보고 알게 되면서 "와, 우리말이 정말 재밌네... 이런 표현이 있었다니 놀랍다, 놀라워"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지요히 (至要-)  [부사] 아주 중요하게.

볼만장만하다  [동사] 보기만 하고 간섭하지 아니하다.

노글노글하다 [형용사] 1. 좀 무르고 보드랍다. 2. 성질이나 태도가 좀 무르고 보드랍다.

걱실걱실  [부사] 1. 성질이 너그러워 말과 행동을 시원스럽게 하는 모양. 2. 긴 다리를 성큼성큼 옮겨 디디며 걷는 모양.

가붓이   [부사] 조금 가벼운 듯하게.

놀랍지 않나. 편집을 하면서 잘 사용하지 않는 말을 쓴 경우, 그 뜻을 괄호 안에 넣어주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에는 하지 않았다. 이유는 앞서 맨 처음 인용한 대목에 있다. 우리말 공부에 게으른 사람이 되지 말자는 뜻에서. 모르면 찾아보지 않을까 하는 기대랄까. 혹시 아나. '새내기' '동아리'처럼 '지요히' 쓰는 우리말이 될지! 으하하. 배웠으면 한번이라도 써먹을 일이다. 

#편집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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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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